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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에서 칠레로 넘어가는 해발 4660m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탐보 퀘미도 국경
 볼리비아에서 칠레로 넘어가는 해발 4660m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탐보 퀘미도 국경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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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3800m 넘는 티티카카 호수변에 있는 푸노를 출발하여 볼리비아 라파스로 향했다. 잉카제국의 건설 신화를 담고 있는 티티카카 호수는 푸른 하늘빛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우리는 볼리비아 국경을 통과하여 코파카바나에서 라파스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다.

버스는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고원지대를 달려갔다. 하루 종일 황량한 고원지대를 달려 버스는 가까스로 라파스에 도착했다. 멀리 만년설에 뒤덮인 일리마니(6402m) 산이 석양빛에 붉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라파스 근교에 도착한 버스는 갑자기 곤두박질치듯 계곡 밑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버스는 달팽이처럼 생긴 도로를 빙빙 돌며 도심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치 거대한 블랙홀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해발 3632m에 위치한 라파스는 거대한 접시처럼 생긴 분지와 협곡에 세워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수도다. 어둠이 짙게 깔리자 언덕에는 수만 개의 불빛이 은하계의 별처럼 반짝거렸다. 엘 알토라고 하는 빈민촌을 지나 버스는 프란시스코 광장 근처의 글로리아 호텔이라고 표시된 도심에 정차했다. 

고산지대 여행에 지친 여행객들이 마치 묶인 자루처럼 미끄러지듯 버스에서 내렸다. 아내와 나도 배낭을 걸머지고 버스에서 내려 론니 플레닛(Lonely Planet) 가이드북에서 찜해 두었던 호스텔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오늘따라 배낭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고, 뒷골이 당기며 어지럼증까지 생겼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우리가 찜해 둔 숙소는 알로자미엔토라는 3달러짜리 게스트 하우스다. 지도를 보니 걸어서 가기에는 꽤 먼 거리였다.

택시는 산 프란시스코 광장을 지나 점점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티티카카 호수에서 라파스로 가는 여정도
 티티카카 호수에서 라파스로 가는 여정도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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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힘들어서 도저히 걷지 못하겠어요. 택시를 타고 가는 게 좋겠어요."
"사실 나도 무척 힘들어요."

다른 여행객들도 택시를 타고 하나 둘 사라져 갔다. 택시를 잡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곧 택시 한 대가 우리들 곁으로 다가왔다.

"알로자미엔토 호스텔로 가는데 얼마지요?"
"10볼리비아노."
"너무 비싸다. 5볼리비아노."
"오케이."

미터기가 없는 볼리비아의 택시는 사전에 흥정해야 한다. 시원시원하게 생긴 젊은 운전사는 흥정을 흔쾌히 받아들이더니 큰 배낭을 받아 트렁크에 실었다.

택시는 산 프란시스코 광장을 지나 점점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지도상으로 걸어서 20여 분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은데 택시가 어쩐지 빙빙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나는 운전사에게 물었다.

"다 온 것 아니요?"
"네, 길이 막혀서 좀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더니 운전사는 길모퉁이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어떤 남자 한 사람을 태웠다.

"아니, 왜 갑자기 사람을 태우지요?"
"같은 방향이라고 하니 태운 겁니다."
"안돼요. 우릴 먼저 데려다 주시오."

빼빼한 체구에 안경을 쓴 그는 운전사의 말에 맞장구를 치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앞자리에 탔다. 그 사이에 또 한 사람의 건장한 남자가 내 옆에 탔다. 구릿빛 얼굴에 레슬링 선수처럼 생긴 근육질의 원주민이었다. 선글라스를 쓴 그가 어쩐지 섬뜩해 보였다. 뭔가 꼬여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왜 또 사람을 태우느냐?"
"이 사람은 경찰이다."
"뭐, 경찰?"
"그렇다. 나는 마약을 단속하는 특수경찰이다."
"경찰이 왜 사복을 입고 있느냐? 믿을 수 없다. 우리를 당장 내려주시오."
"특수경찰이라 사복을 입은 것이다. 이게 내 신분증이다. 당신들도 신분증을 보여주라."
"응할 수 없소. 당신이 경찰이라면 경찰서로 가자."

