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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떴는데 당신 앞에 토끼 한 마리가 턱시도를 입고 서있다. 그것만으로도 이상한데 시계를 보며 "늦었군, 늦었어"라고 투덜댄다. 이런 놀라운 일이! 아마 그럴 경우 따라가기보단 자신의 눈을 의심하거나 정신을 차리려 노력할 게다.

하지만 동화 속의 주인공, 앨리스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보단 쫄랑쫄랑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이상한 나라'에 발을 들인다. 이야기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솔직히 시작부터 이상하지 않은가? 토끼가 시계를 보고 말을 하다니. 동화를 읽는 독자도, 당사자인 앨리스도 처음엔 몰랐다. 마찬가지로 한 발 물러서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들이 많다. 당시엔 모르다가도 말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만 여기면, 지금은 모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동화가 아니란 거다. 앨리스처럼 깼더니 언니 무릎을 베고 있다면, 그냥 기지개 한 번 켜고 훌훌 털면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럴 수 없다. 그래도 따라갈 텐가?

좀 떨어져 바라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참 이상하다. 바로 이런 의문점을 제시하고 친절히 설명까지 해주는 두 권의 책이 있다. 한겨레경제연구소장을 역임한 이원재의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과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이다. 책에서는 현실을 앨리스가 바라본 뒤죽박죽 환상의 세계에 비유하고 있지만, 역시 희망은 있다. 바로 개인의 의지와 참여다. 왜 그런지 보자.

열심히 일하는데, 삶은 팍팍한 이상한 나라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표지 (2012.02)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표지 (2012.02)
ⓒ 어크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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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3일, 새해 첫 출근을 했던 홍익대학교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망연자실했다. 출근카드가 사라졌다. 자신들의 자리엔 낯선 이들이 앉아 있었다. 월급 75만 원을 받으며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휴게실도 없어 창고에서 점심을 먹으며 일했던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부터 스스로 청소노동이나 경비노동을 택했다고 보긴 힘들다. 서복덕씨는 제과점 주인, 박명주씨는 의류 디자이너, 미국에 유학도 다녀온 박진국씨는 예식장 경영자였다. 자신도 모르는 새, 경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자신들의 책임도 아닌 IMF 구제금융, 글로벌 금융 위기는 그 압력에 불을 당겼다.

탐욕의 잔치를 벌인 이들이 싸질러놓은 비용은 개인들의 몫이었다. 다시 말해 지금의 의류 디자이너, 예식장 경영자, 제과점 주인들도 언제든 그들처럼 될 수 있단 얘기다. 혹은 번듯한 대기업에서 시장 논리를 예찬하며 살아가는 청년들도 언젠가는 맞아야 할지 모르는 삶의 굴곡이다.

'사상 최대 실적'이라는 숫자에 가려 이를 뒷받침한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는 그저 부수적일 뿐이다. 우리나라와 동급에 놓이는 그 기업의 실적은 더 큰 공익이다. 인간의 목숨은 숫자 앞에서 한없이 초라하다.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게 마치 그 기업인 양 포장된다. 그 기업이 없는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은 당장에라도 한국전쟁 전후로 돌아갈 것만 같다. 오, 대기업느님!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기업의 실적이 당최 공익과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경제학에서 보통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는 말은 주주 부의 극대화를 실현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 반도체 회사의 외국인 지분율은 절반 정도다. 정작 외국인의 부를 극대화했다는 말이다. 게다가 그 회사의 나머지 절반 주식을 소유한 국민이 몇이나 될는지 모르겠다.

고용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일자리를 늘리지도 않고, 투자도 하지 않는다. 세금으로 연구비를 지원받아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수록 돌아오는 것은 사내하청과 비정규직뿐이다. 4일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한 해 평균 43억 원이 대기업의 연구개발비로 직접 지원됐단다. 내가 낸 세금이 왜 대기업이 생산성을 높여 고용을 줄이는 데 쓰여야 하나?

