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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추리소설에 푹 빠져 지낸 적이 있다. 내 생애 유일하게 밤새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끝까지 다 읽어버린 책도 다름 아닌 추리소설이다. 피터 러브시의 <가짜 경감 듀>, 그 유쾌하고 짜릿했던 순간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책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을 때 종종 추리소설을 찾는다. 

세계 3대 추리소설이니 세계 10대 추리소설이니 따위의 것들을 거의 모두 섭렵했다. 개중엔 크게 추리의 시작과 과정과 끝을 중심으로 추리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소설, 추리는 곁가지인 대신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이면과 세상의 필연적 부조리함을 보여주는 소설이 있다. 개인적으로 후자를 더 좋아하고 더 높게 치는 편이다. 

추리소설의 본래적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뭐니뭐니 해도 '추리'가 아닐까. 추리, 즉 사건과 트릭이 얼마나 치밀하고 철저하게 직조되어 있느냐, 독자들로 하여금 얼마나 감탄을 자아내게 할 수 있는가, 독자들의 예측 범위를 얼마나 벗어났는가 등이 중요할 것이다. 엘러리 퀸의 작품들을 보면 가히 그 환상적인 추리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추리소설 마니아들은 당연히 이들 소설을 더 높게 친다. 거기에서 어떤 문학적, 인문학적 요소를 끄집어내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그저 충실하게 누구도 생각할 수 없으면서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추리를 내보이면 되는 것이다.

동양 추리소설의 천국이자 최첨단, 일본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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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 같은 사람도 많다. 추리소설에서 추리적 재미 아닌 의미를 찾아야 하겠느냐고 불평할 수 있겠지만, 나 같은 독자는 그렇다. 추리소설 입문을 늦게 한 독자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겠는데, 추리소설계에서 보면 수준이 낮은 독자일 수도 있고 오히려 수준이 높은 독자일 수도 있다. 결론은 추리소설계 전체의 수준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던 건 분명하다. 

동양에서 일본은 추리소설의 천국이자 최첨단이다. 아니, 현재는 전 세계에서조차 북유럽 정도 아니고선 대적할 곳이 없는 최고의 추리소설 나라이다. 그런 일본 추리소설계는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다고 한다. 신본격과 신사회파. 본격에서 시작된 일본 추리소설이 사회파를 지나 두 가지 흐름이 따로 또 같이 흐르게 된 것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에도가와 란포로 대표되는 본격은 사건과 트릭을 중심으로 촘촘하고 철저하게 직조된 소설이고,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이자 국민작가이기도 한 마츠모토 세이초로 대표되는 사회파는 인간을 중심으로 현실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된 이야기를 그려낸 소설이다. 이후 80~90년대에 사회파에 반하고 본격으로 돌아가자는 신본격과 사회파를 잇는 신사회파가 동시다발로 출현한다. 

그 즈음 출현한 수많은 추리소설가들, 그중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위치는 독보적인 듯하다. 특히 옆나라인 우리나라에서 그 위치는 추리소설계, 아니 문학계, 아니 출판계 전체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 년에도 몇 편씩 출간하면서도 적어도 흥행면에서 실망시키는 법이 한 번도 없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
ⓒ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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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를 시작할 때 가장 많이 접하는 소설은 단연 <용의자 X의 헌신>일 것이다. 일본 대중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상 중 최고봉인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데뷔한 지 35년 정도가 된 히가시노 게이고가 약 데뷔 20년 정도 시기에 낸 작품으로 모든 면에서 완숙된 면모를 보인다. 

필자가 추리소설에 한창 빠져 있던 당시 이 책이 막 출간됐다. 수없이 많은 추천을 듣고 읽기 시작했었는데, 자연스레 그의 다른 소설들을 접하게 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다. 기억에, 오프라인 아닌 온라인에서 주로 추천의 말들을 접했는데 대부분 여성이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이 겉은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실상 극강의 사랑 방식을 내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제 보아도 반할 만한 아름다고 슬픈 사랑의 모습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으로 본격 미스터리 대상 소설부문을 수상했을만큼, 일본 추리소설계 계파에서 신본격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는 소설가이다. 하지만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보다시피 추리를 수단으로 사용할 만큼 추리 자체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회파 미스터리를 선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국내에 출간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포진되어 있거니와 얼마전에는 100만 부를 돌파하기도 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실상 인간 본성의 따뜻함을 내보이는 게 주된 목표인 소설이다.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는 추리적 재미의 반석 위에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한껏 발휘한 '인간'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낸 소설이라면 독자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다. 너무 무겁거나 사회의미적이지도 너무 가볍거나 사건트릭 위주도 아닌 그 경계에서 자유자재로 줄타기를 하는 소설이 어디 흔한가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기

일본은 추리소설계뿐만 아니라 문학계 전체에서도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을 따로 또 같이 챙겨왔다. 서로가 서로를 무시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게 아닌가. 본격문학을 대표하는 상인 아쿠타가와상과 대중문학을 대표하는 나오키 상의 동급 위상은 일본 문학계의 축복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기는 단편적으론 여성이 좋아할 만한 소재, 추리가 주는 내재적 재미와 추리 아닌 것들이 주는 외재적 의미의 자유자재 줄타기, 무엇보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훌륭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 등이 있을 테다. 하지만 기실 그게 전부는 아닌 것이다. 그 뒤에는 일본 문학계의 실력이 있다. 

본격과 대중을 가리지 않고 재미와 의미를 포용하는 자세 말이다. 분명 이는 오랜 시간 반목과 조율을 그 자체가 분열이나 혼란이 아닌 민주적 다양성의 당연한 과정이라 생각하는 너른 자장 아래서 계속 반복해온 결과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소설가가 탄생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와중에 영리하게 이쪽 저쪽을 오가며 셀프포지셔닝을 하는 소설가 장강명이 있긴 하다. 기자 출신으로 어떻게 하면 사회에 목소리를 내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으면서 굴하지 않는 자신만의 신념을 지닌 채 다작의 기본으로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데뷔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그의 앞으로의 10년이 기대되는 점이다. 제2의 히가시노 게이고, 제2의 장강명이 나오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재인(2017)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100만 부 기념 특별 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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