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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이 자명한 사실.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 완강한 사실. 평화는 아이들이 앓지 않는 것이다. '강정 평화마음 동화'는 구럼비라는 우주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사실을 바탕으로 쓴 손바닥 동화이다. 그 마을에 아이들이 자라고 있음을 자주 잊은 일을 용서받기 바라는 글쓰기이다. - 기자 말

강정 평화마음 동화
 강정 평화마음 동화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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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물길 사는 성우네 집에 모여 모듬 숙제를 했다. 성우네 집까지 가는 동안 해가 불화살을 천만개씩 쏘아서 정수리부터 발등까지 꾹꾹 찔렀다. 한 달 전에 비가 오고 계속 가물어서 공기가 바삭바삭하다. 같이 가는 진섭이도 따갑고 더우니까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걸었다. 나는 진섭이 귀뚱베기를 툭 치고 도망쳤다.

"진섭아, 너 얼굴 까만 콩자반 같다 히힛."
"머라고? 너는 삶은 문어야 임마. 너 이리와 보라 초고추장 찍어 막 먹어불켜이!"

진섭이는 원래 까무잡잡한데 여름이면 완전히 새까매진다. 쫓아오는 진섭이와 함께 어차피 더우니까 빨리 가자고 막 달렸다. 성우네 도착해서 머리에 물을 몇 바가지 뒤집어쓰니 살 것 같았다.

모듬 숙제는 우리 마을 특성을 찾아 조사하는 것이었다. 다른 모듬 애들이 모르는 것을 찾아내는 게 우리 목적이다.
 
"강정은 물이 좋은 게 특징이야. 물이 좋아서 옛날에 탐라국 도읍지였댄. 냇길이소 사진도 넣고 우리 마을 7올레 코스 약도를 우리가 그려 넣으면 어떨까?"
"그건 너무 평범한 거 아니냐? 그리고 젤 아름다운 멧부리부터 포구까지 길이 지금은 기지공사장 안으로 다 들어가버렸는데 뭐. 유물 나오던 들판도 삼발이로 덮여서 도읍지였는지 뭔지 흔적도 없어."

유정이와 진섭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우가 뒤로 벌렁 누웠다 일어나며 말했다. 

"바다도 안 보이게 펜스 다 쳤잖아. 강정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범죄자 젤 많고 벌금 젤 많이 내는 마을이랜."

나도 마음이 상해서 한 마디 했다.   

"진짜 범죄자는 아니다! 억울한 사람 젤 많은 마을이래야 맞지. 우리 아빠도 잡혀가서 두 번이나 동부경찰서 갇혔어. 나 그때 진짜 무서웠다."
"우리 아빠도 작년 여름에 잡혀갔어. 그때 엄마가 감물 들이면서 '느영나영' 노래 자꾸 불러서 나는 그 노래 싫어."  

진섭이가 투덜대는데, 마당 수돗가에서 장화를 씻던 기철 삼촌이 부르셨다. 

"애들아, 강정이 얼마나 유명한지 모르나? 서울 가도 강정에서 왔다면 알아준다니까?"
"기꽈? 경관1등급 떨어지고 유명1등급 된거마씸?"
"그러니까 나빠진 것 말고 좋은 점을 찾아봐. 그리고 상규는 집에 갈 때 나랑 같이 가자."

삼촌 말씀에 기분이 좀 풀린 우리는 우리 마을 특성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로 정했다. 유정이와 나, 성우와 진섭이가 각각 왜 유명한가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기철 삼촌 자전거 뒤에 타고 오는데, 삼촌이 마을회관 들어가는 골목에 자전거를 세웠다.

"상규야, 잠깐 내려봐. 여기 길 밑에서 무슨 소리 안 들리나?"
"촐랑촐랑? 이거 하수구 물소리 아니꽈?"
"이건 하수가 아니고 냇물 흘러가는 소리야. 원래 여기가 강정천 같은 냇물이거든. 우리 마을에는 내가 두 개 있었어. 삼촌 어릴 때 복개해서 길이 된 거야. 이 냇물이 흘러가 통물에 고이면 섯동네(서쪽 동네) 사람들이 길어서 쓰고 나머지는 또 바다로 갔어. 비 온 후에는 물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데 오늘은 귀를 기울여야 들리지?"
"와~ 통물 다시 꺼내줘요 삼촌! 그럼 강정천까지 안 가도 물놀이 할 수 있겠네!"
"하하하. 너 5학년인데 고추 내놓고 동네 가운데서 놀 수 있나?"

