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내가 즐겨 불렀던 '난 아니야'가 수록된 조용필 4집 앨범
 아내가 즐겨 불렀던 '난 아니야'가 수록된 조용필 4집 앨범
ⓒ 한빛음반

관련사진보기

"빨리 나와 밭에 가. 그깟 텔레비 보고 있으면 밥이 나와? 돈이 나와?"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방에서 나오는 소녀의 입이 삐죽 나와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조용필 노래가 나오는데 아버지 때문에 못 보게 되니 속이 상해서입니다.

다른 집 아버지들은 애들 일 많이 안 시키는데, 틈만 나면 일 시킬 궁리만 하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어떤 때는 일 안 시키는 다른 집 아저씨랑 우리 아버지를 바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밭으로 가는 소녀의 발걸음은 무겁습니다. 공일(휴일)날 일 하는 것도 싫지만 조용필이 노래하는 걸 볼 수 없다는 게 더 싫었습니다. 엄마와 오빠는 먼저 와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오빠 일하는 옆에 가서 앉습니다. 오빠는 여동생을 잘 챙겨주었습니다. 힘든 일은 오빠가 다 하고 힘들지 않은 일만 조금씩 하며 따라오라고 일러줍니다.

오빠는 조용필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학교 가면서도 부르고, 소 먹일 풀 베러 지게 지고 개울에 가서도 불렀습니다. 소녀가 조용필을 알게 된 것도 오빠 때문입니다. 밭고랑에 앉아 일하면서도 오빠는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꽃 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빠가 불러주는 조용필 노래를 들으니 속상한 마음이 풀렸습니다. 오빠 곁에 앉아서 풀을 뽑던 소녀도 조그맣게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합니다.

여름 한낮에 꼬마 아가씨
꽃그늘에 숨어서 울고 있을 때
노랑나비 한 마리가 맴돌아 날며
댕기 끝에 자꾸만 앉으려하네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그래, 넌 꽃이 아니야

여고시절 체육시간, 선생님은 날씨 더운 여름날이면 아이들을 학교 뒤편 숲 그늘에 앉혀놓고 노래를 시켰습니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소녀보고 나가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친구들 등살에 밀려 나가 노래하면서도 소녀는 싫지 않았습니다.

하얀 손마다 꽃물 들여서
눈물자국 아직도 지우지 못해
고개 숙여 자꾸만 얼굴 감추고
작은 어깨 흔들며 울고 있더니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대목에 이르면 친구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함께 불렀습니다. 그러다 장난끼 발동한 친구들이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 하면서 "넌 아니야 꽃이 아니야"로 가사를 바꾸어 부르며 깔깔댔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이 땅의 소녀들은 꽃이 되기보다 가족들의 생존을 위한 일꾼이 되고 저임금 을 감당하며 산업 경제를 일으키는 역군이 되었습니다. 조용필의 '난 아니야'를 즐겨 부르던 소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취업해서 모은 돈의 대부분은 대학 다니는 오빠에게 들어갔습니다.

명절이 되어 고향에 오면 여고시절 친구들끼리 모일 때가 있었습니다. 만나서 수다를 떨다보면 여고시절 얘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말괄량이 친구들 얘기, 괴짜 선생님 얘기, 합천 해인사 수학여행 때 개구진 친구들이 장난치다 수학 선생님한테 벌 받던 얘기…. 어쩌다 더운 여름날 체육시간 얘기라도 나오면 친구들은 '난 아니야' 노래를 들어야 한다고 등을 떠밀었습니다.

해 저물면 찬바람에 시들어버리는
그런 꽃이 싫어 난 아니야
울지 않을래 울지 않을래
나비처럼 날아가려네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난 아니야 꽃이 아니야

꽃이 되어 다가온 그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아내는 방송대(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한 직후였습니다. 자신이 번 돈으로 오빠가 대학을 졸업하고 반듯한 직장까지 구하게 되니 가족들 앞에서는 떳떳하고 뿌듯한 생각도 들었지만 뭔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방송대에 입학했다고 얘기했습니다.

나 역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서 교사가 되었기 때문에 방송대에 다니게 된 사연을 들려주는 아내 모습이 눈에 쏙 들어왔고, 그 사연에 가슴이 짠해졌습니다. 그래서 약속했습니다. 꼭 방통대를 졸업시켜주겠다고. 아내는 결혼 4년 만에 방송대를 졸업했고, 그 사이 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마흔 일곱 번째 생일을 맞는 아내에게 대학생인 아들 녀석이 준비하려고 했던 선물이 조용필 19집 앨범 <헬로>였습니다. 조용필을 좋아했던 엄마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하지만 공급 즉시 동이 나버려 엄마 생일날에는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생일 케이크에 불을 붙여 축하해주고 두 아들 앞에 앉혀놓고 처음으로 우리 부부가 결혼하게 된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얘기 듣던 아내가 쑥스럽다며 일어서 싱크대 쪽으로 갔습니다. 그런 아내의 뒷모습에서 문득 처음 만나 함께했던 날들의 추억들이 하나 둘 떠올랐습니다.


태그:#조용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