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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 <용의자 X의 헌신> 겉표지
ⓒ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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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자신의 두 단편집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에서 형사 구사나기와 물리학자 유가와 콤비를 선보였다. 위의 두 작품집에서 구사나기와 유가와는 도저히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건을 다룬다.

이 사건들에서는 멀쩡하던 사람의 머리에서 불꽃이 솟구치기도 하고, 미래를 보았다고 말하는 소녀가 등장하기도 한다. 엉뚱한 장소에서 애인의 혼령을 보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저절로 벽이 흔들리고 가구가 쓰러지는 귀신들린 집도 나온다.

이렇게 초자연적인 현상이 사건에 뒤섞여 나올 때마다 구사나기는 물리학과 교수인 대학동창 유가와를 찾아간다. 유가와는 매번 이런 사건을 들고 오는 구사나기를 가리켜 '신비주의 사건담당 형사'라고 농담을 한다.

그러면서도 유가와는 몇 가지 실험과 추리를 거쳐서 그 현상들을 물리학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하며 사건해결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구사나기에게 유가와는 든든한 지원군인 셈이다.

수많은 사건을 해결한 형사와 물리학자 콤비

그런 구사나기와 유가와 콤비 앞에 최대의 강적이 나타난다. <예지몽> 이후에 발표된 <용의자 X의 헌신>에 등장하는 수학자 이시가미가 그 주인공이다. 구사나기와 유가와, 이시가미 세 명 모두 같은 대학을 졸업했다. 구사나기는 사회학부였던 반면에 이시마기와 유가와는 이공계였다.

이시가미와 유가와 두 명 다 학부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을 만큼 유명했다. 당연히 당시에도 서로 알고 있었고 상대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 두 명의 천재가 이십여 년 후에 해후한 것이다. 한 명은 살인사건의 용의자이고 다른 한 명은 일종의 탐정이 되어서.

이시가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연립주택 근처의 고등학교에서 수학교사로 근무하는 독신남이다. 이시가미의 옆집에는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한 야스코가 중학교에 다니는 딸 미사토와 함께 살고 있다. 이시가미는 예전부터 야스코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야스코를 보기 위해 매일 아침 그녀가 근무하는 도시락 가게에서 도시락을 구입할 정도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야스코의 전 남편 도미가시가 그녀의 집을 찾아온다. 도미가시는 야스코를 위협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사토는 청동꽃병을 들어서 도미가시의 머리를 내리친다. 격분한 도미가시가 미사토에게 폭력을 휘두르자 야스코는 전깃줄로 도미가시의 목을 졸라서 죽여버리고 만다. 그 직후에 옆집의 이시가미가 야스코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한다. 여자 혼자서 시체를 처리하기는 힘들다고.

이시가미는 옆집에 있으면서 모든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수학자는 뛰어난 두뇌로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생각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야스코를 감방에 보낼 수는 없다. 방법은 둘 중에 하나. 사건이 일어난 것을 감추든지, 아니면 사건과 야스코 모녀와의 연관성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사건을 조작해서 은폐하려는 수학자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두 천재의 두뇌싸움이 정면에서 펼쳐질 뿐이다. 이전의 두 작품집이 구석구석을 찔러넣는 변화구였다면, <용의자 X의 헌신>은 시속 150km의 속도로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를 꿰뚫는 강속구다.

범인의 정체가 초반에 밝혀지기 때문에 독자들은 거기에 신경쓸 필요도 없다. 관심은 오직 두 가지에 집중된다. 수학자는 어떻게 사건을 조작해서 형사를 속일까, 그리고 물리학자는 어떻게 그 트릭을 간파할까?

어쩌다보니 범죄에 가담하게 되지만, 이시가미가 선천적으로 악한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려고 노력한다. 수학을 싫어하고 오토바이를 좋아하는 학생에게 오토바이 레이싱과 미적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말하기도 한다. 이시가미는 세상 모든 것을 이론으로 구축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물리학자인 유가와도 마찬가지다. 언뜻 불규칙해보이는 현상에 패턴과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과학의 역할이다. 수학자는 충동적으로 벌어진 살인현장에서 자신만의 질서를 가지고 사건을 조작한다. 물리학자는 조작된, 즉 어지렵혀진 사건에 다시 질서를 부여해서 본질을 파악하려고 한다.

수학자 이시가미는 <용의자 X의 헌신>에만 등장하고 사라지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되지 않길 바란다. 이렇게 천재적인 인물이 한 작품에만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는 것이 아깝기도 하거니와, 뛰어난 범죄소설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그만큼 뛰어난 범죄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양억관 옮김. 현대문학 펴냄.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재인(2017)


태그:#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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