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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슨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슨 <이기적 유전자>
ⓒ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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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내가 생각한 것을 쓰고 있다. 글을 쓰다가 팔목이 아파  쉬고 싶으면 쉬고, 때가 되어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주체도 나다. 물론 조직이나 가정에 얽매여 내 마음대로 못할 때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기에 이 또한 나의 선택이다. 직장 또는 사회조직에 얽매여 바쁜 5월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고는 의심해 본 적은 없다.

내 머릿속에 든 지식이 나의 본성을 억누르고 이성적으로, 즉 주류 문화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주체도 나다. 그런데, 내 몸뚱어리가 나의 것이 아닐 수 있다?

"40억 년 전 스스로 복제 사본을 만드는 힘을 가진 분자가 처음으로 원시 대양에 나타났다.(중략) 이제 그것들은 거대한 군체 속에 떼 지어 마치 뒤뚱거리며 걷는 로봇 안에 안전하게 들어 있다. 그것들은 원격조정으로 외계를 교묘하게 다루고 있으며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것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중략)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우리(인간)는 그것들의 생존기계이다." - <이기적 유전자> 5쪽

생물학의 영원한 고전이며, 현재 생물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핵심 내용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기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금 글을 쓰는 나, 유전자의 '명령'에 따르고 있다

도킨스의 말대로라면, 지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주체는 유전자이고, 내가 생각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유전자의 생각이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것도 유전자의 명령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조직 생활을 하는 것도 유전자의 조정에 의한 강제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도킨스는 또한 이 책을 통해 진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즉 다윈의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이라는 개념을 유전자 단위로 바라봤다.

"나는 선택의 기본 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 단위가 종도 그룹도 개체도 아님을 논하고자 한다. 그것은 유전의 단위인 유전자이다." - 55쪽

유전자가 안전을 지키고자 자신들보다 거대한 기계인 생물을 만들었고, 자신들의 에너지를 얻고자 생물의 소화기관과 에너지의 통로인 혈관을 만들었다. 또한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그 기계를 끝없이 편리하게 개량했다(진화). 기계가 복잡해지자 자동화 시스템인 신경세포를 만들었고, 반복 실수를 방지하고 경험을 저장할 수 있는 뇌를 만들었으며, 그러다 보니 저장 용량이 커진 인간이 탄생했다는 것을 유추할 수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문명을 비롯한 지구 생명체의 역사는 유전자의 역사다. 40억 년 동안 몇 번의 대멸종 시기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유전자다. 원시의 늪에서 우연히 탄생하여 자신의 모습과 같은 복사체를 만들어, 그들의 집합체인 생명을 탄생시켰고, 지금처럼 엄청난 생물다양성을 창조해 낸 것은 각각의 생명체가 아니라 유전자다. 어찌 보면 삶이 허무하고 냉혹해 보인다.

"내가 씌워 준 유전자 렌즈로 보는 세상이 너무나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삶이 무의미해졌다며 눈물을 흘리는 학생도 종종 있다. 나는 그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고.(중략). 그런데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했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홀연 마음이 평안해지더라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낀다.(중략) 마음 한복판에 커다란 여백이 생기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종교가 다 우리더러 마음을 비우라지만 그처럼 어려운 일이 어디 또 있으랴. 그런데 유전자 렌즈를 끼면 저절로 마음이 비워진다." - 최재천 교수의 <유전자의 눈으로 본 생명> 중에서

리처드 도킨슨은 누구?


리처드 도킨스 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은 학자도 드물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비난을 받았던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필자도 한때는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너무나 사랑했다가, 그의 최근작 <만들어진 신>을 읽고 사랑한 만큼 실망이 컸었다.

그의 대표적 저서는 지금 소개한 <이기적 유전자>부터 이를 확대하여 해석한 <확장된 표현형>, 무신론, 즉 종교가 없는 세상이야말로 우리의 이상향이라고 하는 <눈먼 시계공>, 그리고 그의 저서 중에 가장 많이 팔렸다는 <만들어진 신>, 만들어진 신을 읽고 그에게 실망하여 필자도 읽지 않은 <지상최대의 쇼>가 있다.

그가 비난받았던 이유는 과학으로 신의 존재를 해석하려고 했던 것이다. 종교는 종교 나름대로 인류에 이바지했고, 과학은 과학 나름대로 인류에 이바지했다. 종교와 과학은 인류를 이끈 거대한 두 힘이다. 도킨슨은 인류에 공헌하는 면이 다른 과학과 종교를 통합하여 해석하려고 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과학의 입장에서 종교를 해석하려고 했다.

<이기적 유전자>부터 <만들어진 신>까지 읽다 보면, 마지막에는 무신론에 거의 집착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만들어진 신>도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수작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란 명작을 집필한 도킨슨의 저서라서 실망이 컸다.


나의 지배자, 유전자란 무엇인가

유전자란 부모에서 자식으로 물리는 특징, 즉 형질을 담은 정보의 단위이며 생물 세포의 염색체를 구성하는 DNA에 있다. DNA는 우리 몸을 만드는 방법이 담겨있는 지도 또는 설계도와 같다. 인간 DNA 속에 있는 유전자 수는 3만 개가량 된다고 한다.

세포마다 DNA 꾸러미인 염색체를 46개 가지고 있다. 성인 인간은 약 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졌다. 세포도 어찌 보면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물질에 불과하다. 유전자는 독립된 개체이다. 만약에 자신을 보호하는 세포가 나약해지면, 유전자는 세포분열을 하여 가차없이 약한 세포를 버리고, 싱싱하고 튼튼한 보호막인 새로운 세포로 이동한다.

