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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미팅을 갔었지 뚱뚱하고 못생긴 얘 있길래 와 재만 빼고 다른 얘는 다 괜찮아 그러면 꼭 걔랑 나랑 짝이 되지..'

이 가사는 DJ DOC의 '머피의 법칙'이란 노래로, 이른바 안 좋은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노래한 가사다. 살면서 한번씩 느낄 수 있는 노랫말과 흥겨운 리듬으로 나왔을 당시에 꽤 인기가 있었다. 나는 유난히 이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일까, 2010년 나에게도 '머피의 법칙'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것도 좀 오랫동안.

2010년 1월, 부푼 꿈을 가지고 공공영역의 홍보기획자로 입사했다. 20살부터 되고 싶었던 꿈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입사한 다음날부터 바로 야근 모드로 들어갔다. 그리고 입사 첫 주의 '주말 출근'을 경험하게되었다. 그리고 시작부터 올해가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을 했다.

온 세상이 점점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던 9월 말, 순조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나는 팀장님의 퇴사로 팀장님이 맡았던 업무의 일부를 인수인계 받아 진행하게 됐다. 동영상 제작 건이었는데 시나리오는 이미 나온 상태라 촬영만 협조해 주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전에도 해보았던 일이라 별 부담 없이 받아들였고, 관계자들과 연락하면서 하나하나 일을 진행했다.

촬영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한편, 스케줄도 꼼꼼히 체크해 나갔다. 촬영장소가 필요하다 해서 사무실을 직접 제공해 주기도 했다. 계획대로 잘 흘러갔다. 모든 일은 순조로워 보였다. 마지막 촬영을 마치기 전까지...

우리 사무실을 마지막으로 촬영이 끝났다. "이제 모든 촬영이 끝났으니 주말에 편집하면 월요일 날 받을 수 있겠네요?"라는 나의 질문에 "네? 무슨... 그런 소리 못 들었는데요. CG작업도 있고 죽었다 깨어나도 못합니다. 1주일은 더 있어야 합니다"라는 감독의 말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패닉 상태였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스케줄 체크하면서 진행했는데 일정에 차질이 생긴 것이었다. 얼른 작가에게 통화했다. 서로서로 핑계 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정이 늦어진 것에 대해 다투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월은 시작됐다. 그러나 그것은 머피의 법칙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일단 서로의 잘잘못은 제쳐두고 일단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싸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영상이 완성되면 짧게 편집본이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데드라인이 넘어선 후라 편집할 시간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동영상 제작과 편집본 제작이 따로 진행되어야 했다. 편집본 제작은 시간이 짧아 필요한 자막과 내용만 있으면 되었다. 여러 수정작업은 있었지만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납품할 수 있었다. 문제는 동영상이었다. 촬영하는 쪽에서는 시간이 없다고 하고 자료가 없다고 하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시사회 날이 되었다.

'오 마이 갓' 결과는 불만족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처음 기획회의에 있었던 기획자, 작가, 피디 등 사람들 중 절반은 교체되어 있었고 시간에 쫓겨 영상을 찍으니 제대로 된 영상이 나올리 없었다. 시나리오의 문제도 지적됐다. 그러자 영상이 잘못이다, 시나리오 잘못이다 생산 없는 다툼들이 오고갔다. 이때가 10월 중순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정말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다. 얼굴, 머릿속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잠도 이룰 수 없었다. 먼저 나간 팀장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종교에 귀의할까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어떻게든 마쳐야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기획자, 작가, PD, 전문가 등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다시 모여 의논하고 시나리오를 잡아나갔다. 예정된 시간은 훨씬 넘었지만 다행히 11월초 G20정상회의로 전체 일정을 미룰 수 있었다. 한줄기 빛이었다.

그 뒤로는 그래도 잘 진행됐다. 아예 문제가 없는 건 아니였지만 전에 비할 바 되지 않았다. 드디어 2차 시사... 정말 다행이도 사람들은 만족스러워했고 시작한 지 한 달이 좀 넘어서야 힘들었던 머피의 법칙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설상가상, 엎친데 덮친 격, 무슨 표현이라도 좋았다. 2010년 10월은 나에게 있어 그야말로 가장 버라이어티한 삶이었으며 내 생애 가장 힘든 순간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정도로 심각했고 어려운 순간이었다. 약간의 여담이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돈을 독촉하는 관계자 때문에 애를 먹기도 하였고 성격있는 제작사와의 불화(?)로 힘들기도 했다. 정말 겪을 수 있는 최악을 모두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와 생각해보면 '이 또한 지나간다'는 평범하고도 단순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은 아무일 없이 완결되었으니 말이다.

모든 일이든 꼼꼼하게 알아보고 진행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가능한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경험했다는 점에서 머피의 법칙만은 아니라 신머피의 법칙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잎이나 가지를 따는 사람들은 절대로 꽃이나 열매를 얻을 수 없다고 한다. 겉으로만 경험하고서는 그 진가를 알수 없으리라... 이 모든 것들을 정통으로 체험했으니 이제 나도 꽃과 열매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앞으로는 되도록 쉽게 얻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2010년은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신머피의 법칙을 발견한 해였다.


태그:#나만의 특종, #법칙, #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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