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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정의가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기에..."

지난 7일 중앙대 자퇴를 선언한 김창인씨의 대자보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기업을 등에 업은 대학은 괴물이었다"라고 이어진다. 4년 전 비슷한 대자보가 고려대에 붙었다. 김예슬씨의 '대학거부선언'이다. 예슬씨는 큰 물음도, 큰 배움도 없어진 대학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4년 만에 기업을 등에 업은 괴물로 진화한 셈이다.

중앙대는 2008년 5월 두산그룹을 등에 업었고, 2년 뒤 대대적인 학과 통폐합안을 발표했다. 김창인씨는 이를 반대하며 2010년 4월 8일 한강대교에 올랐다. "기업식 구조조정 반대,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든 채였다. 이후 그는 대학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김씨는 자퇴선언문에서 "(대학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대가는 참혹했다"며 "징계위원회에 다섯 차례 회부되었고, 징계조치를 세 차례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징계이력 때문에) 받았던 장학금은 환수요청을 받았으며, 학생회장으로 출마할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며 징계가 낙인찍기와 같았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저항으로 자퇴를 선언한 '두산대학 1세대' 김창인씨를 만났다. 지난 9일 사당역 한 카페에서였다.

김창인씨는 자퇴선언에 대해 "다함께 다니고 싶은 대학을 만들자는 제안이다"라고 말했다.
 김창인씨는 자퇴선언에 대해 "다함께 다니고 싶은 대학을 만들자는 제안이다"라고 말했다.
ⓒ 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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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받았어? 장학금도 학생회장도 안 돼

"이야기할 창구가 막혔다고 느꼈어요. 주위사람들에게 '쟤처럼 하면 너도 저렇게 될 거야'라는 본보기가 되는 것도 같고."

불과 한 달 전, 김씨는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학생회 활동을 통해 대학사회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단독후보였고, 단선의 특성상 투표율만 높다면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학생회칙 상으로는 후보등록과 선거 진행 과정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학교는 이를 막아섰다. 김씨의 학점과 징계이력이 학칙상 후보자 기준에 미달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중앙대 학생자치기구 선거지도 내규 4조에서는 "전체 이수 학업 성적이 평균평점 2.0 이상이고 학사 및 기타 징계 사실이 없는 자"를 학생회 대표로 손색이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반대로 평균평점이 모자라거나 징계를 받은 자는 학칙상 피선거권이 제한된다고 해석한 것이다.

앞서 김씨는 2012년 장학금 지급 제한 대상에 '학칙 또는 관련 규정에 의해 징계 받은 자'가 포함되면서 장학금 수혜 자격도 박탈당한 바 있다. 2012년 1학기에 받은 복지장학금은 환수통보도 받았다(관련기사 : 성적 우수자 피말리는 '중앙대 낙인 효과').

중앙대 인문대는 기준미달인 후보가 등록되었다며 선거지도위원회를 꾸렸고, 인문대 선거관리위원회에 학칙을 어긴 선거에 예산과 선거인 명부를 지원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선거를 지속한다면 선관위 학생들도 징계당할 수 있다며 경고하고, 이 사실을 공고문으로 붙이기까지 했다. 선거는 무산됐다.

두 번의 선거 무산, 그리고 일방적인 학칙개정

두 번째 선거 무산이었다. 2014년 인문대 학생회장 선거는 지난해 11월, 올해 3월 두 번 시도됐다. 모두 김창인씨만 후보로 등록했고, 선거지도위가 피선거권 제한을 주장했다. 인문대 선관위는 지난해 11월 선거를 연기하기로 결정한 후 내규 수정을 요구했다. 선거지도위를 상대로 선거 '방해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소송은 기각됐고, 내규도 그대로인 상태에서 3월 선거가 진행됐다. 결국 같은 이유로 두 번의 선거가 무산된 것이다.

"조건에 미달됐던 학생회장들을 여럿 알아요. 거의 사문화된 조항이었거든요. 갑자기 인문대에서만 적용하겠다는 것이 이상했죠. 학칙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학생회장의 자격을 학교가 재단한다는 것이죠. 학생 대표자인데, 기준은 학생들이 직접 정해야 하잖아요."

지난 4월 24일 중앙대는 학교법인 이사회를 열고 학칙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학생회 관련 학칙 제62조도 개정됐다. 기존 "학생회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회칙으로 따로 정한다"라는 문구를 "학생회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학칙과 관련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회칙으로 따로 정한다"라고 변경했다. 학생회칙이 학칙의 하위 규율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100만원 대자보'로 논란이 된 중앙대학교(이사장 박용성) 관계자가 교내에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를 7일 오후 5시 20분께 "허가받지 않은 게시물"이라며 철거한 가운데, 이를 지켜보던 학생들이 대자보를 줍고 있다.
▲ 대자보 떼는 학교, 줍는 학생들 '100만원 대자보'로 논란이 된 중앙대학교(이사장 박용성) 관계자가 교내에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를 7일 오후 5시 20분께 "허가받지 않은 게시물"이라며 철거한 가운데, 이를 지켜보던 학생들이 대자보를 줍고 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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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도 토론회도 불허하는, 정의 없는 대학

징계를 받았다고 하면 '불량 학생'이라 낙인찍기 쉽다. 게다가 세 번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의 경우는 특이하다. 대학의 결정에 반대하다 징계를 받았고, 토론회를 열었다가 징계를 받았다.

