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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기자말

눈이 흩날리는 백두산
 눈이 흩날리는 백두산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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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 다가오자 이파리가 제법 무성해졌다. 중국에서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우리나라의 '근로자의 날'과 같다. 노동절에는 학교나 회사 재량에 따라 하루에서 열흘 정도의 휴가가 주어진다. 회사는 길게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학교는 노동절이나 국경절(10월 1일)에 9일정도 방학을 한다.

이 시기에 학교 안 식당이나 상점은 문을 닫고 사람조차 거의 빠져나가 휑하니 쓸쓸하다. 대부분의 중국학생은 집으로 돌아간다. 유학생들에겐 기회이기도 하다. 달랑 일주일의 방학으로 귀국을 하기엔 무엇 하니, 대신 인근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는 것. 여기는 중국이니 '국내' 여행, 돈도 시간도 부담이 덜하다. 나도 이 시기를 이용해 매년 이곳저곳을 누볐다.

이번에도 텅 빈 학교를 지킬 수는 없었다.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니 더더욱 그렇다. 바쁜 와중에도 여행을 계획하는 나 자신이 어지간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많은 곳을 고민하며 지도를 훑어 나가던 중 한곳에 눈길이 꽂혔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다. 백두산이 있는 중국의 동북지역에 유학을 하고 있었지만, 왜 여태 그 곳을 등한시했었을까. 어쨌든 이름조차 거룩한 우리나라 민족의 산, 백두산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길고 긴 백두산까지의 거리

비룡폭포. 거리가 멀어 제대로 보지 못했다.
 비룡폭포. 거리가 멀어 제대로 보지 못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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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삼일. 오전 여섯시 반, 선양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백두산이 있는 바이허역은 진저우에서 바로 가는 열차도 없을뿐더러, 선양에서도 열 세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저녁에 출발해서 아침에 도착하는 침대기차였다. 이번 여행에서 숙소보다 많이 잠을 청한 곳이기도 하다.

저녁에 바이허역으로 출발하는 기차에 오르고 침대에 짐을 풀었다. 승무원이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표와 자리를 확인하며 승차카드와 바꾸어 준다. 이 카드는 승객들에게 내릴 역이 다가왔을 때 하차시간을 알려주고 다시 표와 교환한다.

같이 동행한 친구는 침대기차가 처음이었다. 짐을 도둑맞지 않을까하는 걱정에 가방을 꼭 끌어안고 불안한 밤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깔끔한 침구와 도둑을 만나지 않은 행운(?)덕이었을까, 돌아오는 길에서는 걱정 따윈 집어 던지고 편안히 잠을 청하는 모습이었다.

바이허역. 주변에 아무 건물도 없이 역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바이허역. 주변에 아무 건물도 없이 역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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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여덟시 반. 드디어 바이허역에 도착했다. 역은 생각보다 작고 초라했다. 기차역 앞은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주로 숙박업소나 택시기사다. 승객들이 출구를 나서자 손님에 목이 마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우리는 잠시 생각했다. 어차피 방을 잡아야 하니 이 중에서 고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한 명씩 흥정을 시작했다. 여러 명을 접촉한 결과 제일 만족스런 조건을 제시한 업소를 간택(?)했다. 100위안(약 18,000원)의 가격에 무선인터넷이 있는 2인실 방과 역까지 오가는 조건을 포함했다. 역이 후미진 곳에 위치한 데다 지하철은 고사하고 버스조차 보이질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 조건은 매우 중요했다.

백두산이 아닌 씁쓸한 그 이름 장바이샨

숙소 전경. 건물은 많이 낡았지만 방은 깔끔하고 시설도 괜찮았다.
 숙소 전경. 건물은 많이 낡았지만 방은 깔끔하고 시설도 괜찮았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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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숙소에 도착하고 주인에게 백두산에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니, 30위안(약 5400원)에 백두산과 숙소의 왕복운행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가는 길만 삼십분이 걸렸으니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다. 출발이다. 기사아저씨는 운전하는 내내 백두산에 대한 설화나 역사, 기후, 지리 등을 설명했다.

