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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시장, 야시장으로 유명한 팟퐁거리. 그러나 팟퐁은 동남아 최대의 환락가로도 유명하며, 파타야 쪽 보다도 훨씬 위험한 지역으로 회자된다.
 짝퉁시장, 야시장으로 유명한 팟퐁거리. 그러나 팟퐁은 동남아 최대의 환락가로도 유명하며, 파타야 쪽 보다도 훨씬 위험한 지역으로 회자된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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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팟퐁을 가잔 말이죠. 저랑 같이."

그는 한쪽 알이 깨진 안경을 밀어 올렸다. 땀이 줄줄 흐르는 통통한 얼굴이 약간 상기된 듯하다. 그는 말을 더듬거렸지만, 우리는 호기심과 결의에 찬 눈으로 연신 씀벅거리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는 꼭 가고야 말리라, 그런데 안내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의 안내역을 맡아야만 한다는, 그런 거절할 수 없는 압력을 넣기 위해서였다.

그날 새벽 막 방콕에 도착한 이 인상 좋은 30대 후반의 아저씨를 운 좋게 낚은 것은 방콕에서도 배낭여행자들이 넘쳐나는 곳, 카오산 로드의 한국 식당에서였다. 방콕으로 혼자 휴가를 간다는 들뜬 마음에 여행 전날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고,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한쪽 안경알을 깨먹었고, 아침에 간신히 일어나 깨진 안경을 쓴 채로 공항까지 달려왔다는 그. 그는 사실 '팟퐁'을 여러 번 가봤노라고 우리에게 막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양반이 여러 번 가봤다는 그 '팟퐁'은 단순한 야시장이나 벼룩시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동남아 최대, 아니 어쩌면 세계 최대의 환락가인 그 '붉은 팟퐁'을 말하는 것이다. 방콕에 오는 사람들 중에는 섹스 관광을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때 주 목적지가 되는 곳이 바로 팟퐁이다. 섹스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요기로 간다는 사람들도 있다. 어제만 해도 숙소에서 만났던 대학생 3명이 우물쭈물, 그러나 호기심과 기대감에 가득 찬 눈웃음을 치며 지금 팟퐁에 가는 길이라고 시시덕거리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 두 명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안경을 깬 아저씨에게 황당한 제안을 했고, 그는 황당하게도 그 제안을 수락하고 말았다.

베트남, 캄보디아, 그리고 여성들

작가가 되고 싶다는 헛된 꿈을 버리지 못한 탓에 나는 여행이 끝나면 이런저런 메모를 모아 정리해두곤 했다. 모든 여행이 다 나의 삶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지만, 2001년 여자 후배와 단 둘이 다녀왔던 약 3개월여의 동남아 여행만큼 내게 깊은 인상을 준 여행도 드물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많이 가는 지역인 동남아, 그것도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무엇이 그리도 대단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 여행의 기억을 그처럼 오랫동안 나의 뇌리 깊숙한 곳에 박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바로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게 만드는 것일까. 기억의 시작은 베트남·캄보디아를 거쳐 방콕으로 이어진다.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하고 북한이 기아에 몸부림 치던 1990년대 후반의 마지막 몇 년을 보낸후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며, 당시 동남아의 두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과 캄보디아는 격동적인 변화로 몸부림치고 있었다. 베트남 곳곳에 호치민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캄보디아에는 아직도 '자칭' 공산당 게릴라가 남아 있었지만, 이미 이 두 나라는 자본주의 깃발을 두 손에 꽉 움켜쥐고 있는 듯 느껴졌다.

베트남에서는 장동건이 대통령만큼이나 귀빈으로 대접받고, 최진실과 안재욱의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와 최수종·이승연의 드라마 <첫사랑>이 비디오로 제작돼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오래된 한국산 차들이 거리 곳곳을 누비고, 사람들은 삼성에서 나온 세탁기와 TV를 사고 싶어 안달이었다. 베트남 전으로 인해 '남주띤'(남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있지는 않을까 했지만 노파심에 불과했다.

