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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가 있었습니다. <쥐라기 공원>이라는 영화였죠. 화석으로만 존재했던 공룡을 스크린으로 살려내 전 세계적으로 9억 달러의 흥행을 올린 이 영화는 공룡이 살던 잃어버린 세계를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충격과도 같았죠. <쥐라기 공원>의 흥행으로 영화계는 물론, 과학계까지 들썩거렸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도 이런 '잃어버린 세계'가 있다는 것, 알고 계신가요? 쥐라기 공원의 공룡들처럼, 이제는 사라져 버렸지만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정선(鄭敾, 1676~1759)의 정확한 사생과 그 필력을 통해 화석보다도 더 생생하게 남아있는 한국의 '잃어버린 세계'가 있으니, 바로 선유봉 입니다.

정선의 그림은 선유도가 양화지구와 분리되기 전에 염창동쪽에서 양화지구를 바라보며 그린 것으로 보인다.
▲ 18세기 선유봉 정선 作 정선의 그림은 선유도가 양화지구와 분리되기 전에 염창동쪽에서 양화지구를 바라보며 그린 것으로 보인다.
ⓒ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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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당시 한국의 명승지를 유람하며 아름다운 산수(山水)를 담아냈던 정선. 그리고 그가 선택한 절경, 신선이 노닐었다는 선유봉은 정선 특유의 준법(皴法 – 동양화에서 산이나 암석 등의 주름을 그리는 화법)과 필력을 통해 한 폭의 그림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힘있게 우뚝 솟은 봉우리와 담백한 필치를 통해 축 늘어진 듯 잘 어우러진 수양버들. 소나무와 우측의 숲은 동양화의 전통기법과 사생에 의한 실경을 적절히 조화시켜 그 상쾌함이 3세기가 지난 지금도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봉우리와 함께 눈에 띄는 금빛 백사장과, 쪽빛 강물은 선유봉이라는 이름을 무색하지 않게 합니다. 실제로 신선들이 봉우리에 술상을 차리고 경치를 벗삼아 바둑이라도 두며 놀았을 것 같은, 선녀들이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 내려왔을 법한 선유봉. 더구나 이 절경이 서울의 한강에 존재했다니! 정말 놀랍기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 아름답던 절경은 현재는 만날 수 없는 '잃어버린 세계'가 되어버렸답니다. 일제시대의 풍파를 거치며 골재 채취를 통해 되어 봉우리가 낮아지고, 60년대 제 2한강대교가 들어서면서 선유봉이 아닌 선유도가 되어 버린 탓이죠. 현재는 '선유도 공원'이 되어 시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주고 있지만, 과거의 영광에 비하면 단지 초라한 개발의 단상일 뿐입니다.

무분별한 개발의 광풍으로 더 이상 정선이 묘사했던 힘있는 봉우리와 축 늘어진 수양버들, 황금을 깔아놓은 듯 한 백사장, 쪽을 풀어놓은 듯 푸르른 선유봉은 이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봉우리에서 노닐었던 신선들은 60년대 밤섬의 주민들처럼 바둑판과 술잔을 양 손에 끼고 하늘나라로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음이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공룡의 DNA를 추출해 현실의 '쥐라기 공원'을 만들 수도 있다고 보도했던 타블로이드 지의 기사처럼, 우리의 '잃어버린 세계'또한 되돌릴 수는 없을까요?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모두가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 처럼, 우리 모두 그 꿈을 꾸고 그것을 현실로 만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임에 분명합니다. 선유봉을 되돌릴 순 없지만, 그 옛날 한강의 절경을 찾는 그 꿈, 함께 꾸어본다면 어떨까요?



태그:#한강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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