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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삼성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리포트에서도 '반삼성기자'라며 호기 있게 인사드렸는데, 기억하시나요?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했습니다. (저 삼성 말고도 취재하는 거 많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네요. 4대강 사업을 신랄하게 씹어볼까, 야간노동 문제를 짚어볼까, 아니면 국정감사 과정에서 벌어지는 의원실과 기자들 사이의 눈치싸움을 폭로해볼까,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또 삼성을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삼성에는 큰 뉴스가 두 가지 있었습니다. 삼성전자가 3분기 영업이익 10조 원을 달성했다는 소식이 주목 받았지만, 저겐 오히려 그렇게 많은 돈을 버는 재벌 기업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현실에 더 눈길이 갔습니다. 삼성의 최대 실적 이면에 존재하는 '노동자들의 눈물'이 그것입니다.

지난 14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삼성의 노조파괴문서를 공개했습니다. 올해 초 <오마이뉴스>가 단독 보도한 신세계그룹 이마트의 직원사찰, 노조무력화 전략문서와 쏙 빼닮은 문건입니다.(삼성-신세계의 불법, 그들이 가족인 이유) 어찌보면 삼성의 문서가 '원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마트가 삼성의 노조관리 전략을 흉내낸 것이니 말입니다. 이 문서의 전문은 <오마이뉴스> 지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전문보러가기)

보셨나요? 어떠신가요? 저는 '무노조 경영 철학의 우수성을 의식화'한다는 부분에서 뭔가 집단적인 세뇌를 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문서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맹목적인 반노조 의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고 볼 수밖에는. 노조설립을 막고, 직원을 사찰하고, 교섭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게 불법인 줄도 알면서 그러는 걸 보면 말입니다.

삼성은 이 문건이 공개되자 처음에는 "우리가 작성한 게 맞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러다가 "바람직한 조직 문화를 토의하려고 작성한 것"이라며 발뺌했습니다. 그러면서 "애플과 구글도 노조가 필요없는 경영으로 세계적인 그룹이 됐다"는 사례를 들었습니다. 이건 제가 조만간 알아보려고 합니다. 과연 애플과 구글도 삼성처럼 노조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전략 문건을 작성하고, 그것을 이행해 노조가 없는 것인지. 혹시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보나 기사로 써주세요. '모든 시민은 기자다', 다 아시죠? ^^

이러한 문건이 공개 됐음에도 별다른 후속조치 소식이 들리지 않습니다. 심상정 의원은 국정감사 증인으로 이건희 회장을 부르려고 했지만 새누리당이 딴지를 걸었습니다.(심상정 인터뷰 보기) 청문회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열릴 수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고용노동부도 즉각적인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미적이고 있고, 황교안 법무장관은 "확실한 단서가 생기면 수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문건보다 더 '확실한 단서'가 있을까요?

여기서 '반삼성기자'로서 자존심이 살짝 상하기도 했습니다. 심상정 의원은 이 문건을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종편방송 JTBC <9시뉴스>에 단독으로 제공했습니다. 물론 삼성 자본이 들어간 <중앙일보>의 방송사에서 삼성의 문제를 폭로한다는 점에서 파장이 있었습니다만, 아쉽게도 거기에서 멈추더군요. 후속보도는 아직 보이지가 않네요. 30일 금속노조가 이건희 회장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지만 현장에서 JTBC 취재진은 볼 수 없었구요.(관련기사) 뉴스가 아니라고 판단했을까요? 암튼, 개인적으론 이 문건이 <오마이뉴스>로 왔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들면서도, '반삼성기자로 아직 부족한 것 같다'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복기해야 할 삼성 뉴스가 또 하나 있습니다. 지난 6월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삼성A/S의 눈물' 연속기획 기억하시나요? 삼성이 자신들의 직원처럼 부리지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삼성전자서비스 소속 엔지니어들의 고통을 다뤘습니다. 이 보도를 통해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과 관련해 수시근로감독을 실시하게 되었는데, 어이없게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불법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를 비롯해 노동계가 또 다시 '삼성 봐주기'라며 반발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헌데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결과가 당초 예정된 내용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충격적인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지난 13일 은수미 민주당 의원은 수시근로감독에 참여했던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의 음성이 담긴 녹취파일을 공개했는데요.(관련기사) 이 감독관은 "나는 접근도 할 수 없는 고위 공무원 입김이 내려온 것"이라며 "이마트는 안 그랬다, 분위기가 180도 확 바뀌어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애초에 불법파견으로 인지하고 접근했지만 고위공무원의 개입으로 결과가 뒤바뀌었다는 증언인 거지요.

고용노동부와 해당 감독관은 녹취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애초 불법파견 문제가 제기됐던 센터(하청업체)가 수시근로감독 대상에서 빠지고, 고용노동부의 애매한 결론은 의심을 증폭시키기 충분합니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고용노동부의 수시근로감독 결과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곳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판단이 들어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과연 그 근로감독관은 빈말을 한 걸까요? 아니면 우연일까요?

복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대사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형사는 우연을 믿으면 안 돼." 

병원에 누운 고든 고담시 경찰청장의 말입니다. 악당 베인이 지하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정황을 포착한 풋내기 형사 블레이크의 "우연일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지요. 결국 블레이크는 이 믿음 덕분에 위기에서 탈출합니다.

저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기자도 우연을 믿으면 안 돼"라고 말이지요. 적어도 삼성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에서 우연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반삼성기자'를 레벨업 시켜주지 않을까요? 다시 진도를 나가보겠습니다. 조만간 뵙지요. ^^

첨부파일
A0001915961_1.pdf


삼성그룹의 노조파괴문건 전문공개



태그:#10만인클럽, #삼성, #삼성전자, #이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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