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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2월 성탄을 앞두고 국립암센터 9층 복도에 만들어진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아내는 이렇게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가족과 함께!'라는 성탄을 병실에서 보내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랐다. 또 그 다음해에도 '내년에는...'그럴 줄 몰랐다.
 2009년 12월 성탄을 앞두고 국립암센터 9층 복도에 만들어진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아내는 이렇게 사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가족과 함께!'라는 성탄을 병실에서 보내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랐다. 또 그 다음해에도 '내년에는...'그럴 줄 몰랐다.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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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 보세요!"
"잘 찍어주세요, 간호사님!"
"치즈~"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이곳 병원에 들어올 때만 해도 가을의 문 앞이었는데, 벌써 겨울의 가운데까지 와있었다. 며칠 후, 병실 앞 복도에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만들어졌고 병원 안에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조금씩 났다. 유난히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간호사의 권유에 아내를 침대에 누운 채 데리고 나가서 사진 한 장 찍었다.

아내가 입원해 있는 9층엔 소아과병동도 같이 있다. 그래서 머리를 반짝이도록 빡빡 깎은 아이들이 복도를 헤집고 다닌다. 먹고 싶은 게 많은 나이라, 엄마 아빠들이 견디지 못하고 치킨과 피자 등을 몰래 사와 먹이기도 한다. 우리도 몇 번 얻어먹었다. 골수병 백혈병 조혈모세포 항암치료로 병원 밥에는 손도 대기 싫어하니, 한편으로 이해도 됐다.

한 병실에 있다 친해지면 웃고 농담도 하다가 퇴원하면 섭섭하다. 그런데 불쑥 또 와서 "빨간 피, 노란 피 맞으러 왔어요!" 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혼자 떼어놓고 못 보는 막내딸이 생각나서 자주 마음이 무거운데 비슷한 나이의 소아병동 친구들을 보면서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간절히 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호프집에 모인 남자 넷

"어제는 주치의사가 퇴원을 권하더군요."
"아직 치료를 더 해야 하지 않나요?"
"엄마가 도저히 가망이 없다고 보네요. 남은 시간이 두 달 아니면 석 달쯤…."
"우리 집사람도 의식이 안 돌아와서 지칩니다."
"……."
"자, 드세요!"

아내와 함께 병실을 쓰는 환자의 보호자 2명과 아내와 같은 병으로 입원한 옆 병실의 남편, 이렇게 4명이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병원 앞 호프집에 앉았다. 다들 무거운 마음을 안고,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는 속상함에 끙끙거리다가 누군가 '치킨에 생맥주라도 한 잔 하자'고 말을 꺼내는 바람에 나왔다.

A씨는 수술 후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 몇 달 동안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다. 남편과 딸이 교대로 하루 종일 말을 걸고 쓰다듬고 그러다 지쳐 훌쩍인다. B씨의 아들은 어머니의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키려고 의사와 씨름중이다. 의사는 두 달 정도라고 하지만, B씨 아들은 석 달은 더 사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아내와 같은 병을 가진 옆방의 C씨는 눈도 안 보이고, 목소리도 안 나온다. 그는 남편이 무뚝뚝하다고 흉보면서도 많이 미안해한다.

그런 각자 큰 맷돌 하나씩을 가슴에 안고 사는 4명의 남정네가 모인 크리스마스 회식. 아무래도 나중에도 다시 좋은 일로 웃으며 만나기는 힘든 상황이다. 세상은 구원의 메시아가 왔다고 기쁜 소식으로 노래를 부르는 날, 정작 우리는 구원이 까마득해 보이고…. 구원을 원하다가 지쳐서 구석진 자리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맥주 한 잔을 권하고 있었다. 누군가에는 기쁘고 행복할 순간들, 명절이나 휴가철, 크리스마스, 연말연시가 꼼짝 못하고 붙잡힌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쓸쓸하고 외로운 순간이 되기도 한다. 빛이 밝을수록 그늘은 더 짙어진다고 하던가?

"아빠! 메리크리스마스!"
"응, 우리 딸, 잘 지내?"
"그럼, 잘 지내지. 엄마 아빠가 없어서 서운하고, 선물도 없어서 아쉽지만! 히히~"
"올라오면 선물 사줄게, 뭐가 받고 싶어?"
"아냐, 엄마 아빠 보면 되지 뭐,"

무거운 마음으로 병원으로 돌아오는데 막내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초등학교 마지막 기말고사에서 공동1등을 했단다. 평균96.09점으로. 중간고사도 1등 했었다. 이래서 사는 힘이 또 보태진다. 고마운 가족, 특히 막내 딸. 교회 행사를 마치고 다음 날 이곳 일산까지 오겠다고 한다. 차를 4번 갈아타고, 시간도 거의 5시간 걸린다. 그래도 벌써 기다려진다. 이렇게라도 가족을 보아야 또 견딜 수 있는 에너지가 채워진다. 충전건전지처럼.

