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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의 한 장면.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의 한 장면.
ⓒ 안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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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가족이란 무엇일까?

네 식구가 다들 멀쩡히 생활하고 있지만 뭔가 늘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열심히 일하고 있고, 아이들 둘 다 컸는데도 왠지 모를 허전함이 있었다. 딸은 다니는 학교가 맘에 안 든다고 '반수'하고 재수하고, 또 휴학하고 편입시험보고 올해 다시 수능 봤으나 맘에 안 드는 성적 나왔다.

아들은 재수했으나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이 안 나와 올해 다시 시도해 보려는 듯하더니 주저앉아서 게임만 하며 군대도 연기하고 올해 수시에 넣었으나 낙방했다. 4식구 모두가 힘들어했다. 나름 열심히 살고자 하는데 일이 다들 잘 풀리질 않으니 크게 즐거울 일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딸아이가 모가족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았다. 이후 가족상담이 필요하다고 해서 남편과 나도 퇴근 후 지친 상태였지만 용산까지 가서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기 전까진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자기 직업엔 충실했지만 경제적인 보탬은 크지 않았고 집안일은 아내인 내 몫이었다. 남편은 내가 부탁하는 일만, 시키니까 한다는 표정이었다. 같이 분담한다는 생각으로 자율적으로 해주길 바랐지만 그렇지 않았다.

결혼한 지 24년... 처음 부부상담을 받다

난 직장일에 육아(물론 아이들이 지금은 다 컸지만)에 집안 살림까지 하면서 지쳤다. 그래서 4식구 중에 제일 힘든 건 나라고 생각했다. 식구들한테 부탁도 해봤고 스트레스를 혼자서 풀기 위해 친구도 만나고, 또 취미생활도 갖고 술에도 취해보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봤다.

남편이 힘들어 보여도 그것은 사업운영 자금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며 모른 척해왔다. '직장일에 집안일까지 하는 나보다 더 힘들기야 하겠어?'라고 생각하며 남편에 대해선 외면했다. 요즘 말하는 가면 부부처럼 각자의 일만 할 뿐 별다른 대화가 없었다.

집에 들어오면 남편은 옷 갈아입고 거실에 나오기 바쁘게 리모컨을 들고 TV를 켰다. 저녁 먹고 TV시청. 4식구가 소파에 앉아서 다같이 TV를 보았다. 대화가 별로 없었다. 말을 안 섞는게 싸우지 않는 비결이자 그나마 마음상하지 않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가끔 예능 프로그램이나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웃는 것 말고는 웃을 일이 없었다. 아이들도 제방에 있다가 관심있는 프로그램만 거실에 나와서 보고는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마치 성을 쌓고 그속에서 각각 따로 사는 느낌이었다.

딸아이가 상담받을 때 부부상담도 받아보면 어떻겠냐는 권유가 있었으나 남편은 회의적이었다. "각자한테 문제가 있는데 상담만 받으면 만병통치약처럼 다 해결이 되겠냐?" "상담선생님이 다 해결해주냐?"면서 우회적으로 싫다는 표현을 했다. 두 사람이 합의해야 될 일이기에 기다렸다. 가끔 남편에게 얘기했다.

"두 아이 잘 키워서 사회에 내보내야 할 것 아니요? 제 밥벌이 하면서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부모가 매일 싸우고 티격태격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저 아이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울 때 부모한테 배운 대로 할 거 아니에요? 두 아이 다 결혼해서 떠나면 두 내외만 살아야 하는데 서로 존중하지 못하고 소 닭 보듯 살기엔 남은 세월이 너무 길지 않아요? 애들 떠나면 우리도 재밌게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럴려면 자신도 잘 모르는 가슴속 깊은 곳에 있는 상처나 두려움을 털어내고 행복하게 살아봅시다."

여름이 다 끝날 무렵에 남편의 마음이 움직였다. 상담을 받아보자고 했다. 이게 서로가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부부문제는 당사자끼리는 아무리 얘기를 해도 듣고 싶은 부분만 듣고, 이해하고 싶은 대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를 의논해도 진전이 없었다.

딸을 상담해주시던 분에게 상담을 받았다. 퇴근 후에 1시간여씩 전철을 타고 상담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1주일에 한 번씩이었다. 1시간 20분에 상담비 12만원씩.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가계에 부담이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앞으로 살 날을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덜 후회스럽게 살려면 그래도 상담을 받아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버럭' '권위' '마초'... 하지만 남편이 변하고 있다

현실에서 부부에게 무엇이 힘든지, 어떤 가정이 되기를 원하는지,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게 바라는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얘기는 남편과 내가 돌아가며 했지만 남편이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난 집밖에 나가면 친한 이들과 털어놓고 얘기하며 조언도 듣고 했지만 남편은 나가서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하진 않은 것 같다. 워낙 자존심이 강해서 남한테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다는 건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걸로 생각했을 것이다.

힘들어도 혼자 삭이고 마누라가 힘들다고 하는 말에는 '세상에 안 힘들게 사는 사람이 누가 있어? 당신만 힘들어?'라는 식으로 생각하며 귀를 닫고 견뎌 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상담을 하면서 약간씩 달라져 가는 모습이 보였다. 상담하시는 분은 남편의 얘기를 듣고 남편의 힘들고 아픈 마음을 잘 읽어 주었다. 남편 자신도 모르는 깊은 바닥에 깔려 있는 마음도 일깨워 주었다. 자신의 감정을 읽을 줄 알아야 남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안다고 했다.

