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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이야기는 중심점이 현 전라남도 동남부 지역, 옛 낙안군의 치소였던 낙안읍성에 있다. 그 중심점을 시작으로 물 위에 물방울이 떨어져 원형을 이루며 퍼져 나가는 형태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데 중심점의 파장은 강하고 퍼져 나갈수록 옅어진다.

 

그것은 남도라는 지역특성 중에서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한의 역사'라는 주제에 사라진 옛 낙안군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크고 깊다. 현재의 한반도 상황을 그대로 말해주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인물만큼은 그 농도와는 상관없이 옅은 지역이나 진한 지역이나 모두 공평한 색깔로 도드라져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역사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사라진다는 것으로, 그런 의미에서 인물의 태생지는 중요하다. 필자가 살펴보고 있는 이 지역의 인물들을 꼽으라면 김빈길, 김자점, 나철, 서재필, 오태석, 채동선, 한창기, 조정래 등이다.

 

김빈길, 김자점, 조정래 생가는 흩어지고 사라져

 

김빈길은 낙안읍성을 최초로 쌓은 장수다. 그가 태어난 곳은 낙안읍성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옥산(온야) 부근으로, 기록에 의하면 그가 지었다는 정자인 망해당도 옥산 정상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이는 그동안 생가나 정자 복원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결과로 문제는 그로인해 김 장군의 정신마저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왜구의 침략을 맞아 지역과 지역민을 구하기 위해 성을 쌓고 맞섰던 그의 기개까지 유명무실하게 된 점은 아쉽다.

 

김자점은 역모에 휘말려 처형당한 불운한 관료다. 때문에 남아있는 그에 대한 기록은 미흡한 편이다. 하지만 낙안지역에는 그와 관련해 구전으로 내려오는 얘기들이 많이 있다. 김자점과 임경업의 관계도 그것이지만 그의 생가와 관련한 부분도 흥미롭다.

 

지역민들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낙안면 원등마을 앞에 있는 저수지는 김자점의 집터'였다고 믿고 있다. 한때 문화재 도굴꾼들이 저수지 바닥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는 사실도 그것을 방증해 주고 있다.

 

반역을 꾀했기에 집터를 파내고 연못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김자점의 생가, 역사의 기록에서 반역이 어떤 의미인지 불분명하지만 한때 낙안군수로 봉직했던 임경업 장군과 지역을 넘어 국가를 논의했던 장소라 여겨져 더욱 궁금한 김자점의 생가터다.

 

또한, 근 현대 지역인물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소설가 조정래의 생가터는 선암사에 있다. 삼인당 우측 작은 개울가 옆에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 그곳에는 대나무와 녹차, 잡풀 등이 무성하지만 담장이나 주춧돌 등 집터 흔적들은 뚜렷하다.

 

왜 조정래의 생가가 선암사 경내에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하겠지만 당시 그의 선친이 선암사 부 주지였던 점을 상기하면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복원을 한다, 만다하는 소리가 무성했지만 아직 진행된 것은 없다.

 

나철, 서재필, 채동선 생가는 건물만 덩그러니

 

독립운동의 아버지라 불리고 대종교를 중광해 민족정신을 일깨운 인물인 나철(아명 나인영)의 생가는 벌교읍 금곡마을에 있다. 2년 전부터 복원을 시작해 이미 완공을  마쳤지만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어 안타까움이 있다.

 

그런데 이런 형태는 보성군 문덕면에 있는 서재필 생가도 마찬가지며 벌교읍에 있는 민족음악가 채동선의 생가도 대동소이하다. 특히 채동선 생가는 상시 개방이 아닌 문을 닫아두고 필요할 때 열어주는 방식이기에 생가 복원의 의미가 다소 퇴색된 점이 있지만 현장이라는 것 만으로도 방문의 의미는 챙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나마 사람의 온기 느낄 수 있는 오태석, 한창기 생가

 

이 지역에서 그나마 생가가 온전하게 관리되고 있는 곳은 낙안읍성내에 있는 가야금병창의 중시조 오태석 생가와 벌교읍 지곡마을에 있는 한창기 생가를 들 수 있다.

 

오태석 생가는 가야금 병창을 잇고 있는 이들에 의해 작은 공연과 체험까지 벌어지고 있어 가장 활발한 생가 운영이라 할 수 있다. 한창기 생가 또한 친 형수가 기거하기에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깊이 있는 설명도 가능한 곳이다.

 

여행에서 지역인물들 생가를 돌아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 옛 낙안군을 중심으로 살펴 본 지역 인물 8인의 생가 순례는 관광의 정규코스로 다듬어져 있지는 않지만 충분한 의미와 가능성을 갖고 있는 장소이기에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바이크올레꾼,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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