물론, 60조 개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물인 인간도 그들이 필요 없다면 과감하게 버린다. 우리는 왜 늙어서 죽는가에 대한 답이다. 하지만 "자기 생존 기계의 죽음을 적어도 생식 활동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생식활동이란 무엇인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생명연장 즉 장수 비결은 생식활동을 늦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전자들은 인간이란 기계를 쉽게 버리지 않을 것이다. 즉 죽음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창 젊은 나이 때 생식활동을 중지는 평범한 인간에게는 힘든 일이다. 성욕 때문이다. 가장 근본적인 본능인 성욕은 어찌 보면, 유전자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성욕뿐만 아니라. 식욕 등 인간의 본능 모두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이성은 유전자와의 싸움이 아닐까. 유전자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놓은, 슈퍼컴퓨터보다도 더 성능이 좋은 인간의 뇌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 이성인 듯하다. 유전자 처지에서 보면 인간은 컴퓨터 바이러스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쯤 유전자들은 생각하는 능력을 갖춘 인간을 만든 것을 후회할까? 후회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환경파괴 등으로 말미암아 부정적인 요소가 대두하였다고 해서, 인류가 과학기술을 포기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다윈을 괴롭혔단 '자기희생'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과 닮은 사람을 만들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중략)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며 모든 짐승을 부려라!'" - 성서 창세기 제1장

200여 년 전, 다윈의 진화론이 세상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모두 이렇게 믿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은 물론, 철학 인문학 등 인류 전반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았다.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지금까지 그 열기기 식지 않았다.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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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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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선택이다. 자연선택은 유전, 변이, 경쟁의 단계를 거쳐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자손은 부모를 닮는다. 이를 유전이라고 한다. 하지만 같은 부모에게서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도 자라면서 차이점이 나타나듯, 한 종에 속하는 모든 생물은 각자 다른 형태를 보인다. 이것이 변이다. 그리고 어떤 변이는 유전된다.

맬서스의 인구론에 의하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했다. 이는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에 적용된다. 먹이에 비해 많은 개체가 태어나기에 경쟁할 수밖에 없다. 경쟁에서 우수한 형질들이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 이것이 자연선택이다. 이와 같은 단계를 거쳐 모든 생물은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해왔고, 지금도 진화 중이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에는 크나큰 오류가 있다. 바로 자기희생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의하면 모두가 치열하게 경쟁하여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을 비롯해 많은 생명체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2010년 여름, 아버지가 물에 떠내려가는 자녀를 구하고 끝내는 숨진 사건이 있었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이와 유사한 뉴스를 접할 수 있다. 자기희생이다. 자기희생 모습은 인간뿐만 아니라 많은 생물체에서 발견된다. 특히 개미나 벌과 같은 사회성 곤충의 군락에서 자기회생 행동은 다윈을 무척이나 괴롭혔던 생명 현상이었다. 자연선택설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형제 2명을 살리고 내가 죽어도 유전자는 손해 없다

다윈을 괴롭혔던, 자기희생에 대해 리처드 도킨슨은 이타적 자살 유전자로 해석했다. 번식을 위해 난자와 정자를 만들 때 감수분열이라는 과정을 거쳐 정확히 자신의 유전자 50%를 넣어놓는다. '아버지 50%+어머니 50%'로 하나의 생명이 탄생한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는 유전적 근친도는 50%다. 당연히 할아버지와 손자 간의 유전적 근친도는 25%이다. 형제간의 유전적 근친도는 50%다.

"이타적 자살 유전자가 성공하는 최소의 요구조건은 그 유전자가 2인 이상의 형제(또는 자식이나 부모)나 4인 이상의 배다른 형제(또는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조카, 조카딸, 할아버지, 할머니, 손자) 또는 8인 이상 사촌 등을 구하고 죽는 것이다." (179쪽)

이를 좀 더 쉽게 표현하면, 형제 2명 혹은 조카 4명 또는 사촌 8명을 구하고 자신이 죽으면, 유전자의 입장에서 손해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유전자는 40억 년 전부터 진화하지도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혹시 성경을 만든 사람들이 "유전자를 만들어 모든 생물체를 부려라"라고 한 하느님의 말씀을 잘못 듣고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어 모든 짐승을 부려라"라고 적은 것은 아닐까?

지금은 5월 11일 오후 7시 30분.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서 배가 고프지만 참고 이글을 쓰고 있다. 온 종일 업무에 시달리고 집에 가서 쉬고 싶지만 나는 지금 꾹꾹 본능을 눌러대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내 의지에 의해 손가락이 움직인다. 이 순간 나는 나를 느낀다.

물욕, 성욕, 식욕 등 본능은 유전자의 명령들이다. 인류는 사고의 집합체인 이성을 만들어 본능에 대적해 왔다. 이성은 인류 고유의 것이다. 신부, 스님 등 본능을 다스린 성직자들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유전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진정한 독립된 하나의 인간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유전자 손아귀에서 벗어난 '독립된 두 인간'

고 김수환 추기경과 성철 스님
 고 김수환 추기경과 성철 스님
ⓒ 천주교·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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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은 평생 성직자 삶을 살았다. 급속한 경제발전과 군사독재 시대에 방황하던 많은 사람의 정신적 지주였다. 삶을 마감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각막을 기증하며 나눔의 정신을 실천했다. 다윈의 경쟁, 유전자의 이타적 행위에도 적용되지 않은 오로지 인간의 모습만 간직한 분이 아닐까.

성철스님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오로지 구도에만 몰입했다. 특히 파계사에서 행한 8년 동안 눕지 않고, 수행한 장좌불와((長坐不臥) 수행으로 유명하다. 오로지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고자, 모든 욕망을 누르고 수행했다. 40억 년 동안 유전자로부터 독립한 진정한 생물체가 아니었을까.



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2018)


태그:#유전자, #진화, #다윈, #리처드도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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