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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양 날의 검입니다. 국가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사회를 통제하고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습니다. 이 서슬이 퍼런 검을 누가 이용하느냐에 따라 민중들의 삶은 큰 굴곡과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기득권층이 자신의 이득만을 위해 '국가'라는 정치권력을 사용할 때는 항상 '거짓말'이 존재했습니다. 그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기만해 자신들의 잇속을 챙겼습니다. '국가의 거짓말'이라는 연재기사를 통해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여다 보고 혼란의 시대에 국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자 말>

에셜론이 위성으로부터 자료를 다운링크할 때 사용된다고 의심을 받는 영국 멘위드 힐 기지의 레이돔
 에셜론이 위성으로부터 자료를 다운링크할 때 사용된다고 의심을 받는 영국 멘위드 힐 기지의 레이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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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미국이 전 세계를 도청한다니, 그건 음모입니다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 미국이 '에셜론'이라는 비밀 도청 시스템을 이용해서 일반인들의 통화까지 일괄적으로 감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 아무리 미국이 세계 최고의 첨단 기술 국가라고 하지만, 미국이 전 세계를 도청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만에 하나 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도대체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테러리스트와의 전쟁만으로도 벅찹니다. 제발 그렇게 근거 없는 음모론으로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진실] 미국은 일반인의 전화까지 모두 도청하고 있다

"미국이 전 세계 민간 위성 통신을 모두 엿듣고 있다. 미국은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와 함께 '에셜론(ECHELON)'이라는 도청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말인가? 오히려 이 말을 한 사람의 정신 상태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 않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말을 들으면 아래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아니 미국 정부가 세계의 모든 통신을 엿듣고 감시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미국이 무슨 신도 아니고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음모론이구먼.'

그런데 미국이 전 세계의 통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위의 주장은 유럽의회가 공식적으로 채택해서 공개한 '에셜론 도청 시스템의 존재에 대한 보고서'의 결론이다. 졸지에 그 고명한 유럽의회 의원나리들이 죄다 음모론자가 되어버린 것일까?

유럽의회는 2001년 9월 5일 산하 에셜론위원회가 지난 1년여에 걸쳐 조사한 끝에 제출한 보고서와 에셜론 방어책으로 권고한 44개 사항을 367 대 159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에셜론위원장인 게르하르트 슈미트 의회 부의장은 이메일, 전화, 팩스 등 위성중계 통신 중 에셜론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이 에셜론을 부인하고 있으나 "법정에서 당당히 제시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의회는 140쪽에 달하는 에셜론위원회의 보고를 그대로 채택한 뒤 암호체계강화 등 위원회가 권고한 에셜론 방어책 44개를 승인했다. 에셜론위원회는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이 합동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에셜론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민감한 정보에 대한 암호 사용을 일상화하고 기존 암호를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유럽의회는 또 회원국인 영국에 대해 유럽연합 관련 법규에 어긋난다며 에셜론에서 탈퇴할 것과 지상 에셜론기지 폐쇄를 요구했다.

도대체 에셜론이 무엇이기에 전 세계를 도청하고 있단 말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유럽의회에 음모론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것인가? 그 진상을 살펴보자.

에셜론을 주도하는 미국국가안보국(NSA)

원래 군대의 사다리꼴 편제를 뜻했던 에셜론은 냉전시대 초기에 공산권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 미국 주도로 창설된 국제 정보 감시망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 미국과 영국은 정보 분야에서 상호협력을 약속하는 협정을 맺는다. 그리고 양국은 독일군의 일급암호체계인 이니그마를 해독하는 데에 성공해 2차 세계대전에 큰 도움을 얻는다. 이들은 1946년에 UKUSA라는 협정으로 기존의 협정을 갱신했는데 여기에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가 참여하게 된다. 이것이 에셜론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에셜론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 NSA(국가안보국)이다. UKUSA는 처음에는 단순하고 간단한 것이었다. 그저 서로 수집한 정보를 주고받고 이를 중앙정보처리본부로 보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미국 NSA가 출범한 뒤 양상은 달라졌다. NSA는 끊임없이 새로운 첩보 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회원국에 공급했다. 회원국들은 대신 NSA 측에 감청 기지를 제공했다.

NSA는 미 국방부 산하의 비밀정보기관으로서 그중 하나인 DIA(국방정보국)와 함께 미국의 전자정부 첩보활동 기능을 하고 있다. 워싱턴과 볼티모어 중간의 메릴랜드주 포트미드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예산이나 인원은 국가기밀로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대략 3만8000명의 인원에 1년 예산이 수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6000평의 지하에 설치된 수퍼컴퓨터들을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FBI나 CIA와는 별개의 조직이며 미 육군 안전국 및 해군과 공군의 통신정보기구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감독권을 갖는다.