"총칼만 들이대지 않았지... 내 손자가 살 마을이 없어지게 생겼어"

집에 오니 아빠와 국이 삼촌이 거실 테이블 위에 노트북 컴퓨터를 켜놓고 계셨다. 나는 신발을 벗어던지고 뛰어 들어갔다.

"뭐에요, 아빠?"

아빠가 눈살을 찌푸리셨다.

"저리 가라. 너 볼 거 아니다. 엄마가 냉장고에 수박 잘라 놨더라. 가서 먹어라."
"어? 양윤모 하르방이다. 어? 다치겠다!"
"저리 가라니까!"

양윤모 하르방이 땅에 질질 끌려가다가 바지가 벗겨지고 팬티만 입은 채 경찰차에 태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가 버럭 소리를 질러서 난 깜짝 놀라 부엌으로 갔다. 아빠 고함소리에 할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셨다.

"왜 이렇게 시끄러운가."
"네, 아버지, 상규가 이걸 보려고 해서요."
"잘못도 없는 아이에게 소리 지르면 되나."
"애 크는 동안 마을이 계속 뒤숭숭하고 심란한데, 이런 거까지 보이기는 싫어서요."
"보여줘라. 숨긴다고 숨겨지나? 보고저 하면 보여주고 잘 설명해줘. 나는 억울한 일 당하고도 입 다물고 평생 산 것이 후회된다. 해군기지 때문에 고초를 겪고 보니, 우리 모두 마음의 준비가 너무 안 되어 있었어."

나는 식탁에 앉아 수박을 먹으며 힐끔힐끔 거실 쪽을 훔쳐보았다. 아빠랑 마을 삼촌들은 의외라는 얼굴로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잘못이 아니우다. 연좌제 때문에, 시대가 그런 시대라…."
"다들 겁만 냈지. 그래서 얻은 게 뭐 있나. 네 어멍에게 장가 들 때 4·3 피해 가족 아닌 것이 마음에 들었다. 성산에서 하영 먼 데 있는 처가 마을 들어올 땐 다 잊고 자식들 잘 키우자 했지. 그렇지만 해군기지 문제 당하니 무슨 소용이야. 총칼만 들이대지 않았지 이 시대에도 변한 게 없더라. 땅 뺏기고 우애 뺏기고 툭하면 연행에 벌금에…. 내 손자가 마음 놓고 살 마을이 없어지게 생겼어."

매미가 엄청 시끄럽게 울다가 갑자기 뚝 그쳤다. 수박을 한 입 먹는데 목이 메었다.

할아버지는 4·3 때 부모님을 잃었다. 할아버지 동생은 6·25 전쟁 때 해병대에 지원해 입대하였는데 행방불명이 되었다. 큰아방이 군인 가족 되려고 나이도 어린 걸 억지로 군대에 보냈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할아버지는 내가 그분을 많이 닮아 '곱딱하다(곱다)' 하셨다.  

부엌 뒷문으로 나와 뒷마당 수국나무 사이에 오줌을 눴다. 매미 떼가 쓰- 하는 신호음과 함께 다시 울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내가 삼선 슬리퍼 신고 나온 걸 아는지 쓰-레빠 쓰레빠 쓰-레빠 하고 울었다.

매미소리 들으며 가만 서 있으니 유치원 때 구럼비에서 아빠랑 물놀이하면서 듣던 맹꽁이 소리가 생각났다. 아빠랑 바위에 누워 있으면 하늘에는 별이 점점 많아지고 맹꽁이 우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야- 쟤들이 우리 집 맹꽁이 목간하러 온 거 알고 자꾸 부르는구나. 상규야 너는 본래 구럼비 맹꽁이였는데 하두 예뻐서 아빠가 몰래 데려다 사람으로 맹근 거야."

그때만 해도 아빠는 참 잘 웃으셨다. 중덕바다가 안 보이게 펜스가 쳐지고 구럼비가 폭파되면서 그 맹꽁이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우리 마을에 남은 구럼비 맹꽁이는 나 하나뿐일지도 모른다. 맹꽁!


태그:#강정마을, #펜스, #냇길이소, #구럼비 맹꽁이,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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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한국작가회의. 2000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이발소그림처럼> 공동저서 <그대, 강정>.장편동화 <너랑 나랑 평화랑>. 2011 거창평화인권문학상

**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중.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또한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을 위해 '부르면 달려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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