그렇게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택시는 어느 으쓱한 골목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외진 골목엔 오가는 사람도 없고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좁은 택시 안에서 세 사내는 갑자기 험악한 표정을 짓더니 강도로 돌변했다. 그들은 카메라가 든 내 작은 배낭을 빼앗아갔다. 아내는 이미 얼굴이 파래져서 공포에 떨고 있었다.

"지갑과 복대를 꺼내라."
"안 돼, 줄 수 없다."

그 순간 두 사나이가 나를 양쪽에서 틀어잡고 내 몸을 수색했다. 아내가 "사람 살려!"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내의 볼멘소리는 공허하게 허공을 맴돌뿐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들이 없었다. 순간 나는 침착해야한다고 다짐했다. 돈보다도 몸을 다치면 큰 일 아닌가? 험악해진 그들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힘으로 몸을 뒤진 그들은 내주머니와 허리에서 복대를 낚아채갔다. 힘으로는 그들에게 도저히 역부족이다.

그들은 복대와 지갑을 털어내자 신용카드, 여권, 여행자수표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더니 그들은 내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마 그들은 현금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 지갑에는 몇십 달러 정도의 현금이 들어 있을 뿐이다. 배낭에도 카메라와 여행 가이드북 등만 들어 있을 뿐 현금은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이제 아내에게 손을 대려고 했다.

볼리비아 라파스로 가는 고원지대. 멀리 만연설이 덮인 일리마니 산(6402m)이 보인다.
 볼리비아 라파스로 가는 고원지대. 멀리 만연설이 덮인 일리마니 산(6402m)이 보인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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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는 절대로 손대지 마라."
"그럼 순순히 복대와 지갑을 내놔라."

만약 그들이 아내 몸에 손을 대면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저항을 할 태세를 취하며 그들을 쏘아 보았다. 이미 파랗게 질린 아내는 험악한 상황을 보더니 겁에 질린 채 복대를 끌러서 그들에게 건네주었다. 아내의 복대에는 푸노에서 여행자수표를 바꾼 현금이 800달러나 들어 있었다. 우유니 사막여행 계획을 하고 있던 우리는 그곳에서는 여행자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기 어렵다는 정보를 듣고 푸노에서 환전을 했다. 마침 푸노의 은행에서는 환전수수료가 거의 없어 볼리비아에서 쓸 현금을 충분히 바꾸어 두었다. 아내의 복대에서 현금이 나오자 그들은 갑자기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마약은 없는 것 같군. 이봐, 이 친구들 짐을 트렁크에서 꺼내주고 내려줘."

경찰 행세를 한 사내가 두목인 듯했다. 운전사가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고 우리 큰 배낭을 꺼내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내리라는 시늉을 했다.

"당신들에게 더 이상 조사를 할 게 없다. 여기 당신 지갑과 복대, 가방을 줄 테니 차에서 빨리 내려라."

현금을 챙긴 그들은 여권, 지갑, 복대, 신용카드와 여행자수표까지 순순히 돌려주었다. 그들이 넘겨준 것들을 챙겨 넣고 나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내의 손을 잡고 택시에서 내렸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그들은 유유히 골목길을 빠져나가 버렸다. 아내와 나는 얼이 빠져 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몸을 다치지 않고 지갑과 여권, 카메라 가방을 되돌려받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을 해야 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나는 울고 있는 아내를 달래며 배낭을 챙겼다. 돈이 생명을 구한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돈을 지키다가 칼이라도 맞으면 어쩔 뻔했는가.

처음부터 '라디오 택시'를 탔더라면 이런 일이 없을텐데...

라파스로 가는 황량한 볼리비아 고원
 라파스로 가는 황량한 볼리비아 고원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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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야 하지?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우리는 버스도 사람도 없는 골목길에서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어쨌든 숙소로 가야 했다. 그때 마침 택시 한 대가 다가왔다.

"엇, 또 택시야."

택시를 보자 가슴이 섬뜩했지만, 나는 택시를 불러 세웠다. '라디오 택시'라는 캡이 지붕에 달려 있었다. 지갑을 열어보니 1달러짜리 지폐가 세 장이 남아 있었다. 녀석들이 내 지갑에 남긴 3달러였다. 이 돈이면 택시는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택시 강도를 당하고도 또 택시를 타요? 흑흑…."
"어쩔 수 없지 않소. 이건 '라디오 택시'라 안전할거야."
"그걸 어떻게 믿어요?"

