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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는 눈망을 똘똘하게 뜰 때도, 하픔을 입이 터져라 할 때도 귀엽습니다.
 서준이는 눈망을 똘똘하게 뜰 때도, 하픔을 입이 터져라 할 때도 귀엽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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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준이는 무얼 해도 생애 첫 경험이네."

딸내미가 교회에 갔다 오더니 한 말입니다. 정말, 그러네요. 우리 서준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교회란 델 다녀왔거든요. 이 할애비가 목사이고 친가도 4대째 기독교 집안이니 나면서부터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려. 소위 모태신앙이란 거죠. 이 할애비도 모태신앙, 지 애미애비도 모태신앙, 서준이도 모태신앙, 모두가 '모태신앙', '못 해 신앙'입니다. 허허.

그런데 첫 교회 출석인 서준이가 '못 해 신앙'을 제대로 보여줬답니다. 모태신앙은 자수성가형 신앙인에 비해 열심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거든요. 뭐,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좀 그런 경향이 있다는 거죠. 모태신앙의 진수를 제 손자 서준이가 보여줬다는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거랍니다.

서준이의 첫 교회 출석... 축복기도를 하다

태에서 꼬무락거리던 서준이가 세상에 나온 지 75일 만의 일인가요. 첫 교회 출석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낳은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는 의식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할례를 행한 것이 전례가 되어 아이를 낳으면 회당에 가서 할례를 받습니다.

쉽게 말하면, 성기의 일부를 도려내는 의식입니다. 초기 동방 기독교에서도 행해지긴 했지만 바울이 금한 후 기독교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은 제도입니다. 대신 세례가 있죠. 우리 서준이가 유대인들의 할례에 해당하는 세례를 받으려면 딸내미 내외가 나가는 교회에 가서 받아야겠지요.

오늘날 기독교의 유아세례는 부모가 잘 믿으면 아이에게 세례를 베푸는 제도가 있습니다. 세례와는 좀 다른 의미에서 저는 교회에 첫 출석하는 아이들에게 축복기도를 해준답니다. 세상에 나온 것도 축복받을 일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길도 축복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늘 그래왔듯이 제 손자인 서준이에게 목사인 제가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서준이의 첫 교회 출석, 축복기도를 받고 있습니다.
 서준이의 첫 교회 출석, 축복기도를 받고 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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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가 서준이를 잘 키울 지혜를 달라고, 서준이가 세계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성장하라고 축복했습니다.
 엄마아빠가 서준이를 잘 키울 지혜를 달라고, 서준이가 세계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성장하라고 축복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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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가 이 세상에 나오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건강하게 75일간 자라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서준이가 오늘 교회에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세상은 너무나 험합니다. 이 험한 세상에 발을 디디게 하신 분은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분명히 나와야 할 이유가 있기에 내신 것이라 믿습니다.

주께서 보호하시옵소서. 이 아이의 생애를 책임져주옵소서. 부모에게 지혜를 주셔서 잘 키우게 하옵소서. 험난한 세상에 등불이 되게 하시고, 부정의한 곳에 정의의 사도가 되게 하소서. 이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게 하셔서 장차 세계에 유익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이런 형식의 기도를 '안수기도'라 함)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누구도 필요 없는 생명은 없습니다. 귀하지 않는 존재는 없습니다. 하물며 사람인데 왜 귀하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제 손주인데 말입니다. 정말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더군다나 너무 험한 세상이기에 아이의 미래를 조물주에게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교회에서의 서준... '못 해 신앙'의 전형을 보이다

생애 첫 교회 출석…. 9시 30분 수유 후 잘 자는 앨 데리고 11시 예배에 참석했다. 찬양 시간엔 첨 듣는 쿵쾅거리는 소리에 신기한지 눈 말똥 뜨곤 두리번거린다. 기도 시간엔 졸린 지 눈을 끔뻑끔뻑한다. 그러더니 설교 시작하니 운다. '재워줘. 재워주' 워낙 조용하게 살았기에 그런지 한참을 서서 둥가둥가 해주고, 설교가 끝날 즈음에야 잠이 들었다.

딸내미가 서준이의 교회 첫 출석 내용을 적은 불로그 글입니다. 아니, 제 손자 녀석 서준이가 제가 설교하는 동안에 심술을 피웠다는군요. "고얀 놈 같으니라구!" 어디 손주가 할애비 설교하는데 운단 말입니까. 하하. 제가 멀리 떨어져 있는 사이 녀석이 별짓을 다했군요. 전 예배를 인도하는 동안 손자 녀석은 교회 맨 뒤에서 예배를 방해했단 말인데….

서준이의 예배시간은 녹록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제 엄마 등을 기대고 잡니다.
 서준이의 예배시간은 녹록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제 엄마 등을 기대고 잡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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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뭐 잤다고요? 오후예배 시간은 아예 대놓고 잤답니다. 성도들이 설교시간에 졸면 얼마나 기분이 나쁜데 녀석이 할애비 설교 시간에 잤답니다. 그래도 예쁘게 잤을 거라는 추측. 제 손자인걸요. 이래서 제가 '손자 바보'인 거예요.

이제부터 일하다 지친 몸으로 달려와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혹 예배 시간에 졸면 눈감아주려고요. 실은 이미 전 그러고 있답니다. 공공연하게 이러죠. '힘들어도 교회에 와서 자라'고. 예배 시간에 피곤하다고 안 오는 것보다 와서 조는 게 더 낫지 않나요.

교회에서 조는 것도 은사예요. 그러니까 서준이가 잠잔 것은 은사를 듬뿍 체험한 거죠. 하하. 조는 성도가 있다는 건 교회가 평안하다는 증거예요. 분쟁이 있는 교회는 예배시간에 조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혹 목사가 자기 험담할까 눈 크게 뜨고 지켜보죠. 하하하.

그러니 서준이의 교회에서의 잠은 첫째는 녀석이 하나님의 은사를 맘껏 경험했다는 증거요, 둘째는 우리 교회가 아주 평안하다는 증거랍니다. 이래저래 이 '손자 바보' 기분이 좋습니다. 오후 예배까지 예배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온 서준이는 집에서도 잠에 흠뻑 빠졌습니다. 정말 은혜 많이 받은 모양이죠. 하하하. 진짜 꼴불견 할배죠? 놀리거나 말거나 저 계속 이럴 겁니다.

서준이는 교회에 다녀와서도 제 아빠와 누워 고운 잠을 자고 있습니다.
 서준이는 교회에 다녀와서도 제 아빠와 누워 고운 잠을 자고 있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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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그랬거든요. 시편 127편 2절인데요.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사랑받으면 평안하고, 평안하면 불면증은 없겠죠. 아마 성경은 그런 뜻일 겁니다. 그러나 이 '손자 바보'는 교회에서 잔 것도 사랑하는 증거라고 말하는 거예요. 워낙에 '손자 바보'를 자처하다 보니 이젠 오버까지 하네요. 여하튼 그렇게 서준이는 생애 첫 교회 출석을 무사히(?) '못 해 신앙'의 전형을 보이며 마무리했답니다.

'교회에서 자던 녀석 집에서도 잔다'라나 뭐라나. 지 애비하고 나란히 누워 '떡실신'이 되었습니다. 항상 이리 잘 자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고, 먹고, 싸고, 놀고, 자고, 먹고, 놀고…. 그렇게만 해줘도 귀여움을 듬뿍 받을 텐데. 요즘 아가들은 그러질 않아요. 손자 녀석은 항상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태그:#꽃할배 일기, #손자 바보, #서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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