진료비 청구서를 보고 가슴이 철렁

 이 금액에 퇴원 직전 추가로 맞은 면역억제 항암주사비가 또 늘었다. 비싼 비보험 적용으로,
 이 금액에 퇴원 직전 추가로 맞은 면역억제 항암주사비가 또 늘었다. 비싼 비보험 적용으로,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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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을 다녀오니 보호자 침대에 치료비 청구서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액수를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처음 올 때 치료기간 한 달, 비용은 1200~1300만 원 정도 예상 했는데, 치료기간이 석 달 가까이로 늘어나더니… 청구된 액수가 2000만 원이 넘었다. 많이 초과되었다. 

이미 모든 치료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침 회진 때 오신 선생님 말씀이 어제 의뢰한 혈액검사에서 목표치보다 수치가 높아서 부득이 한 번 더 항암 주사를 맞아야겠다고 한다. 한 번에 약 200만 원, 그러면 병원비가 또 올라가겠네. 머릿속엔 그 계산이 먼저 떠오른다. '주사를 맞고 좀 더 좋아져야 할 텐데'가 아니고.

아내는 또 몸 둘 바를 모르고 무거운 마음으로 내 눈치만 보고 있다. 마치 죄인처럼 한숨만 쉬면서. 4~5일 후면 재활병원으로 옮길 예정이었데 내일부터는 이 일을 해결하러 여기저기 연락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안 되면 야밤에 환자만 데리고 도망이라도 가든지.

병원을 떠돌면서 많은 사람들이 몸의 고통과 병원비용 문제로 힘들어 하는 것을 본다. 이중의 고통, 간병하는 것도 생사를 걸고 체력싸움을 하는 참인데 병원비 걱정까지 안고 가는 가족들 보호자들이 참 딱하다. 하나님이 병원 옥상에서 돈다발 하나만 뚝! 던져주면 좋겠다. 병원비하고 못 먹은 맛난 음식이라도 실컷 좀 먹어보라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아빠가 된 기분이라니...

 초가을에 병원에 들어갔는데 어느덧 폭설이 쌓인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병실이 갑갑하다는 아내를 담요로 꽁꽁 싸매고 국립암센터 병원 뒤쪽으로 데리고 나온 날.
 초가을에 병원에 들어갔는데 어느덧 폭설이 쌓인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병실이 갑갑하다는 아내를 담요로 꽁꽁 싸매고 국립암센터 병원 뒤쪽으로 데리고 나온 날.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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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겨울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왔다하면 폭설에, 이틀이 지나지 않아 또 쌓이고, 아내를 데리고 병원 뒤쪽 길로 나갔다. 두꺼운 담요로 온몸을 칭칭 두르고, 아무도 나오지 않은 한겨울의 눈 쌓인 정경은 마치 영화 속 장면 같다. 상쾌하기도 하고 살 것 같았다. 병실에서만 석 달을 지낸 아내는 더 그랬을 거다.

그 쌓인 눈 때문에 고민이 생겼다. 딸아이가 병원으로 와서 연말을 같이 보내고 새해 이튿날 다시 충주시골집으로 내려갔다. 학교에서 특별히 우리 딸아이를 2명 보내는 영어캠프에 선발해주었다. 공부 성적과 가정형편을 복합 고려했을 거라는 짐작이 들었다. 고맙고 기뻤다. 자력으로는 보내기 힘든 프로그램이었다.

"아빠, 어떻게 해? 버스가 못 들어온대, 나 영어캠프 가야하는데…."
"눈이 그렇게 많이 왔어? 어쩌냐… 면사무소 앞 콜택시도 안 들어오겠네?"
"그럼 버스도 못 들어오는데 택시가 오겠어? 나 꼭 가고 싶어,"

문제는 폭설이었다. 아이가 지내는 산골 외할버지네는 버스가 4번 들어오는데 눈 때문에 운행을 안 하기로 했단다. 아이는 나갈 길이 막연하고, 이런 일이 생길 때는 우리 처지가 더 원망스러웠다. 아이는 속상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전화를 해왔다. 멀리 떨어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아빠가 된 기분이라니….

"담임선생님이지요?"
"예, 어떻게 지내세요?"
"그냥 그런대로 치료받고 있어요. 다름이 아니라 아이 영어캠프 입소해야하는데…."

할 수 없이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려운 추천을 해주셔서 잡은 기회지만 보낼 길이 막막하니 못가면 못가는 사정이라도 연락을 해드리는 게 도리일 것 같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연초를 이용한 교육 중이신데도 불구하고 학교의 스쿨버스 운행 기사님과 연락을 해가면서 아이를 캠프장소인 대학까지 무사히 데려다줬다. 너무 고맙고 목이 메여 감사하다는 말도 잘 안 나왔다.

그 선생님의 제자 사랑을 충북도교육청에서도 높이 보셨는지, 지방 신문에 알려주셨다. 선생님은 그 전에도 아이가 방송 출연을 거부해서 모금방송이 취소될 뻔 했을 때, 아이를 설득해서 참여시켜주셨다. 그 덕분에 지금 이 병원에서 장거리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고마움이 크다. 아이도 나도 오래도록 고마운 선생님을 기억할 것이다. 어려운 산을 넘을 때 이런 도움의 손길, 보탬이 큰 힘이 된다는 걸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고마운 선생님!

덧붙이는 글 | 2009년 12월~2010년 1월 초 국립암센터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을 때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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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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