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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버지의 요양병원 퇴원을 결사반대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8일, 아버지는 요양병원을 퇴원하고, 형의 차를 타고 우리집으로 왔다. 아버지가 퇴원하면 내가 모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열받았다. 아버지의 수발을 들자면 내 생활이 희생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내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방해물로 느껴졌다. 아버지가 우리 집에 당도하기 전까지 난 아버지의 수발 의무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두통까지 왔다.

그렇다. 나는 아버지를 싫어한다. 아버지는 평생 술로 가정을 망가뜨렸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병원 입원 전까지 4년간을 쭉 나와 같이 살았다. 그러다 지난해 3월 아버지가 가벼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아버지로부터의 해방감을 만끽했다.

아버지는 처음엔 어깨골절이었으나, 나중에는 치매가 왔다. 대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고, 걷기 조차 힘들어, 적당한 병원을 수소문했다. 치매인 아버지와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듯 불안한 생활이었다. 그러다 집근처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사실상의 격리였다. 아버지가 없는 나의 생활은 한결 가벼웠다. 일주일에 한번 요양병원의 아버지를 찾아뵙는 것으로 자식의 도리를 대신했다.

그런데 큰일(?)이 벌어졌다. 아버지의 치매가 호전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형에게 퇴원시켜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고 눈물로 호소했다고 한다. 형은 아버지를 퇴원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형네는 아버지를 모실 상황이 아니라서, 공은 나에게 넘어왔다. 나는 내심 아버지가 병이 호전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요양병원에서 지내길 바랐다. 나는 시부모를 모시는, 특히 치매가 있는 노인을 모시는 며느리와 자식들의 고통을 이해할 것만 같다.

막상 닥쳐서, 아버지를 모시니까 힘들진 않다. 복잡하던 생각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런데 버릇이 하나 생겼다. 아버지가 아무런 기척이 없으면, 잠든 아버지에게 다가가 숨소리를 확인하곤 한다. 혹시라도 갑자기 돌아가실까봐 겁이 나서이다. 숨을 쉬는 소리가 "쇠~~쇠~~" 하고 들리면 안심을 하고 내 방으로 돌아오곤 한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를 모시기 싫은 불효자이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에겐 요양병원이 더 안전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아버지의 뒤치닥거리를 벗어날 궁리를 한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간의 인연은 끊고 싶다고 끊어지지 않는 질긴 것임을 느낀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죽을 때까지 아버지와 내가 함께 하게 해주시라고. 마음에도 없는 기도를 했다. 나는 지금의 '아버지와 나'를 둘러싼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아버지가 치매로 고통받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여생을 사시길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제가 제일 불효자입니다' 응모글



태그:#아버지, #퇴원, #요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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