캄보디아는 이제 막 내전이 정리되고 연합정부가 시작되고 있었다. 수도 프놈펜의 시민들은 아직도 총을 차고 다녔고 시골 도로를 달리다 보면 웃통을 벗어던진 게릴라들이 종종 출몰해 여행자들을 혼비백산하게 했던 시절이다. 말로만 듣던 크메르 루주의 잔당인가 싶어 손을 벌벌 떨며 몇 달러를 쥐여주면, 그들은 돈을 챙겨 넣고 얼른 가버리라는 턱짓을 하곤 했다. 경찰은 단돈 20달러에 자신의 배지와 권총을 팔 수 있다며 접근했고, 문을 연지 얼마 안 된 한국 식당 주인은 밤마다 몰래 가족들을 이끌고 와서 냉장고를 거덜 내는 종업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아니 우리 둘이 가장 유심히 봤던 이들은 바로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여성들이었다.

오래전 여행의 흑백사진. 베트남 후에에서 만난 여성 가이드로 긴 머리채가 아름답다. 베트남의 여성들은 동남아에서도 가장 예쁘고 똑똑하기로 정평이 높다.
 오래전 여행의 흑백사진. 베트남 후에에서 만난 여성 가이드로 긴 머리채가 아름답다. 베트남의 여성들은 동남아에서도 가장 예쁘고 똑똑하기로 정평이 높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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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여성 중 가장 예쁘고 똑똑하다는 베트남의 아가씨들이 베트남에 새로 진출한 외국 기업가들의 현지처 노릇을 많이 한다고 했다. 캄보디아의 어린 소녀들이 서양 여행자들이 많이 모였던 우리 숙소 앞에서 진을 치고 서툰 영어로 '한 시간에 얼마'라며 성매매 흥정을 하는 소리에 밤잠을 설친 적도 있다(그 숫자는 또 얼마나 많았는지!).

가난하지만 일할 곳이 없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여성들이 맥주회사의 판촉 사원으로 고용돼 외국인 여행자들의 옆에서 끝없이 술을 따라주고, 팁을 받고, 때로는 '2차'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도 심심찮게 봤다.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에 있는 무희들의 조각상. 고대 캄보디아 여성들은 이렇게 화려하고 관능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에 있는 무희들의 조각상. 고대 캄보디아 여성들은 이렇게 화려하고 관능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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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캄보디아에서 만났던 한국인 건설회사 임원이 있었다. 아직은 한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았던 시절, 무더운 나라에서 심심해 죽을 지경인 판에 한글 티셔츠를 입은 고국의 여성 두 명이 달랑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는 미칠 듯이 기뻐했던 사람이다.

"여기 베트남이랑 캄보디아에 사는 시골 애들이 방콕 환락가로 엄청 팔려가지. 아예 부모가 나서서 딸들을 넘기는 경우도 많다고. 방콕에 가면 '팟퐁'이라고 알아주는 홍등가가 있는데, 거기서도 제일 밑바닥 생활하는 여자들은 다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에서 가는 애들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나라가 못 살면 여자들이 제일 고생이라더니... 여자 장사가 여기서는 국가적 돈벌이 사업이라니까."

우리 숙소보다 몇 배는 더 좋은 그의 숙소 앞에도 몸 파는 소녀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맞은 편의 중국 식당에서, 그는 바깥 풍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산물 요리를 대접했다. 그리고 '팟퐁'. 갑작스러운 정전이 몇 번이나 반복되는 가운데 들려오는 '팟퐁'의 이야기는 암울했지만, 퍽이나 호기심을 자극했다.

"우리도 한 번 가볼까, 팟퐁에? 너는 그런데 가본 적 있어?"
"그런 곳을 어떻게 가요. 나이트 클럽도 제대로 못 가는 주제라고요."
"방콕 가는 사람들은 엄청 간다는데 우리도 가보자. 여자들끼리 그런데 가보는 것도 경험이지, 뭐."
"이 기회에 안 가보면 언제 가보겠어요. 나도 찬성. 그런데 우리 오빠가 얼마 전에 혼자서 동남아를 돌았는데 혹시 팟퐁같은 데서 놀다 온 거 아니야?"