"만약 한국이 100명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라면, 이 마을 사람들은 어디서 어떤 경제활동을 하고 있을까? 이 마을 사람들 가운데 취업해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59명이다. 28명은 정규직으로 취업해 살고 있으며, 14명은 비정규직이다.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가 17명이다. 그런데 정규직 가운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안정적인 상장 제조기업에 다니는 정규직은 단 1명이다." -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프롤로그에서

우리는 99명이 '1명의 경제'를 자신의 상황으로 착각하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주인공은 단 1명이다. 나머지 99명은,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는 1명을 열심히 응원하는 관객일 뿐이다. 주인공은 풍요를 누리지만 관객들은 고단하다.

'낙수효과'는 과연 존재할까. 사실 '용'처럼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한대수 아저씨가 40년째 "물 좀 달라"고 그토록 외치고 있건만 떨어지는 물은 요원하다. 난 사실 의문이 든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상상 속의 용어는 아닐는지. 우리의 후손들은 그 용어를 '전설따라 삼천리'같은 프로에서나 접할지도 모르겠다.

몇 십 년째 '먹고사니즘'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 표지 (2013.04)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 표지 (2013.04)
ⓒ 한겨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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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늘 우리에게 설명했다. 한국은 열심히 일했고, 눈부신 성공을 거뒀고,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는 행복할 권리가 있고, 소박한 꿈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왜 아직도 행복하지 않고, 소박한 꿈을 이루기는 더 어려워진 걸까? 사람들이 지나친 욕심을 부려서 일까? 노력하지 않아서일까?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 -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 프롤로그에서

분명 그 시절을 추억하는 분들은, 해외에 수출도 하고 대학에서 연구까지 하는 위대한 '새마을운동'의 결실로 우리나라는 잘 먹고 잘 살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판은 '먹고사니즘'이 지배한다. '국격'이 상승했단 소식을 난 분명 들었는데 그럼 그건 환청이었나. 내가 아는 '한국'과 그들이 말하는 '한국' 사이의, 이 격한 괴리감은 어떻게 설명하지?

'먹고사니즘'이 지배하는 정치판은 둘로 갈려 싸운다. 으르렁대고 싸우기만 하는데, 이 51:49의 정치판을 보는데 지겹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지 않나. 그렇다면 이 '먹고사니즘'을 박차고 어떻게 건강한 정치로 힘차게 도약할 건가. 개인의 각성이다. 별로 어렵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쉽다.

"교사와 청소경비 노동자 사이의 소득 차이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도 괜찮은가? 대학교수와 택시운전사 사이의 신분격차가 사라져도 괜찮은가?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거의 사라지고, 빵이나 커피나 식료품은 동네에서 생활협동조합 방식으로 사다 먹게 되어도 괜찮은가?

만일 그런 삶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의 선택지는 분명히 커지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생각하자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은 가능하기도 하고 이미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점진적이더라도 분명한 실천이 필요할 뿐이다." -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 217쪽

책은 그와 더불어 소수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독일의 경우 전통적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이외에도 녹색당이나 해적당 같은 새로운 이념과 구조를 가진 정당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성장하면서 기존 정치권을 자극한다. 그렇기에 거대 정당도 바짝 긴장하며 국민들의 삶 속으로 파고든다.

양당정치는 깨져야 한다. 아니, 최소한 그들이 위기의식을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반값등록금 실행을 위해 '대학생'들이 정치의 장에 뛰어드는 것만큼 확실한 추동력이 또 있을까?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백수'들의 의견이 직접 반영되는 것만큼 확실한 해결책이 또 있을까? 보육문제 해결을 위해 '엄마'들이 나서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또 있을까? 

언제까지 기득권으로 똘똘 뭉친 정치권력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나. 깨닫자. 아직도 자신의 차례가 되리라 버텨오던 99명 중의 1인으로 질질 끌려가기만 할 건가. 1%가 벌이는 파티에 분노하라. 이제는 이 '이상한 나라'와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다. 안녕!

덧붙이는 글 |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이원재 지음, 어크로스 펴냄, 2012.02, 1만4천원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 이원재 지음, 한겨레출판사 펴냄, 2013.04, 1만3천원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이원재 지음, 어크로스(2012)


태그:#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이상한 나라의 정치학,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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