남편의 생각으로는, 밥은 날마다 해서 먹어야 하는데 예전에는 안 그러던 사람이 근래에는 밥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2~3일씩 먹는 것이 불만이었다. 고추장, 된장 담는 것도 싫어하지 않았었는데 요즘엔 안 하려고 하는 것도 불만이라고 했다. 상담 선생님은 대부분의 주부들이 40대 후반 50대가 되면 갱년기가 오고 집안일이 힘에 버거워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나이들면서 그에 따른 신체적 증상이나 심리적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상담 받고 온 날은 저녁 늦게 귀가해 힘들기도 하겠지만 설거지 등의 집안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대화법도 좀더 부드러워졌다. 남편의 달라진 모습을 아이들도 느꼈는지 상담받고 귀가한 날에는 오늘은 뭐에 대해서 얘기했냐고 물으며 관심을 보이곤 했다.

남편은 겉으로는 목소리 크고 강한척하면서 속으로는 엄청 나약했던 것같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강한 것처럼 마초처럼 행동했었던 것 같다. 어디를 가든 아내인 나와 같이 가고자 했고 내가 선약이 있어 못 갈 경우에는 본인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산책을 나갈 때, 등산을 갈 때, 지인들 집에 가는 등 그런 경우는 허다했다.

난, 나랑 동행하려는 것이 마치 나에 대한 간섭 및 구속으로 여겨졌다. 난 더욱 남편을 마음으로부터 밀어내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데 노력했다. 친구들 만나고, 여행 가고, 등산 가고, 가능하면 집에 늦게 들어가고자 했다.

6번째 상담하던 날이던가? 상담선생님은 남편에게 어릴적으로 시간여행을 해보자고 했다. 간단하니 걱정말라며. 눈을 감은 채로 시간을 거슬러 어릴 적에 기억나는 어느날을 떠올려 보라 하셨다.

"어린아이가 보이나요?"
"예."
"무엇을 하고 있나요?"
"문 뒤에 숨어서 동생을 지켜보고 있어요?"
"동생은 뭐하나요?"
"엿을 바꿔오라고 제가 시켰어요. "
"왜 형이 안 가고요."
"동생이 가야 많이 줄 것 같아서요."
"어린 동생을 시키기보다 형이 바꿔다 동생을 먹여야 하는 게 옳은 거 아닌가요?"
"……."
"왜 형은 안 갔을까요?"
"…부끄러워서요."
"왜 부끄러웠나요?"
"모르겠어요."
"형이 가보면 안될까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엿을 바꿔 왔어요."

"당신의 힘겨웠던 삶을 이제야 들여다 봅니다"

아주 간단하고 거짓말같은 체험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시간여행이 정말 가능한 건지 모르겠지만 남편은 그후 변화가 있었다. 자기가 일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잘 받지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돈 꿔준 사람한테 먼저 전화도 하고 아내가 부탁하기 전에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기도 하고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아내한테 많이 의존하면서도 강해보이려 오히려 자기가 더 큰 목소릴 내고 노여워하고 우월한 모습을 고수하려 했던 뒷면에 어린시절의 수줍고 부끄러워 나서지 못하는 어린 소년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 소년은 마음 속 한구석에 성장하지 못한 채로 남아서 그 이후에 여러가지 제약을 했던 것 같다. 늦었지만,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 소년의 모습을 털어내야만 자유로울 것 같았다.

'버럭 남편'의 모습과 식구들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고자 무진 애를 썼던 '권위 남편'의 속마음을 읽고 나니 남편이 새롭게 보였다. 이제야 조금, 아주 조금 남편을 이해할 것 같다. 남편은 나나 아이들이 조금 실수했을 때 다정하게 감싸주기보다 비난하고 버럭 소리질렀다. 그땐 그것이 분하고 서러워서 눈물 흘린 적이 많았다.

남편은 굉장히 강하고 권위적이라고만 생각했다. 여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늘 나보다 강자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이 소리지르고 눈 부릅뜨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내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먼저 사과하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내속을 먼저 다독거렸다.

그러나 이젠 알았다. 상담받고 난 후에 알았다. 당신의 나약한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겉으로 강한 척 했다는 것을. 아들을 강하게 키워보려고 엄한 척 했다는 것을. 당신은 감정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화를 냈다는 것을. 당신도 당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고 억누르기만 하고 살아온 것이 힘들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쉽게 내비치지 않아야 하고 강해야 한다는 이 사회의 고정관념이 당신의 삶을 더 힘들게 했다는 것을 말이다. 

2010년 '나만의 특종'은 부부상담을 받고 남편에게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 것이리라.

"여보 고마워요. 고생했어요. 남에게 속내를 보이는 것이 엄청 힘들었을 텐데 10주에 걸친 긴 시간을 잘 참여해 줘서. 그리고 이제 당신의 감정에 관심을 기울여 봐요. 당신의 눌려 있는 감정을 펼쳐 봐요. 훨씬 자유로워질 거예요."

덧붙이는 글 | 2010, 나만의 특종 응모 기사



태그:#상담, #부부, #가족치료, #가면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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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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