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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사는 동네에 대해 우월감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유엔빌리지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요즘 가을 낙엽이 영화처럼 떨어지는 길을 드라이브할 때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새로 지은 반포동 자이 아파트에 산다면 천문학적 아파트 가격에 드나들며 바라볼 때마다 뿌듯할지 모른다. 그런 건 사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고 어차피 내가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별로 다가오진 않는다.

요즘 우리 동네에도 사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 생겼다. 유명한 BB 수제 햄버거집이 바로 옆집이라는 점. 이 집은 요즘 20대는 모르면 간첩이라는 곳으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강남에만 두 곳의 지점이 생겼다. 사람들은 이 집 햄버거를 뉴욕에서 먹은 맛 그대로라고 열광한다. 뉴욕에서 햄버거를 먹지 않아서 그 맛이 그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즉석에서 구운 패티를 얹은 버거에 바삭한 감자튀김을 차가운 맥주와 먹는 맛은 값에 비해 매우 훌륭하다. 자리가 좋지도 않고 주차는 아예 되지도 않는다.

휴일 열한시쯤 오늘 햄버거나 먹을까 한다면 우린 그저 슬리퍼 신고 옆집에 가서 예약을 마친 후 열두시 반쯤 찾으러 가면 된다. 그 시간에 조그만 가게 앞에(이 가게는 테이블이 여섯 개 밖에 없다) 늘어진 긴 줄, 성장을 하고 하이힐 신은 언니들이 앉을 데도 없이 찬바람 맞으며 서있는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주문한 햄버거 봉지를 들고 나올 때 쏟아지는 사람들의 부러움에 찬 시선이란! 그야말로 안 먹어도 배부르다의 경지다.

언제부턴가 유명 음식점의 기다리는 줄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주인들도 예전처럼 빨리 손님을 받고 빨리 내보내려고 하기보다 우리 이런 집이거든 하는 광고효과 보는 쪽을 택하는 것 같다. 기다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집들도 있다. 손님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선택해주어야 한다. 두 번이나 갔다가 퇴짜를 맞고 오늘 드디어 삼세번 도전에 성공한 S 소바집도 간택 받기가 쉽지 않다.

방배동 일대에 잘 알려진 이 소바집은 매일 면을 뽑는다. 집 앞에 면을 뽑는 기계가 돌아가는 것이 보인다(이 장치를 보이게 하느라 테이블을 두 개나 포기했다). 매일 뽑는 면의 양이 정해져 있어서 기다린다고 항상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들과 둘이 느긋한 점심을 먹으려고 집에서 출발한 시간이 12시 30분,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피해보려는 작전이었는데 BB 햄버거집의 기다란 줄을 뒤로 하고 걸어서 도착한 시간은 12시 55분. 웬걸 바깥에 서성대는 사람들의 숫자가 심상치 않다. 들어가서 번호표를 받으니 앞에 4팀이 대기 중. 테이블이 8개 밖에 없으니 사람이 많으면 합석이라도 좀 해주면 좋으련만 다들 택도 없는 눈치다.

할 수없이 날마다 우리 집 앞에서 보던 자세로 대기를 시작한다. 이 집 단골 손님들은 대개 70 전후의 노부부나 가족들이어서 한번 앉으면 엉덩이가 무겁다. 바깥에서 유리창 너머 아무리 눈치를 줘도 그 자리를 어떻게 잡았는데 본전 뽑아야지 다 먹은 사람들도 일어날 기미가 없다. 차에서 대기 중인 우리 앞 네 팀들도 동요의 기미가 없다.

15분쯤 있으니 종업원이 나와서 오늘의 메밀이 간당간당하니 못 먹을 수도 있다는 경고. 메밀이 아닌 다른 것을 먹어도 된다면 기다리라는 거다. 한시 반에 친구와 약속을 한 아들은 약속시간 연기 문자를 보낸다.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받고 시계를 보니 1시 45분. 50분을 기다렸다. 종업원이 웃으며 다가와서 하는 말이 다른 사람들이 우동을 시켜서 메밀을 먹을 수 있단다. 뭔가 복권이라도 뽑은 것처럼 크게 기뻐하며 메밀을 시킨다.

이쯤 되면 사람이 음식을 맛으로 먹게 되지 않는다. 기다림에 대한 보상 심리, 뭔가 행운을 잡은 기분, 작은 쟁반 위에 나온 소바 한 틀에 감개무량해 진다. 솔직히 이 국수는 면발이 다르긴 하지만 국물의 특별함은 없다. 우동 먹는 아들에게 한 젓가락 줬더니 뭐 이런 걸 먹냐는 표정이다. 가벼운 식사를 마치는데 걸린 시간은 15분이 넘지 않았다. 우리가 들어온 이후 종업원은 손님을 받지 않는다. 메밀이 떨어졌으니 점심은 끝이 났다.

한 끼의 식사를 할 때 기다림이 주는 보상은 몇 프로나 될까? 이 우동집이나 우리집 앞 햄버거 집에서 기다림의 보상이 반은 되는 것 같다. 특별히 비싸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식당들, 방글방글 웃으며 말하지만 그 숨겨진 뜻은 이런 거다. " 네가 여기 왔는지는 모르지만 선택은 내가 한다."


태그:#기다림, #맛집, #햄버거, #메밀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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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디자인회사를 운영하며 인테리어 디자인과 디자인 컨설팅 분야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통건축의 현대화와 중국전통건축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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