중국에서 백두산의 명칭은 장바이샨(장백산)이다. 예전에 학교에서 외국인에게 중국역사, 지리 등의 기본 소양을 가르치는 수업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백두산을 중국의 명산으로 소개했다. 한국인으로서 불쾌한 언질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바로 손을 들어 정정했다.

"라오싀, 장바이샨싀한궈더샨.(선생님, 장바이샨은 한국의 산입니다.)"
"니슈어션머너, 쟝바이샨싀중궈더. (무슨 소리, 장바이샨은 중국 거야)!"


눈을 번뜩이며 날카롭게 쏘아붙인 대답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다시 발끈했지만 주변의 우려 섞인 눈길이 그만하라며 말리고 있었다. 이곳은 중국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운전기사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당시의 불쾌한 상황이 다시 떠올랐다. 그 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 아저씨는 그나마 우리 눈치를 봐가면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돈 앞에는 장사가 없다. 공연히 머리가 아파온다. 창을 내리고 맑은 공기를 흠뻑 들이마신다.

백두산 천지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산을 올랐지만

눈과 온천의 조화가 아름다운 백두산 전경
 눈과 온천의 조화가 아름다운 백두산 전경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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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려 하늘을 보니 구름이 많긴 했지만 맑았다. 출발 전 날씨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었다.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 때문이었다. 그만큼 날씨가 변화무쌍해 보기 힘든 곳이다. 다행이 괜찮아 보이는 날씨에 안심이 됐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매표원이 천지에 폭설이 내리고 있어 진입이 어렵다는 말을 꺼낸다. 그 외 경관은 모두 둘러볼 수 있다 했다. 만약 한 시까지 그치지 않는다면 백두산 천지는 포기해야 한단다. 역시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산에 올라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셔틀버스가 빠른 속도로 잘 포장된 도로를 달려 백두산으로 인도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거대한 산림에 넋이 나갈 때쯤 창문에 하얀 것이 탁탁 날아와 붙는다. 눈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거센 바람까지 장난이 아니다. 추위를 대비해 옷을 껴입긴 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선양에서는 반팔만 입고도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입에 달고 있었는데, 하루 만에 여름에서 겨울로 계절이 급변했다.

오월에도 불구하고 산 속은 아직 겨울이었다. 눈이 수북이 쌓여 있고 나무는 아직 헐벗었다. 허연 가지가 거칠게 하늘로 뻗어있다. 유황으로 노랗고 파랗게 물든 바닥 위로 온천수가 김을 토해내며 얕게 흐른다. 곳곳에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온다. 거칠지만 힘이 살아있는 한 폭의 유화 같다.

확실히 다른 여행지에 비해 한국인이 많이 보인다. 열심히 사람들을 따라 걷자 비룡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폭포는 하얀 눈덩이 사이로 꿋꿋이 물줄기를 흘려보냈다. 아쉬운 건 폭포와의 거리가 있어서 그 장엄함이 생생하지 않다는 것. 마주하고 있지만 TV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발걸음을 돌리는 길, 작은 계란과 오리알 등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온천수에 담가 익혀 팔고 있다. 촉감이 부드러워 반숙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도 그만이었다.

온천수로 익히는 갖가지 음식. 계란이 특히 맛있었다.
 온천수로 익히는 갖가지 음식. 계란이 특히 맛있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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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이 다가오자 우리의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천지를 보고픈 마음 때문이다. 날씨가 계속 오락가락 했지만 눈발이 더 이상 날리지 않았다. 기대를 안고 다시 물었지만 대답은 같았다. 오늘은 관광하기 힘들다고 했다. 결국 나머지 경관을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아쉬운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하룻밤을 꼬박 달려 왔건만 백두산 천지를 못보고 간다니 너무 안타까웠다. 백두산을 오르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니던가. 허전한 마음에 다음날 전화를 걸어 입장여부를 물었지만, 여전히 불가능하다고 했다. 천지는 끝끝내 우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조상이 덕은커녕 업을 쌓았나보다며 투덜거렸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짐을 꾸려 다음 여행지인 옌지(연길)로 출발했다.

○ 편집ㅣ김미선 기자



태그:#중국, #중국유학, #백두산여행, #바이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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