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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에서 이어집니다)

색색의 네온사인이 점점 많아지고, 길거리 여기저기에 심상찮은 옷차림의 여자들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오오... 언니, 저기, 저기 좀 봐..."

후배가 말을 잊지 못하기에 고개를 돌려보니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어떤 클럽의 모습이 보였다. 요란한 음악소리와 초록색 조명 속에서 뒷모습을 보이며 춤을 추는 여자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체였다. 주위를 돌아보니 어느덧 그와 유사한 클럽들이 빽빽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게 아닌가. 클럽 주위에는 검은 정장차림에 무전기를 든 수십 명의 '깍두기'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손짓을 하고, 자기들끼리 무전을 주고 받으며 장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 역시 머리카락이 쭈뼛 설만큼 놀랐으나 기왕 각오하고 온 만큼 이런 데서 촌티나게 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명하니 클럽을 쳐다보고 있던 후배의 벌린 입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야야, 정신 차려. 그렇게 입 벌리고 있다가는 모기가 들어가도 모르겠다. 우리 가는 데는 거의 골목 끝이래. 빨리 와."

'퀸즈클럽'은 2층에 있었다. 여자들도 스스럼없이 받아주는 곳이라고 소문이 나 있는 클럽이라고 한다. 우리가 도착하니 요란스런 '웰컴' 소리와 함께 미니스커트에 긴 부츠로 멋을 낸 젊은 아가씨들 두 명이 힘차게 클럽의 문을 열어줬고, 우리는 드디어 '별천지' 속으로 진입했다. 

육체와 욕망의 난장 속에서

팟퐁 거리의 초입구. 사실 팟퐁은 야시장, 짝퉁 시장으로도 유명하다.(출처:http://blog.naver.com/ung3256)
 팟퐁 거리의 초입구. 사실 팟퐁은 야시장, 짝퉁 시장으로도 유명하다.(출처:http://blog.naver.com/ung3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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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안은 춥다 싶을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놨다. 그리고 귀청이 찢어질 듯한 음악소리와 어두운 조명 때문에 처음 몇 걸음 움직일 동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내 우리나라의 의사들이 입는 것 같은, 흰 가운을 걸친 여자들이 쫓아 나와 우리를 맞아준다. 그녀들을 따라 좁고 어두운 복도를 조금 걸으니 이내 환한 불빛이 비치는 원형 무대가 있는 넓은 홀이 등장.

원형 무대는 홀의 정중앙에 있었고 조명은 무대를 집중적으로 비췄다. 그리고 무대와 객석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있었고, 그 공간 뒤로 객석이 둥글게 계단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아, 그러나 그런 무대의 모양, 객석의 배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대 위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아가씨들 열댓 명 정도가 한꺼번에 올라와 무표정하게 춤을 추고 있었기에, 우리의 눈과 귀와 모든 신경은 충격 속에 오로지 그 무대를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나는 내심 각오를 하고 왔긴 했지만 이렇게 나체의 여자들이 한꺼번에 등장할 줄은 몰랐기에 한동안 멍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들, 벌거벗은 무희들은 간혹 무대에 박혀 있는 봉을 잡고 포즈를 취하거나, 무대 앞 가까이에 앉아 있는 손님들에게 다가가 도발하곤 했지만,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가라앉은 표정이었다.

반면 무대와 객석사이, 좁은 공간은 서양 남자들의 차지였다. 그들은 자리에 앉지도 않고 무대의 가장 가까이서 아가씨들과 함께 춤을 추거나 맥주를 병째 들이키고 있었다. 머리를 빡빡 민, 마치 영화에 나오는 신나치주의자처럼 생긴 건장한 서양 백인 남자 하나는 무대의 아가씨 한 명을 내려오게 해서 자기 무릎위에 앉혀놓고 흥청거리며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우리를 안내하던 클럽의 여자들이 우리에게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환한 자리를 권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민망해 죽겠는 판에 남들에게 얼굴이 다 보이는 환한 자리를 주니 우리 두 여자는 화들짝 놀라며 이 자리는 맘에 안 든다고 손짓 발짓 이야기했다. 그러나 안내원들은 본체만체 가 버렸고, 우리는 울며 겨자먹기로 앞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나는 손나발을 만들어 같이 온 '깨진 안경'의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우리한테 왜 이런 자릴 주는 거예요? 뒤로 가면 좋겠는데!"