당시 캄보디아 왕궁 근처 판잣집의 모습. 수도 프놈펜에도 이런 판잣집들이 즐비했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당시 캄보디아 왕궁 근처 판잣집의 모습. 수도 프놈펜에도 이런 판잣집들이 즐비했다.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 장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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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대화 속에, 역시 웃통을 벗은 크메르 루주의 마지막 용사들이 간간이 출몰해주시는 비포장 도로를 13시간이나 달려 방콕에 도착했다. 겨울이지만 무더운, 2001년 1월의 어느 날이었다.

팟퐁, 그리고 '사창가'

'사창가' '홍등가'. 이 단어들은 여자들에게 별로 유쾌하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면서 여성을 규정하는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여자들에게 사랑과 성(性)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지만, 남자들은 그 분리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창가의 존재 그 자체는 여자들에게 매우 불쾌한 것이다.

주변의 지인들 중 누군가가 간혹 술김에 불어버리는 사창가 이야기는 고해인지, 반성인지, 아니면 자랑인지 알 수 없었다. 일부의 남자들은 바깥에서 구경만 했다든가, 여자와 방에 갔지만 그냥 이야기만 나누고 왔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자신의 '고백'을 마무리하는 어설픔을 보였다. 하지만, 다른 일부는 사창가의 경험을 남자라면 한 번쯤은 경험하는 통과의례처럼 여기기도 했다.

그런 이야기 앞에서 우리 '보통' 여자들은 은연중에 우리의 정체성을 '창녀' 혹은 '술집여자'와는 다른 존재로 규정해 버린다. 우리는 '그런' 여자들하고는 다르며 달라야 한다. 순진하거나 순수하고, 또 정조관념이 있고 성적 매력이 있어도 지나치면 안 된다. 이런 의식 속에서 사창가 그녀들은 착한 여자들의 잠재적인 적(敵)이며, 보통의 여자들이 해줄 수 없는 성적 쾌락을 제공해주는 질시의 대상이기도 했다. 화양동·588·용산역 입구나 아현동 룸살롱 거리에서 언뜻 스쳐 지나갔던 사창가의 모습은 그처럼 이중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자들의 두 얼굴이 아니었을까.

"그래도 우리가 가는 데는 좀 점잖은 곳이거든요. 저하고는 부부 사이라고 하면 좀 덜 집적거릴 겁니다. 거기 일하는 여자들이 자꾸 맥주 사 달라, 콜라 사 달라 그럴 건데 그냥 무시하면 돼요."

'깨진 안경'(이름은 끝까지 몰랐다)과 우리가 '팟퐁' 입구에서 만난 것은 오후 10시쯤. 그는 우리에게 간단한 사전 정보를 줬다. 늦은 시각에도 '팟퐁' 입구는 각종 노점상과 가게들, 쇼핑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 남자들 팟퐁에 자주 가요? 그냥 눈요기하러 가는 건가요, 아니면...?"
"자주 가죠. 동남아에 아예 그렇게 놀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실상을 알면 정말 놀라실 걸요. 특히 회사에서 단체로 오거나 하면 뭐... 영락없어요. 저는 영업상 여기 일하러 왔다가 접대해준다고 해서 처음 가게 됐어요. "

"하여간 남자들이란..." 하는 지청구와 함께 순간적으로 그를 향해 눈총을 쐈으나, 나는 마지막 순간에 말을 꿀떡 삼켰다. 적어도 이 사람은 솔직하다. 게다가 오늘 우리는 그의 신세를 지는 형편이 아닌가. 그저 그의 동행이 고마울 뿐이었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우리는 앞장선 '깨진 안경'을 놓칠세라 열심히 뒤쫓아갔다. 심상찮은 네온사인이 곧 눈에 들어왔다.

(* 2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나의 황당 해외여행기 공모 기사입니다.



태그:#황당한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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