나는 아내의 손을 잡아당겨 먼저 택시에 태우고 큰 배낭을 트렁크에 싣지 않고 끌어안았다. 라디오택시는 비교적 안전하다는 정보를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라디오 택시를 탔더라면 이런 일이 없을텐데...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시 방심을 하고 아무 택시를 탄 게 화근이었다. 남미의 도시를 여행할 때, 방심은 금물이다. 특히 페루의 리마나 라파스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호텔 콘티넨털로 갑시다."

아내는 택시 안에서도 계속 울먹였다. 당초에 나는 콘티넨털 호텔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곳은 15달러로 알로자미엔토 게스트하우스보다 비쌌다. 숙박비를 아끼자는 아내의 의견에 따라 숙소를 바꾼게 엄청나게 비싼 호텔비를 지불한 꼴이 되고 말았다.

호텔 콘티넨털의 밀렌카 가족. 맨 우측이 밀렌카,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 그들은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였다.
 호텔 콘티넨털의 밀렌카 가족. 맨 우측이 밀렌카,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 그들은 우리를 지켜주는 수호천사였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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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강도가 남겨준 3달러의 여유(?)로 우리는 호텔 콘티넨털에 무사히 도착했다. 비센타 광장 근처에 있는 거리에는 노점상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강도를 당하고 나니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강도처럼 보였다. 호텔로 들어간 우리는 신용카드로 체크인을 했다. 울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데스크의 여직원이 아내와 나를 이상한 듯 번갈아 보았다. 그녀는 마치 우리가 부부싸움이나 하지 않았나하는 눈초리였다. 체크인을 하고 배정 받은 룸으로 들어가 아내를 달랬다.

"여보, 오늘 일은 우리가 그 택시 강도들에게 전생에 진 빚이라고 생각하고 잊어 버립시다. 몸을 다치지 않은 것 만해도 얼마나 다행한 일이오."
"어떻게 금방 잊어버려요? 리마에서는 배낭을 도둑맞았는데, 여긴선 강도를 만나다니…. 오늘 밤이라도 당장 볼리비아를 떠나고 싶어요. 지금 생각 같아선 여행도 집어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으음….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아마존도 가보고 우유니 사막도 가 봐야 하지 않소?"
"아마존이고 우유니고 다 싫어요. 볼리비아가 싫어요. 그러니 라파스를 빨리 떠나요."
"그럼 내일 아침 칠레로 넘어가기로 해요."

나는 아내를 달래며 프런트로 내려와 칠레 아리카로 넘어가는 버스 편을 알아보았다.

"라파스에서 칠레 아리카로 넘어가는 버스가 있나요?"
"잠시만요. 시간표를 한번 체크해 볼 게요…. 내일 오전 6시 30분, 7시 30분 그리고 12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군요."
"지금 버스표를 살 수 있나요?"
"오늘은 너무 늦었고요. 내일 아침 일찍 나가면 살 수 있을 거예요. 부인은 좀 어떠세요? 계속 울고 계시던데."
"네, 그런 일이 좀 있어서요."
"무슨 일이신대?"
"사실은 라파스에 도착하자마자 택시강도를 만났답니다."
"오, 저런! 택시 강도를…"

그때 2층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내려왔다. 옅은 갈색 톤의 파마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 고구마처럼 친근하고 포근하게 보였다.

"저희 어머님이세요."
"아, 그래요. 내일 아침 7시 30분 버스가 좋겠군요. 내일 아침 늦지 않게 좀 깨워주세요."
"염려마세요. 내일 아침에 일찍 깨워드리지요."

밀렌카라고 하는 호텔 직원은 매우 친절했다. 그녀가 우리가 택시 강도를 당했다는 딱한 사정을 애기하자 그녀의 어머니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미안하군요. 라파스에서 그런 일을 당하다니."
"네, 경찰에 신고를 좀 하고 싶은 데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일단 저희가 전화로 경찰서에 신고를 해 드리지요. 그러나 그 강도들을 잡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근처에 현금을 찾을 수 있는 은행이 있나요?"
"네, 광장에 가가면 ATM이 있긴 한데, 밤이라 위험하니 내일 아침에 가서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하지만 수중에 현금이 한 푼도 없어서 저녁을 사먹을 돈도 없어서요."
"걱정 마세요. 그 정도라면 저희가 빌려드리지요."