그러자 그 역시 손나팔을 만들어 내 귀에 대고 소리쳤다.

"있어보면 알아요!"

일단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서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데 누군가 내 옷소매를 확 당겼다. 나는 무심코 그쪽을 쳐다봤다가 또 한 번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전라의 여자가 싱글벙글 웃으며 내 옷소매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색이 된 내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비어, 비어, 원 바틀! 프리젠트!"라고 외쳤다. 나는 돈이 없다고 둘러대고 얼른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동행들에게 돌렸지만 그쪽 역시 남을 도와줄 형편이 아니었다. 같이 온 후배는 물론이고 '깨진 안경'에게는 아예 두 세 명의 여자들이 붙어 있었다. 그는 제법 태연히 우리에게 손나발을 불었다.

"사주지 마세요. 맥주든 콜라든 엄청 비싸요. 알았죠?"

계속 치근거리는 여자의 손길을 떼어내며, 나는 다시 무대로 눈을 돌렸다. 무대 위의 벌거벗은 사람들 사이에서 단 한 사람만이 분홍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이 너무 어렸다. 아무리 많이 봐도 절대 18세를 넘을 것 같지 않았고, 춤을 추는 자세도 굉장히 어색했다. 신참인가, 어쩌다 이런 데서 일을 하게 됐나... 이렇게 측은해하고 있는데 또 누군가가 어깨를 감싸왔다. 전라의 여자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손님들에게 술을 사달라, 콜라를 사달라고 징징거렸다.

후배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콕 찔러서 무슨 일인가 쳐다보니, 오 마이 갓... 후배의 옆에서 술을 사달라고 조르는 여자는 임산부였다. 나는 넋이 나가 그저 오 마이 갓만 연신 중얼거렸다. 후배는 거의 울상이었다. 여기가 지옥인지 연옥인지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인지, 아무튼 나는 여기 육체들이 피워 올리는 어지러운 향연 속에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가난과 매춘의 전 지구적 사슬

야시장에서 클럽으로  넘어가는 길목. 각 클럽의 2층은 매우 위험한 곳이라 여행자들에게는 잘 권해지지 않는다.(출처:http://blog.naver.com/ung3256)
 야시장에서 클럽으로 넘어가는 길목. 각 클럽의 2층은 매우 위험한 곳이라 여행자들에게는 잘 권해지지 않는다.(출처:http://blog.naver.com/ung3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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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의 안내원이 우리 같이 한 눈에 봐도 초보티가 나는 사람들을 무대 앞의 밝은 곳에 자리 잡게 한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클럽 분위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 고개를 돌려 보니, 무대 뒤의 어두운 뒷좌석에서는 아가씨들과 남자들의 흥정이 한창이었다. 남자들로만 이뤄진 몇몇 관광팀들은 벌거벗은 아가씨들에게 완전히 둘러싸여 있었고, 아가씨들은 남자의 무릎에 앉고 어깨에 기대고 뒤에서 껴안으며 자기들을 사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참이었다. 남자들이 지갑을 꺼내 선불로 얼마 정도를 주는 듯하더니, 여자들과 함께 줄을 지어 빠져나갔다.

"여기 좀 봐요, 여기요! 말 좀 해줘요. 내가 남편이라고 좀 해달라고요."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와서 고개를 돌렸다. 동행한 '깨진 안경'에게 서너 명의 아가씨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한 아가씨는 술이 많이 취했는지 아저씨의 고개를 뒤에서 잡아 빼며 억지로 입을 맞추려고 했다. 그가 버둥버둥 팔을 저었다.

"헤이, 아가씨. 이 사람 내 남편인데요."

내가 쭈뼛거리며 한 마디를 내뱉었지만, 그 말에 그만둘 아가씨들이 아니었다. 한둘은 떨어져 나갔지만 나머지 두어 명이 끈질기게 붙어 어떤 말을 해도 들을 기세가 아니었다. 후배가 드디어 나를 향해 손나발을 불었다.

