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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민주노총은 '나의 투표권 수난기' 기획을 진행합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투표날에도 특근해 일을 합니다. 유통업·건설현장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식당 아주머니·아르바이트 학생들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일단 투표 마감을 현행 오후 6시에서 9시로 세 시간 연장하면 어떨까요? 여러 시민의 투표권 수난기가 한국 사회의 참정권 문제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편집자말]
민주노총, 참여연대, 경실련, iCOOP소비자활동연합회 등 전국 200여 시민단체 연대 기구인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투표권 보장 10만 국민청원 기자회견'을 개최한 가운데 한 참가자가 '국회는 투표시간 연장법안 즉각 처리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민주노총, 참여연대, 경실련, iCOOP소비자활동연합회 등 전국 200여 시민단체 연대 기구인 투표권 보장 공동행동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투표권 보장 10만 국민청원 기자회견'을 개최한 가운데 한 참가자가 '국회는 투표시간 연장법안 즉각 처리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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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11총선에서 20대의 참여는 어느 때보다 눈에 띄었다. 청년비례대표, 청년정당이 등장했고, 20대 후보도 많았다. 일명 '투표 인증샷 놀이' 중심에도 20대가 있었다. 덕분인지 20대는 18대 총선 대비 가장 높은 투표율 상승을 기록했다.

실제로 20대 안에서 체감되는 선거열기도 뜨거웠다. 카카오톡과 SNS에서는 종일 투표 이야기가 이어졌다. "너 오늘 투표 했어?"가 인사였고, "오늘 투표소에 갔는데..."로 시작하는 투표 에피소드도 많았다. 축제인양 다들 투표를 즐기고 있었다. 나만 빼고.

지난 총선, 나는 처음으로 투표권을 포기했다. 총선에 비해 관심이 적었던 2010년 전국지방선거 때는 부재자신고까지하며 투표했던 나였다. 투표 포기, 누구 말대로 내가 성의가 없어서였을까?

모두의 '투표 축제', 나는 빠졌다

나는 4월 11일 한참 전부터 투표를 준비했다. 거창한 건 아니다. 부재자 신고 날짜와 투표일을 확인했을 뿐이다. 살던 곳이 아닌 다른 지역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대개 주민등록지와 실거주지가 다르다. 이들이 투표를 하려면 고향에 가거나 부재자신고를 해야 한다.

또 이들 중에는 거처가 일정하지 않거나 출신 지역의 장학금 혜택 때문에 주민등록 이전을 하지 않는 학생도 많다. 나도 지역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주민등록을 이전하지 않았다. 결국 고향에 가지 않고 투표를 하려면 부재자 신고를 해야 한다.

부재자 신고는 어렵지 않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양식을 다운받아 작성한 뒤 선거구에 기간 내에 접수하면 된다. 대학 재학생이라면 더 쉽다. 부재자 신고기간 때 학생회관 등에서 신고를 받는 학교가 많기 때문이다. 부재자 신고를 했다면 선거공보물과 투표용지만 기다리면 된다.

부재자 신고자에게는 투표 전에 투표용지와 공보물이 배송된다. 이 투표용지가 있어야만 투표를 할 수 있기에 배송이 잘못되지 않도록 꼼꼼이 확인도 한다. 그런데 대개 홀로 사는 자취생들이 택배나 우편물을 직접 받는 건 쉽지 않다.

수취인이 현장에 없어도 일반 우편물을 대개 보일러실에 두거나 집 앞 슈퍼에 맡겨도 된다. 하지만 투표용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수취인의 신분을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내 투표권 산전수전이 시작됐다.

"이건 꼭 본인이 직접수령 하셔야 돼요."

투표용지가 온 바로 그날, 빠질 수 없는 특강이 있었다. 다음날은 오전부터 수업이 있었다. 한 시간 반씩 수업, 공강, 수업, 공강이 반복되는 시간표였다. 자취방에서 우편물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오늘은 안 되고요. 내일 낮 12시나 3시 쯤이 좋아요. 오시기 10분 전에 전화주시면 안 될까요?"

고민끝에 선택한 방법은, 우편물이 오기 직전에 방에 갔다가 다시 학교로 오기였다. 배송하시는 분이 흔쾌히 허락했지만 특정 우편물을 특정 시간에 배송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나는 그 다음날 저녁, 배송하시는 분의 '연장근무'로 투표용지를 받을 수 있었다.

부재자 투표는 왜 오후 4시까지일까?