그러면서 밀렌카는 20볼리비아노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호텔 콘티넨털은 말이 호텔이지 가족들이 경영하는 작은 호스텔이다. 아버지가 사장이고 밀렌카와 그녀의 어머니가 종업원으로 운영하는 작은 호텔에는 레스토랑도 없다. 나는 밀렌카가 빌려준 돈을 들고 거리에 나가 빵과 우유를 사들고 들어왔다. 그러나 아내는 생각이 없다며 누워만 있었다.

"내일 아침 7시 30분에 칠레 아리카로 넘어가는 버스가 있다고 하니 그 편으로 아리카로 떠나요. 여보, 뭘 좀 먹어야지. 그래야 인슐린도 맞지."

아내는 우유에다 빵 몇 조각을 먹더니 다시 돌아누웠다.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누군가가 우리 방문을 노크했다. 문을 열어보니 밀렌카의 어머니 마리나였다. 그녀가 약속대로 우리를 깨워 준 것이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다. 마리나는 호텔 앞에 택시를 대절시켜 놓았다고 했다. 그녀는 버스터미널까지 우리와 함께 동행을 해주겠다고 했다.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가!

배낭을 챙겨들고 마리나와 함께 택시를 타고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표를 사러 갔다. 마리나가 매표소로 가서 문의를 하더니 7시 30분 버스는 출발이 취소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다시 울상이 되고 말았다. 다음 버스는 12시 30분에 있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12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샀다. 마리나는 호텔로 가서 기다렸다가 다시 나오자고 했다. 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겠다는 아내를 달래서 다시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우리는 마리나와 함께 다시 버스터미널로 갔다. 12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1시경에 출발을 한다고 했다. 이 버스도 제대로 출발을 할 수 있을러니 심히 염려가 되었다. 우리는 마리나와 함께 터미널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마리나, 정말 고마워요. 우린 결코 당신을 잊지 못할 겁니다."
"천만에요. 좋은 여행이 되기를 기도할게요."

아내는 마리나의 손을 잡고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짧은 만남, 아쉬운 이별! 이별이란 언제나 그런 거다. 그렇게 인사까지 하고 버스에 올라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차장이 올라 오더니 이 버스는 고장이 나서 출발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아내는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흑흑, 떠나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다니…"
"정말 황당하군.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요. 내려야지."

나는 넋이 나간 아내의 손을 붙잡고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가 떠날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마리나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어찌 된 일이죠?"
"버스가 고장이 나서 오늘은 떠나지 못한다고 하는군요."
"저런! 그럼 내일 출발하는 버스표를 알아보고 일단 다시 호텔로 돌아가지요."
"그럴 수밖에 없네요."

우리는 내일 아침 6시 30분에 출발하는 'Tur Bus' 티켓을 구입한 뒤 다시 콘티넨털 호텔로 돌아왔다. 이 버스는 칠레 버스이기 때문에 틀림없이 떠날 것이라고 마리나가 말했다. 도대체 호텔과 버스터미널을 몇 번이나 들락거려야 하는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지만,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콘티넨털 호텔에서 하룻밤을 더 묵기로 하고 여장을 풀었다. 마리나와 밀렌카 모녀는  딱한 듯 우리를 바라보더니 호텔비용까지 절반으로 깎아주었다.

라파스의 한국인 식당 잉카레스토랑 위치도
 라파스의 한국인 식당 잉카레스토랑 위치도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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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초이, 이 근처에 한국음식점이 있어요. 거길 한 번 가 보세요."
"여기서 가까운가요?"
"네, 아주 가까워요. 잉카식당이라고 하는데 5분정도 걸어가면 되요. 내가 안내를 해드리지요."

이번에는 마리나의 딸 밀렌카가 앞장을 서서 잉카식당을 안내해 주었다. 한국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전환이 될 것 같아 아내를 달래며 밀렌카를 따라 나섰다.

우리는 광장에 있는 은행 ATM에서 카드로 현금을 인출했다. 밀렌카와 아내가 뒤에서 망을 보고 나는 조심스럽게 현금을 인출했다.

'잉카식당(Placio del Inka)'이란 간판을 단 한국식당은 일람푸 거리와 산타크르즈 거리 교차점 2층에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10대로 보이는 소년이 홀로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밀렌카는 호텔로 돌아가고 우리는 김치찌개를 시켰다. 소년은 그의 어머니가 시장을 보러 가서 조금 있으면 돌아올 거라고 했다.