"언니, 그만 나가자. 난 추워서라도 더 못 있겠어."

나도 동의했다. 이렇게 에어컨을 틀어대는데 여기서 일하는 아가씨들은 어떻게 견디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깨진 안경'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클럽의 아가씨 하나가 끝끝내 후배의 옷소매를 당기며 앞을 막고 서서 한동안 뭐라뭐라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우리는 엉거주춤 문 앞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후배가 아가씨에게 손사래를 친다. 그녀와 함께 밖에 나오자마자 후덥지근하던 바깥 공기가 따뜻하게 느껴질 질 지경이었다.

"뭐라 그래, 그 아가씨가?"
"자정 넘어서는 남자들도 나온다고, 보고 가라고 엄청 붙잡네요. 새벽 2시부터는 남녀가 무대에서 실제 정사하는 쇼를 보여준대요. 언니, 아까 임산부 봤지? 그 사람 괜찮을까?"

한때 우리나라도 '기생관광' '섹스관광'으로 이름이 높았다. 일제시대 당시 일본인들을 위한 기생관광 코스가 평양의 필수 코스로 꼽혔고, 이름난 기생들의 엽서가 발간되기도 했으니, 생각보다 기생관광의 역사도 오래된 것이리라. 이제는 그 옛날의 평양과 서울에서 벌어졌던 섹스관광이 사이공으로, 프놈펜으로, 그리고 방콕으로 옮겨오게 된 것인가. 한창 개방 열풍이 부는 또 다른 사회주의 국가, 미얀마가 다음 후보지일까.

아직도 온몸에 남아 있는 매작지근한 피로 속에 방콕의 거리를 거닐며, 우리는 그래도 이 클럽에 와 보길 잘했다고 이야기했다. 무엇이든,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는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그녀들, 어떻게 살고 있을지

얼마 전부터, 한국에서 매매춘 여성들을 섹스 노동자로 인정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현재 불법인 성매매를 합법화하면 성노동자인 여성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남자들이 성을 돈 주고 사는 것이 합법이 될 수 있다면, 여성들도 남성들의 성을 돈 주고 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유부남과 유부녀는 매매를 할 수 없게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미성년자들의 성시장 진입을 철저히 막는다면 한 번 생각해 볼만도 할까? 그래도 고개가 저어진다. 돈을 주고 성을 사는 것, 그 자체가 역겹다. 더욱이 가난한 동남아의 소녀들이 방콕으로 팔려오고, 궁벽한 시골의 여성들이 얼굴도 못 본 외국남자와 결혼하고, 임산부까지 돈을 달라고 조르는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이 세상에서는 성산업이라는 것을 근원적으로 찬성하기 힘들다.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라는 말을 들을지라도, 성 노동자를 인정하는 게 오히려 여성을 더 보호한다는 주장이 내 마음에 잠시 혼란을 일으킬지라도, 나는 여전히 성매매 시장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살아갈 것이다.

최근 방콕을 다녀온 사람들의 말로는 에이즈 천국이 된 태국이 경제불황까지 겹쳐 성산업이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한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사정은 좀 나아졌는지. 시골의 소녀들이 여전히 방콕으로 팔려간다는 뉴스가 종종 나오는 것을 보면, 특별히 개선된 것 같지는 않다. 전 지구적으로 연결된 가난과 매춘의 사슬, 그 한 단면을 엿보고 온 동남아 여행 이후에도,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한 동안 그 기세를 마음껏 떨쳤다. 경제발전과 자유라는 이름과 함께 생겨난 그 가난한 나라들의 사슬은 과연 끊어질 수 있을까.

팟퐁에서 보았던 핑크 비키니의 어린 소녀는 지금 쯤 나이가 꽤 들었을 것이다. 그 험한 곳에서 잘 살아남았는지 의문이다. 문득 방콕 차오프라야 강의 후덥지근한 바람이 머리를 흔들고 지나가는 듯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나의 황당 해외여행기 공모 기사입니다.



태그:#황당한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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