에셜론은 고주파, 위성, 광섬유 등 모든 방식의 통신에 대해 도청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의회의 2001년 보고서에는 '에셜론이 지구 주요 지역에 도청 기지를 설치하여 활용한다면, 이론적으로 그들은 위성을 통하는 모든 통신을 도청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해저케이블은 보안을 필요로 하는 국제통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1971년 10월 미국 잠수함 핼리벗(Halibut)호가 동부 소련의 오호츠크해에 들어가 캄차카반도로 가는 군용 케이블 통신에 직접 도청 장치를 설치할 정도이니 그 집요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래에는 2001년 유럽의회 보고서에 등장하는 지상 기지들의 목록이다.

위성 도청의 가능성이 있는 기지
홍콩(현재 폐쇄)
오스트레일리아 방어위성 통신기지 - 오스트레일리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멘위드힐(Menwith Hill)기지 - 영국 요크셔
미사와 공군기지 - 일본
GCHQ모웬스토(Morwenstow)기지 - 영국 콘월주
파인갭(Pine Gap)기지 - 오스트레일리아 노던준주
슈거그루브(Sugar Grove)기지 -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야키마(Yakima)훈련센터 - 미국 워싱턴주
GCSB와이호파이 - 뉴질랜드

그 외 잠재적으로 관련된 기지들
아이오스니콜라오스기지 - 키프로스
배드에이블링(Bad Aibling)기지 - 독일 배드에이블링(그리스하임(Griesheim)으로 2004년 이전)
버클리(Buckley)공군기지 -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
포트고든(Fort Gordon) - 미국 조지아주
갠더(Gander)기지 - 캐나다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
괌기지 - 미국 태평양
쿠니아(Kunia)기지 - 미국 하와이주
라이트림(Leitrim)기지 - 캐나다 오타와
래클랜드(Lackland)공군기지 내 메디나 아넥스(Medina Annex) - 미국 텍사스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에 있는 유럽의회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에 있는 유럽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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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전화 '수다'도 에셜론의 도청 대상

이처럼 위성이나 자체 설치한 도청시스템으로부터 들어오는 전화, 팩스, 이메일, 휴대폰 등의 모든 통신내용은 에셜론기지의 슈퍼컴퓨터를 통해 분석된다. 물론 전 세계 통신량은 엄청나기 때문에 에셜론의 슈퍼컴퓨터는 주로 주요단어(keyword) 검색 방법을 사용해서 데이터를 분석한다. 검색 단어들은 '테러', '폭탄', '핵', '대통령', '백악관' 등의 중요한 단어들이다. 문자든 음성이든 이런 단어들이 있으면 슈퍼컴퓨터는 해당 통신을 선별해서 체계적으로 분류해놓는다.

캐나다 정보기관 CSE에서 20년간 스파이로 일한 마이크 프로스트(Mike Frost)는 2000년 2월에 TV 프로그램 <60분>에 출연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CSE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한 여성이 저녁에 아이의 학예회에 갔어요. 아이가 학예회에서 너무 엉망으로 한 거예요. 다음 날 아침에 그녀는 친구와 전화로 통화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어휴, 대니(Danny)가 어제 밤에 완전 망쳤어(bombed).' ('폭발했다'는 뜻의 'bombed' 때문에) 컴퓨터에 그 대화가 떴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본 분석요원은 그 대화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확실히 몰랐죠. 만에 하나 있을 가능성 때문에 분석요원은 그녀와 그녀의 전화번호를 테러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명단에 올렸습니다."

에셜론, 경제 문제에도 개입

도청과 감청
* 도청 : 사익(단체, 개인)을 위해서 타인(개인, 기업, 국가)의 승낙과 동의 없이 사생활 침해 및 각종 신상 파악과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

* 감청 : 국가(법원)의 허가를 필요로 하여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각종 정보를 파악하는 것. 감청은 국가(법원)의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개인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

더욱 큰 문제는 에셜론이 경제 문제에 개입하면서 노골적으로 미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4년 브라질은 아마존 전역을 사정권 안에 두는 레이더 시스템으로 환경파괴를 감시하자는 SIVAM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14억 달러가 들어가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미국의 레이시온(Raytheon)사와 맞붙은 프랑스의 톰슨CSF사는 수주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1995년 2월 이 프랑스 기업이 브라질 고위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려 한 것을 CIA가 적발했다는 기사가 미국 언론에 났다. 에셜론을 이용해 양측의 대화를 도청했을 가능성이 컸다. 뇌물 공여를 시도했다는 이유로 톰슨의 입찰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미국의 레이시온사는 계약을 따냈다. 재미있게도 몇 달 후 브라질 언론에는 레이시온사도 브라질 관리들에게 뇌물을 줬다는 기사가 났다.