꽤 넓은 식당이었다. 야채는 뷔페식으로 골마 먹을 수 있게 진열을 해 놓고 있었다. 야채샐러드를 먹고 있는데 한국인 아주머니 한분이 들어왔다. 소년이 김치찌개를 가져오더니 말했다.

"저희 어머님이세요."
"아, 그래요. 우린 서울에서 여행을 온 부부입니다."
"어머나! 그러세요. 이렇게 두 분이서만 여행을 다니세요?"
"네. 그렇답니다."
"한국인을 오랜만에 뵙게 되는군요. 정말 반가워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타원형 얼굴에 서글서글한 눈동자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래, 라파스 여행은 어떤가요?"
"말도 마십시오. 도착하자마자 택시 강도를 만나 내일 라파스를 떠나려고 합니다."
"강도요?"

우리의 자초지종을 들은 소년의 어머니는 정말 안 되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주방에 무언가를 시켜놓고 다시 우리 자리로 왔다. 그러면서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 다행으로 생각을 하라고 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볼리비아에 여행을 왔다가 불리비아가 좋아서 10년 넘게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남편이 얼마 전에 은행에서 돈을 찾아오다가 은행 현관에서 강도들에게 몽땅 털리고 말았다고 했다. 남편은 알파카 원단 무역을 하는데, 알파카 원단을 사기 위해 5만 달러 상당을 찾아오다가 그런 변을 당했다고 했다.

"이런 경우는 은행직원과 강도, 그리고 경찰들이 짜고 하는 소행일 가능성이 많아요. 수사 의뢰를 했는데도 지지부진하고 오히려 수사비용을 청구한답니다."
"에구머니나! 어찌 그런 일이…."
"그러니 몸을 다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하세요. 남편은 화병이 생겨서 잠시 쉬겠다면 LA에 친구 집에 가 있어요."

이야기가 한참 무르익어 가고 있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테이크 접시를 소년이 들고 왔다.

"아마존 유역에서 나는 볼리비아산 소고기예요. 아주 부드럽고 맛이 괜찮아요. 제가 두 분을 위로하는 의미로 특별히 한 턱 쏘겠습니다."
"아, 이런, 정말 감사합니다."

잉카식당 모녀, 볼리비아산 소고기로 위로

해발 3600m 가넘은 라파스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입구에는 엘 알토 빈민촌이 언덕에 들어 서 있다.
 해발 3600m 가넘은 라파스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입구에는 엘 알토 빈민촌이 언덕에 들어 서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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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스테이크는 그녀의 말처럼 입에서 살살 녹았다. 아내도 그녀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굳었던 마음이 다 풀린 듯했다. 잉카식당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전에 차떼기 도둑까지 들어 텔레비전, 전축 등 값나가는 것을 몽땅 떨어가 버렸다고 했다.

"그래도 전 볼리비아가 좋아요. 돈은 다시 벌면 되지 않겠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안정이 되면 우리 부부처럼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한국에 오시면 꼭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땐 저희가 한 턱 쏠게요."
"네, 그러지요. 그럼 남은 여행 잘 하시고 기회가 닿으면 볼리비아에 다시 한 번 오세요. 우유니 사막도 안 가시고 그냥 떠나신다니 섭섭하군요."

그녀는 아들에게 우리를 호텔까지 바래다주라고 했다. 세상엔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어제는 악마 같은 강도를 만났는데, 오늘은 천사 같은 사람들을 만났으니 말이다. 우리는 밀렌카 가족과 잉카식당 주인을 우리들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라고 부르기로 했다. 천사가 따로 있는가? 바로 그들이 수호천사들이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Tur Bus'를 타고 라파스를 출발하여 해발 4660m의 안데스 탐보퀘마도Tambo 국경을 넘어 칠레 아리카에 무사히 도착했다. 악마 같은 라파스의 택시 강도, 천사 같은 밀렌카 가족, 그리고 잉카식당의 모녀!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한 편의 드라마틱한 추억으로 가슴 한 편에 남아 있다. 그들이 그립다.

덧붙이는 글 | 나의 황당 해외여행기



태그:#라파스에 만난 악마와 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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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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