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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에 사는 김지웅(30·가명)씨는 매일 오전 7시에 자취방을 나선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오전 8시부터 신촌에 있는 한 대학에서 신문스터디가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해 2월,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한 뒤로 쭉, 언론사 입사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신문 스터디 외에 다른 두 개의 글쓰기 스터디도 신촌에서 진행된다.

"(제가 졸업한) 학교에서는 스터디를 하기 싫더라고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졸업하자마자 제가 원하는 곳에 취업할 줄 알았고, 당연히 학교를 떠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그래서 학교에서 아는 사람 만나는 게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아요."

일주일 동안 그가 스터디에 할애하는 시간은 총 24시간(신문스터디 5회, 글쓰기 스터디 3회), 하루 평균 4~5시간이다. 거기에 이동 시간, 스터디 준비에 포함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그에게 평일 대부분의 시간은 스터디와 관련하여 소모된다.

"스터디 관련한 시간 빼고 조금 남는 시간이 있긴 하지만, 그런 짜투리 시간은 별로 쓸모가 없죠. 신문 읽고 잡지 읽으면서 보내죠. 그래서 사생활은 주말에만 있어요."

스터디에 치여 사는 게 조금 괴롭긴 하지만, 스터디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지웅씨. 그는 자신이 공부에 대한 의지가 약한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스터디를 통해 취업 정보를 교류하고 함께 공부하다보니 시너지 효과도 낸다. 스터디를 많이 하는 게, 어쨌거나 도움이 되긴 된다고 한다.

토요일 오후지만 많은 이들이 모여 스터디를 하고 있다.
▲ 서울의 대표적인 스터디 장소, 이화여대 ECC 토요일 오후지만 많은 이들이 모여 스터디를 하고 있다.
ⓒ 이홍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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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공간

지웅씨의 생각엔 스터디가 그저 취업 준비만을 위한 기계적인 모임만은 아니다.

"신문스터디의 경우는 성실하게 스터디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모두 시간을 칼같이 지키고, 서로에게 피해를 안 주려고 노력해요. 그만큼 분위기도 딱딱하죠. 그래도 다른 글쓰기 스터디에서는 얘기도 많이 하고 가끔, 같이 술도 마시죠. 근데 스터디 목적을 벗어나 인간 관계에만 너무 매달리다 보면, 스터디 자체가 흔들릴 우려 있는 걸 다 아니까, 다들 적절한 선을 지키려고 줄타기 하는 것 같아요."

스터디 내의 인간 관계가 발전해 스터디가 와해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지웅씨는 반년 전에 했던 스터디에서 그런 일을 겪었다. 한 여자 스터디원이 자기 학교 도서관에 없는 책을 남자 스터디 원에게 빌려달라고 자주 부탁하더니만, 결국에 둘이 사귀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그 스터디는 조금 뒤에 해체됐다.

"물론 연애는 조금 극단적인 경우이긴 해요. 제가 또 1년 반 정도 한 스터디가 있어요. 꽤 오랫동안 한 거죠. 근데, 어느 순간 되니까, 스터디원 모두가 이제 이 스터디가 더 이상 자기에게 도움이 안 되는 걸 딱 느껴요. 그래서 누군가 말을 꺼냈고, 마치 합의 이혼하듯 스터디가 해체된 경우도 있어요."

그는 스터디가 잘 유지되려면 스터디원들의 절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제가 있는 스터디는 전부 벌금제를 운영하지 않아요. 보통은 지각, 결석하거나 과제 안 해오면 얼마씩 내잖아요. 근데 그렇게 벌금이 모이면, 어쩔 수 없이 회식을 해야 하고 서로 간의 긴장의 끈이 느슨해져요. 합격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서로를 배려해야 합니다. 그건 곧 절제인 것 같아요. 시도 때도 없이 술자리 벌이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스터디원들 간의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면서 같이 노는 데 관심 보이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런 사람들 있는 스터디는 오래 못갑니다. 물론 스터디에서의 공부도 잘 안 되고요."   
     
좋은 스터디는 곧 들어가기 힘든 스터디

지웅씨는 자기는 운이 좋았다고 한다. 6개월째 유지되고 있는 글쓰기 스터디의 구성원들이 모두 실력이 좋은 편이었고, 그래서 글쓰기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고 한다.

"자기가 쓴 글 가운데 수작을 보내라고 하는 게 글쓰기 스터디의 일반적인인 모집 전형이에요. '전형'이라고 하니까 좀 웃긴데, 암튼 한 번은 제 글을 보냈고 합격해서, 그 스터디에 나갔단 말예요. 근데 막상 참여해보니, 다들 실력이 정말 형편없는 거예요. 물론 제 개인적인 판단이 잘 못된 걸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회한이 밀려왔죠. 자기들도 잘 못하면서 글까지 보내라는 건, 뭐. 결국, 하루 나가고 그만뒀죠."

지웅씨에 따르면, 가끔 '질'이 좋은 스터디에서 충원을 모집하는 글이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다고 한다. 보통 질 좋은 스터디에는 자기 스터디의 이력이 적힌다. '최근 스터디원 가운데 몇 명이 어디에 입사했다', '현재 스터디원들은 대부분 여러 번의 최종 면접 경험이 있다' 등이 그 내용이다. 그럼 질이 좋은 냄새가 나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기 마련이고, 지웅씨도 여러 번 스터디 낙방의 경험이 있다고 했다.

"좋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것처럼, 스터디도 좋은 데에서 하고 싶은 거죠. 좋은 스터디가 백수 신세를 구제해줄 확률이 아무래도 높은 게 사실이고요."

지웅씨는 최근에 어렵게 들어간, KBS 입사 대비 스터디에 참여했다가 그만 둔 적이 있다고 했다.

"저는 제가 스터디를 많이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 갔다가 놀랬어요. 하루 종일 스터디가 잡혀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모조리 KBS 입사 관련 스터디였어요. 피디직을 준비하는 여자였는데, 방송 모니터만 하루에 2~3개씩이고 기출 문제 분석, 방송학 개론 등 KBS입사에 모든 걸 바쳤더라고요. 제가 낄 데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저는 사실 한 군데에만 다 투자할 수는 없었거든요. 그런 사람들 보면, 대단타 싶으면서도 좀 씁쓸하기도 하고."

지웅씨는 마지막으로 모든 취업 준비생들이 더 힘내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이길.

"알아요. '힘내!' 이런 말, 더 스트레스 준다는 거요. 이미 할 만큼 했고, 그런 사람들에게 더 열심히 하라는 건, 뭔가 과부하 거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늘 이런 생각들 때마다 속으로 말해요. '그래서 뭐, 어쩔.' 어쩔 수 없는 거죠."


태그:#스터디,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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