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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뉴욕 집회를 준비하는 엄마들
 '세월호' 뉴욕 집회를 준비하는 엄마들
ⓒ 성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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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다. 80~90년대 대한민국의 5월은 5·18 광주학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대학가를 비롯한 도시 곳곳에서 연일 이어진 달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5월은 광주민주화운동의 기념식만이 망월동 국립묘지 등에서 조촐하게 치러질 뿐이다.

5월 18일의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게다가 장소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고, 유행과 세태의 변화가 가장 빠르다는 뉴욕의 맨해튼이다. 누가 그리고 왜 5월 18일에, 그것도 한인타운이 아닌 뉴욕타임스 앞에서 집회를 한다는 것일까. 이것은 지난 5월 11일, 미국의 <뉴욕타임스>에 실린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광고와 관련이 있다. 바로 이 광고를 논의하고 진행했던 미주한인누리집의 주부들이 광고와 함께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 50개 주에서 동시에 집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광고가 실린 후, 국내 모 신문의 인터뷰에 응한 혹자의 말처럼 '이것이 일부 종북세력에 의한 것이며, 이들의 주장이 고국 정부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일까?

뉴욕집회 준비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지난 15일, 퀸즈의 어느 스튜디오에서 뉴욕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세 번째 모임이 시작됐다.

"무엇이든지 도움이 되고 싶어서 큰애는 데이케어에 맡기고 2살짜리 작은애만 데리고 왔어요."

지난 2차 준비모임부터 참여한 탓에 이미 낯을 익힌 언니들이 강남지역에서 자랐다고 우스갯소리로 자기를 '강남좌파'라고 부른다며 웃는다.

"지금 마음이 너무나 아플 유가족들을 생각하며 딸내미랑 같이 접었습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 접었을지 가늠할 수 있을 만큼 몇백 개의 리본을 들고 온 젊은 새댁은 이거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한다.

"엄마, 아빠 따라 집회에 나올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준비하고 싶었어요."

워킹맘으로 일하느라 점심시간을 이용해 왔다며 노란색 풍선과 종이 한 묶음을 서둘러 전해주고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주부. 본인은 점심을 거르고 왔음에도 같이 도와주지 못해서 연신 미안하다며 서둘러 자리를 뜬다.

준비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왕언니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주부는 지난 모임 때도 오전 6시부터 잡채, 만두, 김밥 등을 만들어와 나눠 먹었다고 하더니, 오늘도 어린아이를 데려온 젊은 엄마부터 잠깐 들러 왔다 가는 워킹맘까지 살뜰하게 챙긴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작가는 스튜디오를 준비모임의 장소로 흔쾌히 제공하고는 일정이 있다며 나간다. 이번 미 50개주 동시집회의 기록들을 모아 지인들과 함께 동영상으로 만들 계획이란다.

가족행사로 인해 18일 집회에 나오지 못한다는 한 주부는 200여 개의 마스크를 준비해놓고 가고, 모인 사람들 중 가장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다른 주부는 가게마다 돌아다니며 집회홍보 전단지를 붙인다고 한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제 시간이 많지 않아, 먼 거리를 갈 때는 틈을 내 서둘러 다녀와요."

여섯 시간동안 피켓용 글씨를 쓰고, 리본을 접고, 포스터를 지지대에 단단하게 붙이면서 이들은 드라마 이야기, 음악이야기 또는 아이들 공부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다가 누가 세월호 이야기를 꺼내면 또다시 연신 눈물을 찍어내기 바쁘다.

내 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살지만 아픔과 충격이 이들에게 그 물리적인 거리만큼 적을 수는 없나 보다. 오히려 분향소에, 팽목항에 직접 가보지 못하는 미안하다며 여기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찾는다.

집회의 목적과 주장

빠듯한 이민 생활이라 반찬값 줄여 광고비로 후원하고, 없는 시간 쪼개가며 해나가는 이런 일들이 조국인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물론 <뉴욕타임스> 광고에서 보여줬듯, 미 50개 주 동시집회가 그냥 추모집회의 성격만 띄지는 않는다.

이들은 한 달 동안 정부가 보여준, 이미 세계 각국에서 웃음거리가 된 박근혜 정부에게 다소 강한 어조로 메시지를 외치고 있다. 사후처리 똑바로 하라고, 유가족 두 번 죽이지 말라고, 한국 언론은 정부의 허물을 감추고 속이려 하지 말고 있는 사실을 제대로 방송하라고... 또한 일부 보수세력들이 종북 혹은 국가 전복세력이라는 허무맹랑한 정치적 프레임을 씌우려는 것에 대해서도, 그들은 집회의 목적을 명확하게 밝혔다.

▲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도 및 가족들에게 위로의 뜻 전달 ▲ 세월호 참사 관련 여러 의혹 해소 및 진실 규명 촉구 ▲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현 정권의 언론통제 및 여론조작 ▲ 개인에 대한 감시활동 강화 등 민주주의 퇴행의 현실 폭로 ▲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 지지를 끌어냄으로써, 국민주권에 대한 정계 및 정부의 각성과 변화 유도

이번 세월호 참사에 대한 슬픔과 정부의 무능함에 대한 분노로 이렇듯 교민들은 미국 각 주에서 삼삼오오 모여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떤 단체나 조직의 그들이 아니기에, 앞으로 몇 번의 집회가 더 이어질지, 이후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하루빨리 박근혜 정부의 명확하고 책임감 있는 사후 처리가 이뤄져 다시 각자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대한민국에, 특히나 지금의 시기에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잘못을 책임지지 않는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국민은 그들이 국내에 있든, 혹은 해외에 살든지 그것을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다.


태그:#미 50개주 동시집회, #미국 동시 집회, #뉴욕타임즈 광고, #뉴욕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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