레이시온사는 나중에, 프로젝트를 따는 데 미국 상무부가 미국 회사들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고백했다. 레이시온사는 슈거그로브(Sugar Grove)에 있는 NSA 기지의 에셜론 위성감청 시스템의 유지와 기술지원을 맡고 있다.

또한 프랑스 에어버스사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항공사 및 사우디 정부 간 팩스와 전화를 모두 도청하여 에어버스사 직원이 사우디 관리에게 뇌물을 제공한 사실을 포착하고, 이를 보잉사 및 맥도널 더글러스사를 지원하고 있던 미 행정부 관리에게 통보했다. 결국 1998년 미국 회사가 60억 달러의 항공기 판매계약을 체결했다.

우리나라도 도청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다. 1998년 2월 28일자 <파이낸셜 포스트>에서 캐나다 정보기관 CSE의 암호해독 요원인 제인 쇼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91년 한국정부와 캐나다가 캐나다형 캔두 원전 3기 건설문제로 협상할 때 한국 외무부장관의 전화를 도청한 적이 있다."

하지만 미국은 에셜론을 통한 민간 경제정보 첩보활동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2000년 2월 23일 <BBC> 보도에 따르면, 제임스 루빈 미국 전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 정보기관들은 민간기업들을 돕기 위해 산업무역정보를 빼내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그런 일들은 엄격한 규정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NSA 활동을 감독하는 미 하원 정보위원회의 포터 고스 위원장은 "NSA는 일반인의 통화를 포함한 어떤 전화통화도 도청할 수 있으며, 내 전화까지도 들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심지어 이들은 자국의 도청을 상대국에 요청하는 방식으로 자국법을 교묘히 피해가면서까지 정보를 수집해왔다. 다시 말해 영국 스파이가 미국 시민을, 미국 스파이가 영국 시민을 대상으로 도청하고 이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패킷감청이 도마 위에

헌법재판소가 2010년 12월 28일, 인터넷에 허위 내용의 글을 게재하면 처벌하도록 한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날 오후 판정 후 박대성씨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2010년 12월 28일, 인터넷에 허위 내용의 글을 게재하면 처벌하도록 한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이 헌법상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날 오후 판정 후 박대성씨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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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국내에서는 최근 '패킷감청'이라는 것이 이슈가 되고 있다. 패킷감청은 인터넷 회선을 통해 전기 신호 형태로 흐르는 데이터 패킷을 제3자가 중간에 가로채서 내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소위 '미네르바 사건'을 계기로 많은 네티즌들이 국내 이메일 서비스는 언제든지 국가기관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해외에 서버가 있는 지메일(Gmail)로 '사이버 망명'을 갔다. 하지만 국가기관에서는 패킷감청으로 얼마든지 지메일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필자가 IT관련 벤처기업을 다닐 때 직접 경험했던 일이다.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필자는 업무 시간 중에 잠시 필자가 소속된 정당에 개인적인 내용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얼마 후 회사의 팀장이 필자를 불러서 무슨 시민단체 같은 데서 활동하느냐고 넌지시 물어봤다. 회사 측에서는 필자를 포함해서 회사의 직원들이 보내는 이메일과 인터넷 접속 기록을 끊임없이 체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사회 경험이 일천했던 필자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대기업에서는 일상적으로 그런 감시를 한다고 듣긴 했지만 작은 벤처기업에서조차 그러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현대 사회는 철저한 감시사회다. 곳곳에 달린 CCTV와 당신이 사용하는 교통카드, 그리고 당신의 휴대전화나 회사에서 목에 걸고 다니는 RF ID 카드를 통해 원한다면 당신의 동선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당신이 사용하는 신용카드 정보로 당신의 소비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정부의 비밀정보기관들은 패킷감청을 통해 마음만 먹으면 개인의 컴퓨터 사용 화면을 옆에서 보듯 들여다볼 수 있다. 휴대폰 감청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도청을 하는 미국의 도청기관 에셜론의 존재가 음모론으로만 치부되다가 결국 실재하는 것으로 밝혀진 것을 보라. 숨이 막힌다고? 이것이 현실이다.


태그:#에셜론, #ECHELON, #국가안보국, #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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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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