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통합진보당 의원 및 당직자등이 17일 경기도 수원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내란음모죄 혐의로 법원의 선고를 앞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무죄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이석가 무죄선고 기다리는 통합진보당 통합진보당 의원 및 당직자등이 17일 경기도 수원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내란음모죄 혐의로 법원의 선고를 앞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무죄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나는 성수대교가 붕괴된 모습을 TV를 통해 봤다. 1994년 당시 나는 미취학아동, 7살이었다. 워낙 어렸을 때인지라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다리 한가운데가 내려앉아 있는 장면과 그 위에 있는 몇 대의 차량과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몇 명이 죽었다', '몇 명이 부상당했다' 등의 얘기를 하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다.

몇 명의 남자들이 수갑을 차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면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누군지 부모님께 여쭤보았다. 어머니께서 "다리가 안전하다고 했던 사람들이 경찰에 잡혀가는 거야"라고 하셨다.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다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모두 경찰에 잡혀간다'고 이해한 것이다. 어린 마음에 나는 나도 경찰에 잡혀가는거 아닌가 두려웠다. 나는 일부러 부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 다리는 원래 안전하지 않았잖아요. 그쵸?"

지난 17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수원지법의 판결을 보고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수원지법은 내란음모 및 선동 혐의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석기 의원에게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경찰에 잡혀갈까봐 부모님께 괜한 거짓말을 해야 했던 나는, 생각이 죄가 될 수 있다고 느끼고 두려워한 것이다. 7살 어린아이의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지만, 그렇다면 오늘날 이석기 의원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은 7살 내 생각과 뭐가 다른가?

내란음모 사건의 판결은 결국 직접증거 없이 정황과 증언만을 통해 내려졌다. 검찰이 핵심증거로 제출한 녹취록들 중 9개는 원본이 없었다. 핵심증거라고 한 녹취록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준비하자" → "전쟁을 준비하자", "(천주교) 절두산 성지" → "결전 성지" 등으로 심각하게 왜곡되는 등, 의도적인 것으로 의심되는 오류가 수백 군데 발견되기도 했다. 녹취록은 수백 군데의 왜곡과 원본의 훼손으로 얼룩졌지만, 사법부는 그 증거를 받아들였다.

이른바 '혁명조직', RO의 실체에 대해서도 검찰은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만약 RO의 실체를 검찰과 국정원이 발견했더라면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기소했을 텐데 검찰은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RO가 실재한다고 판단하고 유죄를 판결했다.

남은 증거는 국정원의 조력자(?)이자 내부고발자인 이아무개씨의 증언인데, 사법부는 이아무개씨의 증언을 굉장히 신뢰함을 알 수 있다. 400여 쪽에 달하는 재판 판결문의 100여 쪽을 검사 측의 공소사실에 할애한 걸 보면 말이다.

'다간'과 '썬가드'가 세상 구한다 믿었던 내 생각도 죄인가?

지구에 도착한 뒤 선비 복장을 갖춘 도민준(김수현 분).
 지구에 도착한 뒤 선비 복장을 갖춘 도민준(김수현 분).
ⓒ SBS

관련사진보기


그렇다면 사법부가 증인의 증언을 늘 비중 있게 여겨왔느냐? 그것은 또 아닌 것 같다. 경찰 내부고발자인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증언에는 신뢰성이 없다며,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의 축소·은폐 지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경찰청장에게 무죄 판결을 한 것을 보면 말이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잣대가 고무줄임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몇 번 양보해서 이아무개씨의 진술과 녹취록을 철저히 신뢰할 수 있다고 해도 과연 이석기 의원의 발언이 과연 '대한민국의 존립과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할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제 권총이나 수류탄 같은 실제 무기 하나 나오지 않았던 '시대착오에 빠진 그들만의 리그'에서 말이다.

결국 진짜 내란을 위한 무기나, 파괴하겠다는 국가시설의 설계도 따위의 직접증거 하나 없었던 이 사건은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의 중형 판결로 1심이 끝났다. 재판부도 판결문을 통해 "폭동의 세부적인 계획은 없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도 내란을 위한 세부계획 따위 없는 그들만의 모임이라는 점을 알았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범죄의 세부적인 계획에 대한 확인도, 범죄의 직접증거도 없는 사람에 대해 사법부는 징역 12년이라는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이석기 의원은 여러 언론에서 다룬 대로, 국민감정으로 보았을 때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사람일 수 있다. 때문에 그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판단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시대착오만으로도 내란음모죄가 성립될 수 있다면, 시대를 오판하는 것만으로도 12년의 징역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단이라면, 나는 이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20~30대 남성이라면 TV 만화영화 '다간'이나 '썬가드'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만화를 참 좋아했는데, 그것도 착한 주인공이 마지막엔 꼭 승리하는 로봇 만화를 그렇게 좋아했다. 그 만화의 영향 덕분인지 청소년기에 들어서도 나는 '정의는 이긴다'는 명제를 의심해본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27살인 지금은 '정의는 이긴다'는 명제가 진리가 아님을 알고 있다.

만약 시대착오적인 생각 자체가 죄가 될 수 있다면, '정의는 이긴다'는 명제를 믿었던 나는 유죄인가?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천국과 지옥과 하나님을 믿었던, 중세 서양인들과 같이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했던 나는 유죄인가?

그렇다면 요즘 방영 중인 인기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김수현도 국가정보원에 고발해야 할 것 같다. 몇 백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점을 보았을 때, 봉건사회를 옹호하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 않은가? 생각이 죄가 되는 사회라면 어린 시절의 나도, 김수현도, 무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덧붙이는 글 | 신영준 기자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



태그:#이석기, #내란음모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