"2010년 한강대교에 오를 당시 철학과는 폐과 대상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해당학과 친구들의 얼굴과 표정이. 학과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보니까 와 닿더라고요. 남 일이 아니라 나의 문제,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 학생들의 절실함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너무 컸어요.

선배들에게 '의혈이 한강을 건너면 세상이 바뀐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이왕에 하는 것, 의미를 살리고 싶어 한강대교를 선택했어요. 중앙대 교훈이 '의에 죽고 참에 산다'거든요. 사람마다 각자 생각하는 정의가 있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을 텐데. 다들 행동하지는 않잖아요. 침묵하지 않고, 자기한테 솔직해지는 것이 '의에 죽고 참에 사는' 것 이죠"

대학의 기업화에 반대한 죄 값은 컸다. 무기정학을 당했다. 이후 소송과 징계위원회 재소집을 거쳐 유기정학 1년 6개월로 징계내용이 변경됐다. 그래도 구조조정 반대를 계속 외쳤다. 2011년에는 중앙대 정문 잔디밭에서 '원탁 토론회'를 기획했다. 구조조정에 찬성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다 모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생각했다.

"대학이 평생동안 구조조정을 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필요할 때가 있겠죠. 문제는 목적과 방식이죠. 절차에 대해서도 지켜져야 할 게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도 존중해주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함께)이야기해보고 싶었죠."

원탁 토론회를 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학교는 시험기간, 잔디밭 훼손이 우려된다며 행사 불허를 공지했다.

"강의실이나 다른 공간을 빌리려고도 해봤고, 기간을 변경하겠다고 말해봤어요. 그런데 '정치적인 행사'라 우려된다고 답하더라고요. 학교의 허가를 받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원안대로 진행했어요. 결국 징계로 근신처분을 받았고요."

중앙대는 '허가 받지 않는 행사' 외에 '허가 받지 않은 게시물'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지난해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 당시와 올해 1월 청소노동자 파업 당시 대자보 수 십 장이 전부 철거됐다. 미관을 해치기 때문에 주무부서에 허가를 받아 게시물을 부착해야 된다는 것이다. 김창인씨의 자퇴선언문도 하루가 안 돼 벽에서 떨어져 나갔다.

5월 12일 중앙대 법학관 지하 1층에 다시 붙은 김창인씨의 자퇴선언문과 지지자보를 중앙대 구성원들이 보고 있다.
 5월 12일 중앙대 법학관 지하 1층에 다시 붙은 김창인씨의 자퇴선언문과 지지자보를 중앙대 구성원들이 보고 있다.
ⓒ 박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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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는 대학을 바꾸기 위한 선택

"지금 대학에서는 자유롭게 말할 수가 없어요. 반대하면 제재하고, 말할 공간 자체를 허락해주지 않죠. 대학 안에서 바꿔나갈수 있도록 돕기 위해 나온 거예요. 변화시키기를 포기했다면 대자보를 쓰지 않고 조용히 나왔겠죠."

그는 "대학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대학 안에서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계속 반복될 것 같았어요. 비판하고, 징계 받고. 비판하고, 징계 받고. 자퇴 선언은 다같이 대학을 다니지 말자는 뜻이 아니에요. 다함께 '다니고 싶은 대학'을 만들자는 제안이죠. 이 부분을 모두 조금씩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그의 뜻대로 지난 12일 중앙대 법학관 지하 1층에는 김창인씨의 자퇴선언문과 대자보 16장이 다시 붙었다. 그를 지지하는 중앙대 학생들과 타대 학생들의 연대자보였다. '의혈, 안녕들하십니까'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학생들은 중앙대 해방광장에 모여 대자보를 낭독하고 학생처에 게시물을 신고하러 갔으나 불허 당했다.

이들 중 한 학생은 대자보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김창인 학우가 자퇴한 지 며칠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하루만에 그의 대자보를 떼어냈습니다. 말할 권리조차 잃어버린 남은 우리는 아직 빼앗길게 많습니다. 지금은 말할 권리이지만 점차 스스로를 다스릴 권리, 그리고 한 곳에 모여 공동체를 꾸릴 권리까지 모두 빼앗길 겁니다. 한 걸음의 용기를 내주세요."


태그:#김창인, #대학자퇴선언, #중앙대, #대학 기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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