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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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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KI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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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귀지가 왜 가루야?"

백인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 E씨는 귀지 때문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무슨 큰 일이나 난 것처럼 먼저 깜짝 놀란 건 E씨의 귀지를 파주던 백인 남편이었다.

"왜? 그게 어때서? 뭐가 문제야?"하며 반문하던 E씨는 남편의 귀지를 보고선,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경악'했다. 남편의 귀에서는 끈적끈적한 노란색의 귀지가 면봉에 묻어 나왔기 때문이다.

두 사람 다 건강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물론 귀에 염증이 있거나, 다른 질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귀지에 담긴 엄청난 정보

인종에 따라 귀지의 형태나 색깔 등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국인들의 귀지는 E씨처럼 건조하고 옅은 회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한국인들 가운데도 E씨의 남편, 즉 백인들처럼 귀지가 젖어 있고, 색깔 또한 노랗거나 갈색인 사람들이 소수이긴 하지만, 꽤 된다.

귀지는 드물게 단 한 개의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신체적 특징 중 하나이다. 개인간 혹은 인종간 신체적 차이는 보통 여러 개의 유전자가 복합적으로 관여한 결과물인 예가 흔한데, 귀지는 예외적인 셈이다.

귀지는 평소 별 관심을 못 받는 존재다. 혹 이목을 끈다 해도, "더럽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그러니, "귀지가 젖어 있든, 말라 있든 무슨 상관이야"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학자나 전문가들은 귀지를 예의 주시한다. 귀지에 담긴 정보가 엄청난 까닭이다. 단순한 흥미거리로만 접근한다면, 젖은 귀지가 나오는 한국인들 가운데는 조상 중에 시쳇말로 '물 건너' 오신 분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귀지의 '동서 차이'가 너무도 확연하다. 한국인이나 중국인 중 마른 귀지를 가진 사람의 비율을 많게는 95~100%로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반면 흑인과 백인은 99% 이상이 젖은 귀지라는 통계도 있다.

권위 있는 학술지 <네이처 제네틱스>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일본인은 70% 정도가 마른 귀지고, 인도 사람들은 50%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반면 러시아 사람은 1%에 불과했고, 흑인들은 아예 전무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30~50% 수준이라는 보고가 많다.

귀지 상태를 바꿀 수는 없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 귀지가 최근 들어 눈길을 끄는 건, 무엇보다 땀샘 분비선 때문이다. 우리 몸에는 크게 두 종류의 땀샘 분비선이 있다. 가슴이나 등, 손바닥 등 전신에 분포하는 땀샘 분비선이 한 종류고, 다른 한 종류는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주로 밀집돼 있다. 귀에 있는 분비선은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분포한 분비선과 같은 계통이다.

코가 예민한 사람들은 이들 2개 종류의 분비선 때문에 생기는 땀내를 어렵지 않게 구분한다. 팔뚝이나 얼굴 같은 데서 나는 땀냄새는 고약하다고 까지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사타구니나 겨드랑이에서 나는 땀 냄새는 대체로 역겹다. 귀지의 냄새도 사타구니 등과 같은 계통이므로 좋게 느껴질 수는 없다.

겨드랑이에서 냄새가 나는 증상, 이른바 '취한증'(액취증)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최신 조사에 따르면, 젖은 귀지를 가진 사람들은 액취증이 있을 확률이 높다. 젖은 귀지를 가진 서양사람들의 몸 냄새(인내)가 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성들이라면, 귀지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유두 부근에도 사타구니에 분포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땀샘 분비선이 있는데, 이런 분비선이 잘 발달된 여성들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최신 조사 결과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인종 국가인 미국의 인종별 유방암 발병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연방 정부의 지난 약 10년간 통계를 보면, 백인과 흑인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은 인구 10만명 당 120명을 웃돈 반면, 아시안들은 60~70명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유방암 발병 또한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오롯이 유전적인 요인만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샤워나 수영을 자주 한다고 해서, 마른 귀지가 젖은 귀지로 바뀌지는 않는다. 반대로 평소에 귀를 건조하게 유지해도 귀지의 형태가 마른 쪽으로 변하지도 않는다. 일종의 체질인 까닭이다. 사소한 것 같지만, 귀지는 자신의 인체 특성을 파악하는 길잡이 가운데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덧붙이는 글 | 위클리 공감(http://www.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 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 주간지입니다.



태그:#귀지, #유방암,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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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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