다음 난관은 부재자 투표소와 시간이었다. 투표소가 당연히 학교에 설치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래도 주민센터가 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한 시간 안에 투표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는 거리였다.

"네? 여기 투표소가 없다구요?"

투표권보장을 위한 대구공동행동은 6일 오전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후 9시까지 투표시간을 연장하라고 요구했다.
 투표권보장을 위한 대구공동행동은 6일 오전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후 9시까지 투표시간을 연장하라고 요구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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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멘붕'이 일어난 것은 4월 6일 오후 3시 30분. 부재자 투표시간 마감을 30분 남겨둔 때였다. 주민센터를 찾았지만 투표소가 없었다. 부재자 투표자가 많지 않아 투표소는 구청에 설치됐다고 했다. 구청까지는 마을버스로 30분 거리. 더군다나 부재자 투표 시간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였다. 시간이 애매했다.

그래도 일부러 투표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시간을 뺀 게 아까웠다. 곧장 마을버스를 타러 갔다. 구청까지가 천리길로 느껴졌다. 그날따라 버스는 느리게 느껴졌고, 나는 초조했다.

'결국 마감 1분 전에 부랴부랴 도착해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마을버스에서 내려 구청까지 가는데 길을 헤맸고, 심지어 구청 안에서 투표소 가는 길까지 헤맸다. 결국 투표를 하지 못했다.

사실 10분만 더 빨랐으면 투표할 수 있었다. 부재자 투표소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먼저 알아봤더라면, 선관위에서 더 눈에 띄게 홍보했다면, 나는 그날 투표를 했을 거다.

그래. 내 성의가 부족했다 치자. 나도 처음엔 미리 꼼꼼히 알아보지 않은 내 성의를 탓했다. 다른 방법도 있었다. 투표 당일, 투표용지를 들고 내 고향이자 주소지인 충북 제천으로 가면 된다. 하지만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4월 11일, 나는 오전 10시 반, 오후 4시 반에 수업이 있었다. 그 중간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근로학생을 하고 있었다. 대개 휴강 공지는 직전 수업에 하는 법이고, 강의를 듣는 학생들 여건에 따라 휴강이 필요치 않은 경우도 있다. 투표일 오전 수업이 그랬다.

"휴강하진 않겠지만 투표하러 가는 사람은 출석을 인정해 주겠어요."

오전 수업 교수님은 휴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투표는 꼭 해야합니다. 하지만 수업 진도가 느립니다. 모두들 오전에 투표를 하고 오면 좋겠네요. 출석 체크는 하지 않겠습니다."

오후 수업 교수님도 휴강하지 않기로 했다.

투표하러 서울에서 제천까지 가고 싶었지만...

휴강은 아니지만 수업에 오지 않더라도 출석을 인정하겠다는 것. 어쩌면 최선의 선택이다. 적어도 투표하러 갈 수 있고, 그 때문에 점수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으니까. 하지만 팍팍한 상대평가에서 0.01점 차이로 장학금이 갈리고, 장학금을 못 받으면 공부보다 일을 더 해야 하는 학생 입장에선 상황이 다르다.

내 선거구 투표소, 충북 제천까지는 서울에서 넉넉잡아 편도 4시간 정도 걸린다. 제천까지 가는데 약 3시간, 투표소까지 가는데 넉넉잡아 1시간. 수업 하나와 아르바이트를 빼면 다녀오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오전 수업에 빠지려니 그 다음 수업에서 발제를 해야 하고, 오후 수업에 빠지려니 교재없이 강의로만 진행되는 수업이어서 부담스러웠다.

'빠진 수업에서 시험문제가 나오면 어쩌지?'

그렇게 나는 19대 총선에서 투표를 포기했다. 투표시간이 새벽 5시 시작이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학생이다. 나는 최저임금 받으며 하루 3~4시간 일해야 학생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 작은 장학금에도 울고 웃을 수밖에 없는 학생이다.

세상에 묻고 싶다. 투표권 행사 여부, 이게 오로지 개인 선택에만 달린 문제일까? 최근 국회의원실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받았던 한 시민의 전화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우리 애가 공항에서 일하는데,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에 와! 투표날이라고 쉬는 줄 알아? 더 오래 일하는 사람들, 더 투표가 필요한 사람들이야. 그 3시간 늘리는 게 뭐가 힘들어? 더 힘써서 이번 대선부터 투표시간 연장하자구!"

덧붙이는 글 | 박선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3기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 프리덤'에서 활동합니다.



태그:#부재자 투표, #투표권, #투표시간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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