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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에 나 있다' 손자 녀석이 그러는 거 같습니다. 딸애의 배가 남산입니다. 드디어 2014년 5월 13일 세상을 박차고 서준이가 나왔습니다.
 '이 안에 나 있다' 손자 녀석이 그러는 거 같습니다. 딸애의 배가 남산입니다. 드디어 2014년 5월 13일 세상을 박차고 서준이가 나왔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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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3일, 드디어 '녀석'이 나와줬습니다. 아주 건강하게, 대한민국 금수강산을 송두리째 흔들며 나왔습니다. 크게 우는 게 대접을 받는 건 아마 아이가 태어날 때 내는 울음소리가 유일할 겁니다. 손자 녀석은 그렇게 큰소리를 내며 세상에 나왔습니다.

딸내미가 한 번 유산을 했기에 사실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딸내미의 출산 소식은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었는지 모릅니다. 33세에 딸내미가 아들 서준이를 덜컥 낳았습니다. 33세는 의미 있는 나이죠. 예수님은 그 나이에 십자가를 지고 인류를 구원했으니까요.

인류 구원쯤은 아니지만 딸내미는 오씨 가문에 2대 독자를 낳았습니다. 가문을 빛내고, 이 외할아버지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 놀라운 사건이 터진 거죠. 녀석의 울음소리를 듣고 부모도 웃고, 이 할애비도 웃고, 하늘도 웃고, 강도 웃고, 대한민국도 웃었답니다.

"어라, 이건 뭥미?"

이런 반응을 보이실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저는 당당하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당신들도 손자 봐 봐요! 나보다 더 바보가 될 걸요?"

조선시대 '손자 바보'

딸내미 배에서 나온 손자 녀석은 첨에는 이렇게 생겼었습니다. 울기는 왜 그리 우는지요.
 딸내미 배에서 나온 손자 녀석은 첨에는 이렇게 생겼었습니다. 울기는 왜 그리 우는지요.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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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인 1500년대에도 이런 '손자 바보'가 있었답니다. 유학자 묵재 이문건(李文楗, 1494~1567)이란 선비이죠. 주서(注書)·정언(正言)·이조좌랑 등을 지낸 분입니다. 기묘사화(己卯士禍) 발발 후 스승인 조광조에 대한 의리를 지켜 조상(弔喪)했다가 경북 성주로 가 유배생활을 한 올곧은 선비입니다.

그런데 유배생활 중에 아들 이온(李溫)이 손자 이수봉(자는 수길)을 낳고 죽습니다. 평소에 이온은 몸이 부실했거든요. 그가 손이 귀한 집안에 태어난 손자를 키우며 쓴 책이 바로 <양아록(養兒錄)>입니다. '할아버지의 육아일기'쯤 되는 거죠. 이상주 선생이 번역해 1997년 책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조선 중기에 유학자인 할아버지가 손자의 육아일기를 쓴다?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러니까 묵재 할아버지가 '손자 바보'라는 겁니다. 저처럼 말이죠. 다른 분들이 "손자는 아들딸과는 달라, 더 귀여워"라며 손자 자랑을 늘어놓을 때는 그저 '꼴불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이게 웬일입니까. 제가 손자를 보니 그 사람들보다 더한 '손자 바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실은 묵재 이문건이 손자를 전적으로 키운 건 아닙니다. 맏딸인 숙희(淑禧)와 성품이 어진 여종 돌금(乭今)이 맡아 길렀습니다. 그러나 교육만큼은 할아버지 담당이었죠. 가르침과 발달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 <양아록>입니다.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과 지극한 사랑이 듬뿍 담긴 기록이죠.

<양아록>은 손자의 출생부터 16세까지의 성장과정을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려는 바보짓이 바로 <양아록>과 비슷한 기록을 남기려는 것입니다. 조선 중종시대의 '손자 바보'와 21세기 '손자 바보'와는 어떻게 다른지 지켜보시지 않겠습니까.

<양아록>에 보면, '종아리를 때리고 나서'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내가 종아리를 치는 것은 아이의 나쁜 습관을 없애기 위해서라. 오냐 오냐 하며 아이를 귀여워한다면 일마다 아이의 비위를 맞춰야 하리."(<양아록> 본문 중)

손자가 귀엽지만 버릇없이 자라면 안 될 것이기에 종아리를 쳤는데, 그 아픔이 어땠으면 변명 아닌 변명으로 이렇게 사랑을 표현했을까요.

대한민국 '손자 바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나온 지 75일만에 서준이가 외할아버지 집에 왔습니다. 아직은 안기가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나온 지 75일만에 서준이가 외할아버지 집에 왔습니다. 아직은 안기가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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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뒤흔들고(?) 나온 손자 녀석이 지난 26일 외할아버지 집에 왔답니다. 외할아버지 집요? 저희 부부가 사는 집 말입니다. 세상에 나온 지 75일만입니다. 이미 두어 번 딸아이 집에 가 녀석을 보고 오긴 했지만, 이렇게 귀여운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지 울기만 했습니다.

"엄마, 밤새 잠도 안 자고 울기만 해. 한 시간도 계속 자질 않아. 잠이 모자라 죽겠어."

딸아이가 아내에게 하는 말은 대개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전화를 끊으면 아내도 싱숭생숭했습니다. "여보, 아이가 그렇게 보채기만 하고 잠을 통 안 잔다네요." 내게 이리 말하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곤 했습니다. 이 할애비도 마음이 편치 않은 건 마찬가지였고요.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손자 녀석은 외할머니 집(외할아버지인 내 집)에 무척 적응을 잘하고 있습니다. 하루의 2/3는 잡니다. 나머지 1/3 중에 웃는 시간이 반, TV 보는 시간이 반, 외출해 노는 시간이 반, 혼자 중얼거리며(?) 노는 시간이 반…. 어라? 시간 계산이 안 맞는다고요? 하하. 좀 '뻥'이 있으니까 그런 거랍니다. 만약 시간을 재고 있다면 '당신은 손자바보 될 자격 없음' 아닐까요?

울면 대단하죠. 서준이가 울면 온 세상이 침침합니다.
 울면 대단하죠. 서준이가 울면 온 세상이 침침합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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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명랑합니다. 서준이가 웃으면 온 세상이 환합니다.
 참 명랑합니다. 서준이가 웃으면 온 세상이 환합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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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이가 세 식구 중 누군가의 어깨에 의지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잠투정할 때죠. 그러나 그 시간이 일상에 들어갈 정도는 아닙니다. 아마 이 글을 사위가 읽는다면 어떻게 자기 아들이 변했는지 믿기지 않을 겁니다.

서준이가 웃으면 온 세상이 환합니다.
서준이가 울면 온 세상이 침침합니다.
서준이가 잠투정하면 모두가 졸립니다.
서준이가 하품을 하면 모두 '하'하며 기지개를 켭니다.
서준이가 재채기를 하면 왜 그리 시원합니까.
서준이가….

오늘도 서준이는 '외할아버지 집' 극단의 모노드라마 주인공입니다.


태그:#꽃할배, #서준, #아이, #손자,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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