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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협박으로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 주의 모든 이동전화 서비스가 중단됐다고 23일 <비비씨>(BBC)가 보도했다. 이곳은 세계 아편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아편을 가장 많이 재배하는 지역이다. 이곳에서 나오는 아편이 세계 아편 생산량의 42%를 차지하고, 이는 탈레반의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다. 이곳은 미군과 나토군으로 구성된 다국적군이 진행하고 있는 탈레반 소탕작전의 최전선이기도 하다.

헬만드의 지상선을 이용한 통신 서비스는 1% 정도기 때문에 주민들은 몇 개의 통신 회사가 제공하는 이동전화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다. 이전에 탈레반이 몇 시간씩 서비스를 중단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모든 통신을 중단한 적은 처음이며 언제 서비스가 재개될지 알 수 없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탈레반은 다국적군이 자신들의 통신을 감청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번 조치를 취했다.

탈레반은 서비스 중단을 하지 않는 통신회사들에게 통신 안테나를 파괴하겠다고 협박했으며 실제로 이번 주 초 발표된 서비스 중단 조치를 따르지 않는 두 개 통신사의 안테나를 파괴했다. 그러나 소식통은 탈레반 또한 이동통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이 조치가 탈레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국적군 완전 철군 계획 발표한 아프간 대통령

지난 2월 14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카불 난민촌에서 어린이들이 점심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 아이들은 왜 집을 잃었나 지난 2월 14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카불 난민촌에서 어린이들이 점심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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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만드 주 탈레반의 통신 중단 소식은 아프간 군대가 7월까지 7개 지역의 안전을 전적으로 책임질 것이라는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지난 화요일(22일) 발표 직후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이번 발표는 2014년을 겨냥한 다국적군 완전 철군 계획의 1차 실행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군은 7월에 상징적으로 수천 명의 병력을 철수할 예정이며 영국은 2014년까지 영국군 전체를 철수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7개 지역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안전한 주로 여겨지는 바미얀, 판즈쉬르, 카불 등 세 개 주 전체와 북부의 마자리 샤리프, 서부의 헤랏, 남부의 라쉬카 가, 그리고 동부의 메터람 등 네 개 도시가 포함돼 있다. 이중 외신들이 가장 우려를 표한 도시는 헬만드 주의 주도인 라쉬카 가와 라그만 주의 주도인 메터람이다. 두 곳 모두 지난 몇 년 동안 반군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지역이다.  

발표 직후 헬만드 주와 라그만 주 모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라그만 주 출신의 오하마드 하산 마모지아 의원은 안전을 책임지기에는 라그만 주의 경찰과 군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헬만드 주의 말리카 헬만디 의원 또한 아프간 군대의 문제를 지적했다.

"외국 군대를 떠나보내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아프간 군대는 아직 주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군인들이 마약복용자들이고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장비도 부족하고, 사기도 낮고, 대중의 지지도 없다." 

탈레반 대변인인 자비울라 무자히드는 카르자이 대통령의 발표가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상징적인 행동일 뿐이다. 아프간 군대가 일부 지역을 책임지는 것은 외국 군대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프간 군과 경찰, 분열되고 정치화돼 있다"

현재는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여겨지는 북부 발크 주의 주도인 마자리 샤리프 또한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인근의 쿤두즈 주와 바글란 주에서 세를 장악하고 있는 탈레반이 외국군이 떠나면 경제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마자리 샤리프를 겨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외국군이 철수하는 것 자체가 재난이 될 것이다"라고 발크 주의 부경찰청장인 압둘 라우프 타지는 <뉴욕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역시 탈레반과 다국적군과의 무력 충돌이 잦고 탈레반이 세를 유지하고 있는 헬만드 주의 주도인 라쉬카 가의 안전이다. 나토군은 2001년 2월부터 헬만드에서 대대적인 탈레반 소탕작전을 진행했다. 라쉬카 가는 나토군의 지속적인 공습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심심찮게 발생하고 탈레반의 반격과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민간인들의 안전이 가장 위협받고 있는 지역이다. 

나토는 헬만드 주의 아프간 군은 다른 지역의 군대에 비해 더 나은 훈련을 받고 장비를 지급받은 최정예 부대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공식적으로 아프간 군이 안전을 책임질지라도 나토군이 계속 아프간 군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분쟁 전문단체인 ICG(International Crisis Group)는 헬만드 주의 군대와 경찰이 주민들의 안전을 책임지기에는 너무 열악하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ICG는 "아프가니스탄은 국가 안보 전략이 부족하고 군과 경찰은 위험할 정도로 분열되고 정치화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다국적군이 출구전략 위해 아프간 군 상태 왜곡

아프가니스탄의 헤라트에서 현지 경찰들이 압수한 아편 더미들을 태우기에 앞서 휘발유를 붓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헤라트에서 현지 경찰들이 압수한 아편 더미들을 태우기에 앞서 휘발유를 붓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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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군은 점진적인 철수를 위해 아프간 군대 모집과 훈련에 집중하고 있지만 문맹자가 많아 훈련과 장교 양성에 어려움이 많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 한 해 동안 아프간 군대 규모는 15만 명으로 두 배나 증가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도중하차하거나 복무하지 않는 수를 감안하면 사실상은 7만 명이 증가했다. 미군과 나토군은 올해 10월까지 아프간 군을 17만 명으로 늘릴 예정이며 2014년 아프간 군이 안전을 책임질 수 있도록 계속 모집을 늘릴 계획이다.   

그러나 탈레반의 통신 서비스 중단 조치에서 볼 수 있듯이 헬만드 주는 물론 우려되는 다른 지역들도 아프간 군이 단독으로 안전을 책임지기에는 너무 위험한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외신들은 다국적군이 출구 전략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아프간 군의 준비 상태를 왜곡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안전문제는 아프가니스탄의 장기적인 개발과 국가 재건에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구호개발 단체들은 안전문제 때문에 여전히 가장 도움이 필요한 지역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올 2월 구호개발 단체들이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 또한 여자 어린이들의 교육에 장애가 되는 세 번째 요인이 안전문제라고 지적했다.

꽉 찬 10년이 돼가고 있는 아프간 전투를 마감해야 하는 것이 다국적군의 목표라면 10년 동안의 전쟁을 끝내고 이제는 실질적인 평화를 모색하는 것이 아프간 국민들의 간절한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애초 미국이 장담했던 것과는 달리 10년 동안의 전쟁 후에도 여전히 최소한의 안전을 우려해야 하는 것이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이다. 


태그:#아프간 전쟁, #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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