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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저녁을 먹던 공시생들의 눈이 일제히 TV로 향했다.
▲ 출구조사 발표 직후 노량진 고시식당 풍경 오후 6시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저녁을 먹던 공시생들의 눈이 일제히 TV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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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고시식당에서 한 공시생이 출구조사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 팔짱 낀 노량진 공시생 대형고시식당에서 한 공시생이 출구조사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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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식당에서 줄을 선 공시생들이 출구조사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 고시식당에서 TV를 지켜보는 노량진 공시생들 고시식당에서 줄을 선 공시생들이 출구조사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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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고시식당 벽에 걸려있는 대형TV에서 출구조사를 기다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학원·독서실에서 공부하며 긴 침묵을 지킨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의 경쾌한 웅성거림도 카운트다운 시작과 함께 잠시 멈췄다. 저녁을 먹던 공시생들의 눈이 일제히 TV로 향했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는 박근혜 후보가 1.2%P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오차범위 ±0.8%) 결과가 나오자 공시생들 사이에 작은 동요가 있었다. 작은 한숨이 나오는가 하면 냉소적인 웃음도 튀어나왔다. 한 공시생이 집에 전화를 걸어 "엄마 박근혜 되나봐!"라고 짜증스럽게 말했던 것을 빼면 눈에 띄게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공시생은 없었다.

몇 분의 소요가 지난 뒤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었다. 두 학생이 문재인 후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박빙이네. 문재인 컵밥 먹으러 왔었다며?"
"어, 나 그 때 봤어. 근데 대통령은 안 될 것 같네"


친구와 문재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이아무개(25)씨는 문재인 지지자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1년째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TV토론에서 박근혜 후보가 말을 너무 못해서 문재인 지지로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충북 출신인 그는 부재자 투표를 했다.

노량진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20~30대가 많다. 이들은 부재자 투표를 하거나 투표일인 오늘 고향에 투표하러 다녀오기도 했다. 유승필(26) 씨도 투표를 위해 일부러 고향인 전북 익산에 다녀왔다. 17일에 익산으로 가서 19일 투표를 하고 올라온 것.

유씨는 공무원 시험과목인 국사와 헌법 등을 공부하며 사회의식을 키웠다. 그는 "그런 공부를 해보니 5·16쿠데타, 유신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에 대해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신이 투표했다고 알리고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원래 '새정치'를 추진하는 안철수 지지자였다. 그래서 안 후보 사퇴가 아쉬웠지만 '정권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문재인 지지로 돌아섰다"라고 했다. 친구들에게 투표독려를 할 정도로 마음을 썼음에도 그는 출구조사 결과에 담담했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다연(22) 씨는 노량진에 온 지 6개월째다. 부재자 투표를 한 그는 "이명박 정부가 너무 못해서 실망을 많이 했다. 2007년부터 '이명박근혜'라고 했는데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관련 없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김씨는 또 박근혜 후보가 1979년 전두환 합수부장에게 받은 '청와대 금고에 있던 돈' 6억원, 1982년 경남기업 신기수 회장에게 받은 성북동 집(300평)에 대해 말했다. 그는 "박 후보는 어릴 때부터 갑자기 6억을 받고 집을 받는 등 엄청난 특혜를 받았다.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기자는 유씨와 김씨 두 사람에게 "대통령에 따라 공무원 시험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라고 물었는데 둘 다 "큰 변화 없다"고 밝혔다. 저녁을 먹고 독서실로 간다는 김씨의 슬리퍼를 보니 대선결과가 어떻든 이들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임이 쉽게 예측됐다. 이들의 담담함에는 그런 이유가 있는게 아닐까?

새로운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을 물었을 때 공시생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김씨는 "대통령 되면 갑자기 뭐라도 된 듯 행동하는 것 같다"며 "겸손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유씨는 "반대하는 사람들 이야기도 잘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량진의 일상은 단순하다. 공시생들은 해 뜨기 전 고시원을 나서서 학원·독서실을 전전한다. 투표날인 오늘 쉬는 직장인도 있고 일을 하는 직장인도 있지만 모든 공시생들은 오늘도 학원·독서실이다. 대선 때문에 들뜬 마음으로 책을 덮을 공시생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특별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다들 너무 담담했다. 숟가락도 놓고 집중해서 TV를 보고 있던 한경석(28) 씨에게 "개표방송을 보겠느냐?"고 묻자 그는 "바로 스터디약속이 있어서 힘들다. 나중에 결과만 들을 생각이다"라고 했다.

'엉덩이 무거운 사람이 합격한다'는 말이 있다. 전반적으로 담담한 분위기는 이렇듯 인내심으로 공부해온 탓일까? 공시생들은 오후 6시 출구조사가 발표될 때 몇 분 동요했을 뿐이다. '공시생'들에게는 정치가 일으킬 변화가 마음에 크게 와닿지 않기 때문일까? 이들은 내일도 담담하게 학원·독서실로 갈 것이다.


태그:#노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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