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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미로 즐기는 보리밥 상차림이다.
 별미로 즐기는 보리밥 상차림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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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네 부모형제들은 먹고 사는 게 가장 큰 지상의 과제였다. 1960~70년대의 이야기다.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배고픔보다는 배부른 고통이 더 심하다고 한다. 태산보다 더 높다던 보릿고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다이어트니 웰빙이니 이런 말들을 들으면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진지 드셨어요.' '밥 먹었니!' 하는 인사말을 서로 건네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구수한 보리밥이다.
 구수한 보리밥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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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해마다 5~6월이면 춘궁기였다. 묵은 양식이 다 떨어지고 보리가 미처 여물지 않아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배고픔을 참아야만 했다. 소나무껍질(송기)이나 밀가루 푸때죽으로 입에 풀칠을 하며 그 고비를 넘겨야만 했다. 지금은 다소 낯선 단어가 되었지만 이른바 보릿고개다.

먹을거리가 없었던 보릿고개 시절, 우리 조상들이 오지게도 먹었던 보리밥을 지금의 우리들은 별미로 즐긴다. 순천 상사호 가는 고갯길을 넘다보면 '보릿고개'라는 상호를 쓰는 보리밥집이 있다. 팥칼국수와 기장밥, 보리밥이 맛있는 집이다.

보리밥을 주문하면 커다란 접시에 듬뿍 담긴 4색 나물과 열무쌈, 배추김치, 곰삭은 파김치, 멸치젓갈, 잡채 등으로 상을 차려낸다.

"저쪽에 보리밥쌈장과 돼지고기 셀프코너가 있습니다."

셀프코너에서 돼지고기를 무한정 먹을 수 있다.
 셀프코너에서 돼지고기를 무한정 먹을 수 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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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곗살과 살코기가 적당히 어우러진 돼지고기는 제법 맛있다.
 비곗살과 살코기가 적당히 어우러진 돼지고기는 제법 맛있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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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도 보리밥이지만 이곳의 단연 인기메뉴는 돼지고기 제육볶음이다. 주인장이 안내한 셀프코너에서 돼지고기를 무한정 먹을 수 있다. 비곗살과 살코기가 적당히 어우러진 돼지고기는 제법 맛있다.

4색 나물(고사리, 열무나물, 콩나물, 취나물)과 참기름 고추장에 보리밥을 쓱쓱 비벼내니 이거 별미다.
 4색 나물(고사리, 열무나물, 콩나물, 취나물)과 참기름 고추장에 보리밥을 쓱쓱 비벼내니 이거 별미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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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을 갖가지 나물과 비볐더니 맛이 깔끔하다.
 보리밥을 갖가지 나물과 비볐더니 맛이 깔끔하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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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색 나물(고사리, 열무나물, 콩나물, 취나물)과 참기름, 고추장에 보리밥을 쓱쓱 비벼내니 이거 별미다. 맛이 깔끔하다. 보리밥을 텃밭 하우스에서 직접 생산한 신선한 열무이파리에 쌈을 하면 그 맛이 배가 된다. 

"뭐 부족한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쌈 더 드릴까요?."

수시로 오가며 손님을 배려하는 주인장의 인심도 넉넉하다. 열무이파리에 보리밥이나 돼지고기를 넣은 쌈은 참맛이라고나 할까, 어우러짐이 너무 좋다. 풍성하고 부드러운 열무 잎은 입맛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보리밥을 먹으며 문득 떠오른 시 한편을 소개한다. 동해안 시인으로 불리는 황금찬 원로시인의 <보리고개>다.

분위기 있는 실내 벽의 가을풍경이다.
 분위기 있는 실내 벽의 가을풍경이다.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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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고개

     -황금찬

보리고개 밑에서
아이가 울고 있다.
아이가 흘리는 눈물 속에
할머니가 울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할아버지가 울고 있다.
어머니가 울고 있다.
내가 울고 있다.
소년은 죽은 동생의 마지막
눈물을 생각한다.                             
에베레스트는 아시아의 산이다.
몽불랑은 유럽,
와스카라는 아메리카의 것
아프리카엔 킬리만자로가 있다.                 
이 산들은 거리가 멀다.
우리는 누구도 뼈를 묻지 않았다.
그런데 코리어의 보리고개는 높다
한없이 높아서 많은 사람이 울며 갔다.
─굶으며 넘었다.
얼마나한 사람은 죽어서 못 넘었다.
코리어의 보리고개,
안 넘을 수 없는 운명의 해발 구천 미터
소년은 풀밭에 누웠다.
하늘은 한 알의 보리알,
지금 내 앞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 

덧붙이는 글 | * 황금찬 (黃錦燦, 1918.8.10~ ) 동해안시인으로 불리는 원로시인이다.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보릿고개, #보리밥, #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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