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나이가 서른하고도 둘이나 먹은 노처녀이자 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니는 환자입니다. 집에서는 몸이 남처럼 건강하지 않다는 이유로 물 한 방울 손에 못 묻히는 못난 딸이며 나이 서른이 넘어서도 용돈을 타 쓰는, 육십이 훌쩍 넘어버린 부모님에게 얹혀사는 불효자이기도 합니다.

요즘에야 공부를 다시 하고 친구도 만나며 아르바이트도 하는 등 즐겁게 생활하고 있지만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저는 병상에 누워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때 무뚝뚝하며 손 한번 따뜻하게 잡아주시는 일 없던 경상도 사나이, 우리 아빠가  제 눈물을 그 거친 손으로 닦아주며 "아빠가 지켜줄게, 걱정하지마라"하던 말씀이 생각나서, 여전히 제 등을 두드려 주며 매일 아침 응원해 주는 아빠 생각이 나서 이글을 씁니다.

저희 아빠는 군인이었습니다. 그만큼 무섭고 엄격하다는 말이지요. 화가 나시면 정말 눈에서 빨간 핏대가 서면서 레이저가 나오는 듯합니다. 그렇게 강한 아빠가 막내이자 외동딸 같은 제 앞에서는 한없이 유해지시지요.

권총을 차고 다니던 군인 시절에도 단 한번 맞고 자란 적이 없습니다. 엄마한테 야단맞아 울고 삐쳐서 밥도 안 먹고 시위하고 있으면 저를 데리고 나가 이것저것 사주기도 하고, 가세가 기울어져 제 등록금 걱정하던 시절에도 제게 필요한 것, 갖고 싶단 것 있으면 말없이 용돈을 움켜 주시던 그야말로 '딸바보' 우리 아빠!

남들도 그럴테지만 저랑 아빠는 뭔지 모르게 그 유대 관계가 말로 형용할 수는 없을 정도로 찐~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제가 중2 때 엄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빠도 제일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고, 저도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을 잃었으니까요. 우리 둘은 같은 시기에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을 지니고 이 세상을 이십여 년을 살아왔으니까.

말은 안 해도 그 아픔을 서로 잘 아니까. 그래서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으니, 말 안 해도 아빠랑 저는 누구보다 서로 를 잘 알고 있으니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있어 바보가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렸을 적엔 너무 어려서 그런 아빠의 소중함을 몰랐고, 이십대에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놀고 연애하느라, 나 자신이 가장 중요했기에 아빠의 존재를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서른해를 훌쩍 넘기고 2년여를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아빠의 든든함을 실감하고 이제는 저도 '아빠바보'로 거듭 태어나고 있지요.

친구들은 결혼 하고 애도 낳고 평범하게 잘살고 있지만, 저는 이 나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아프면서 부모님 속도 많이 썩였습니다. 학교 다닐 때 우등상도 타며 공부를 잘했던 저이기에 기대 많이 하셨을 텐데. 역시 평범한 게 제일 어렵나 봅니다.

그래서 요즘은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효도하는 게 저로서는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고 여기기에 집에 들어갈 때 간식 사가기, 부모님과 대화 많이 하기 등 저만의 효도 방법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일입니다. 저녁에 알로에로 마사지하다가 갑자기 아빠 생각이 나서 알로에 팩을 들고 티브이를 보고 계시던 아빠보고 대뜸 "누워봐, 내가 백만불 짜리 피부 만들어줄 테니까"하고 큰소리치며 반강제로 어색해하는 아빠께 얼굴에 팩을 해드렸습니다.

아빠랑 제가 둘이 아무리 사이가 좋다고 하더라도 경상도 사나이 아빠와 그 딸인데 스킨십은 아무래도 좀 쑥스러웠습니다. 그때 아빠의 얼굴을 처음으로 만져보았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아빠의 얼굴을 그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만져본 적도 없지요.

얼굴에 구석구석 팩을 바르면서 거친 살결에 다시 한 번 마음이 아팠고 깊게 팬 주름에 슬픔이 밀려와 눈물이 나오려는걸 꾸욱 참았습니다. '우리 아빠, 이렇게 많이 늙으셨구나.'
제 손길이 아빠의 거친 피부에 닿을 때마다 제가 느끼는 이 거친 감촉들이 지금껏 아빠가 살아온 세월과 못난 딸 때문에 마음고생 하신 아빠의 얼굴에 고스란히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하고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어렸을 적에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실컷 뛰어놀고 있으면 아빠가 퇴근을 하시면서 차를 주차하시고 제 이름을 부르시며 같이 집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때는 내 이름을 부르시던 아빠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그때 아빠는 굉장히 말끔하고 젊고 듬직하고 잘생기고 그랬었는데, 그래서 자랑하고 싶고 우쭐거리고 싶고 그랬었는데 말입니다.

어려서 너무 어려서 몰랐겠지요. 아빠의 청춘이, 아빠의 젊음이 이렇게 소중한지. 그때는 제 손에 든 과자가, 그날 저녁 메뉴가 온 세상이었습니다. 있을 때 잘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한 저인데 사람은 역시 망각의 동물인가 봅니다.

요 며칠 날씨가 참 좋습니다. 비 온 뒤에 맑은 공기, 건강하게 숨 쉬고 있는 내 심장소리와 함께 따스한 햇살 아래를 걷고 있으면 이 조화들이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지, 불과 2년 전 제가 아팠던 사람이 맞나하며 실감이 안 나기도 하고,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음에 너무나 감사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분과 감사함, 이 따뜻한 봄날에 아빠도 느끼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빠가 저를 지켜주었듯이 그래서 제가 이렇게 여기 서 있는 것처럼, 이제 제가 그분을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딸바보 우리 아빠! 이젠 내가 아빠 지켜줄게, 사랑해."

덧붙이는 글 | ‘제가 제일 불효자입니다 ’응모글입니다.



태그:#불효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