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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으로 전 국토가 타들어 간다. 장마 기간임에도 비가 안 온다고 난리다. 장마철임에도 비가 오지 않자 '마른장마'라는 단어까지 만들어 냈다. '장마' 하면 언뜻 생각나는 게 비가 내리는 풍경이다. 그것도 조금씩 보슬보슬 내리는 게 아니라 주룩주룩 내리는 비다. 그런데 마른장마라니? 그래서 장마의 뜻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봤다.

장마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장마 : 여름철에 여러 날을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또는 비.

기상백과
장마 : 우리나라 6월 하순부터 7월 하순까지 계속해서 많이 내리는 비로 기상학적으로는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아 비가 오는 경우를 의미한다.
장마는 사전적 의미(표준국어대사전)든 과학적(기상백과) 뜻이든 '비가 많이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마른장마라니? 마치 '뜨거운 냉수를 마신 후, 검은 백마를 타고, 솔솔 부는 강풍을 뚫고, 비 오는 달밤을 달리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냉수는 차가워야 하고, 백마는 하얀색이어야 하고, 강풍은 세게 불어야 하고, 달밤은 구름이 없어야 하듯이 장마는 마를 수 없다. 마른장마라는 말을 접하자마자 '빌게이츠가 구걸했다'는 것처럼 들렸던 이유였다. 그렇다면 왜 이런 허무맹랑한 용어가 생겨났을까?

장마와 장마전선의 차이

위쪽으로 반달과 아래쪽으로 삼각형 모양의 긴띠가 정체전선이다.
▲ 7월 8일 9시 일기도. 위쪽으로 반달과 아래쪽으로 삼각형 모양의 긴띠가 정체전선이다.
ⓒ 기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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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학적으로 장마란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아 비가 오는 경우(기상백과)"를 말한다. 그리고 장마전선이란 정체전선이다. 전선이란 성질이 다른 큰 공기 덩어리들이 만나는 경계면을 의미한다. 찬 공기와 따뜻한 공기가 만나면 대기가 불안정 해 날씨가 나빠진다. 전쟁터의 적군과 아군의 경계선도 전선이다. 겨울철에 뱃속의 따뜻한 공기를 공기 중으로 뿜어내면 생기는 입김과 마찬가지다. 전선의 종류에는 한랭전선, 온난전선, 정체전선 등이 있다.

장마전선은 덥고 습한 북태평양에서 밀려온 공기덩어리(북태평양고기압)와 상대적으로 찬 아시아 북동쪽 오호츠크 해에서 밀려온 공기덩어리(오호츠크해고기압)가 만나는 경계면이다. 두 공기덩어리는 세력이 비슷하여 장기간 한반도 주변에서 싸움을 한다. 대략 한 달 정도이다. 이 기간을 장마 기간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치열한 싸움이지만 우리는 이 싸움을 결과를 알고 있다. 북태평양 공기 덩어리가 이긴다. 바다와 계곡으로 떠나기에 안성맞춤인 시기가 북태평양 공기 덩어리가 한반도를 덮고 있을 때다.

하지만 영원한 삶을 그리 갈구하던 진시황도 죽었듯이, 영원한 것은 없는 법. 만주지역까지 점령했던 북태평양 공기 덩어리들도 찬 공기에 밀려 후퇴한다. 전선에서 후퇴하는 군인들이 그렇듯이 북진할 때보다 빠르게 한반도를 지나간다. 그것도 조용히. 하지만 도망치면서도 쫓아오는 적을 향해 간간이 공격을 하여 이따금 머물기도 한다. 북태평양의 공기 덩어리가 북쪽의 찬 공기에 쫓겨 남하하는 시기를 가을장마라고도 한다. 하여튼 8월 하순인 이 시기에 비가 많이 내린다.

다시 요약하면, 장마전선은 북태평양 공기와 오호츠크 해 공기가 만나는 정체전선을 의미한다. 전선은 말 그대로 선이다. 광범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터의 전선에서도 항상 총과 포탄이 날아다니지 않듯이, 정체전선에서도 항상 비가 오는 건 아니다. 다만 다른 시기에 비해 비가 많이 온다는 것이다.

현대의 과학문명에서 사라졌어야 할 단어 '장마'

하늘만 쳐다보며 농사를 짓던 시기에는 선조들로부터 쌓여서 형성된 장마 정보가 귀중했을 것이다. 구체적인 날짜는 모르겠지만, 비가 많이 내리는 철이 다가온 것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장마란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그때가 되면 비가 많이 온다는 의미로 쓰인 단어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아주 광범위함을 뜻한다.

하지만 현재는 우주엔 기상인공위성이 지상엔 기상레이더와 각종 첨단장비, 그리고 최고성능의 슈퍼컴퓨터를 활용하여 장마전선인 정체전선의 위치는 물론 남북 진동까지 예측하여 기상청에서는 3시간 단위로 동네의 날씨까지 예측 하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장마는 포괄적인 단어다. 귀중한 기상 정보에 흠집 내는 단어다.

장마기간을 발표하는 것은, 최첨단 장비로 기상정보를 생산하여, 조선시대 관상감 수준의 일기예보를 발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기상청은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발표했다. 장마전선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장마전선이 오호츠크 해 공기에 밀려 태풍의 지원을 기다리며 제주도 남쪽에서 북상하지 못하고 꼼지락 거리자 장마인데 왜 비가 안 오냐고 의문이 생겼을 것이고, 누군가가 '마른장마'라고 하자 그럴 듯하여 용어가 쓰이기 시작하여 지금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장마라는 단어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할 시점이다.


태그:#장마, #마른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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