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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권태신 국무총리 실장이 1월 1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브리핑실에서 세종시 발전방안 조감도를 보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권태신 국무총리 실장이 1월 1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브리핑실에서 세종시 발전방안 조감도를 보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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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권태신 국무총리실 실장(총리실장)이 친이 직계 최대모임인 '함께 내일로' 토론회에서 쏟아낸 말이 정치권에 파장을 불러오고 있다.

권 실장은 이날 강연에서 갖가지 화려한 수식어로 세종시 수정안 '반대파'를 비난했다고 한다. "충청권을 나쁘게 만들면서 신뢰를 내세우는 것은 지도자로서 바른 게 아니다"라고 말하며 박근혜 전 대표를 정면 겨냥했다. "세종시는 그 자체가 수도 분할로 50년, 100년 뒤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발언도 나왔다.

압권은 '사회주의' 발언이다. 그는 세종시 원안을 "사회주의 이념을 적용한 도시"라고 했다. 물론 "도시 전문가들이 해 준 말"이라고 슬쩍 발을 빼는 센스를 보여줬지만, 정치권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세종시 수정교(敎)' 목사(정운찬 총리) 밑에서 '전도사'라도 하려면 맹목에 가까운 확신도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권 실장의 '사회주의' 발언은 도가 지나쳤다. 도시 전문가들이 사석에서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할 수는 있어도, 고위공직자가 공개 강연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그의 말 덕분에 세종시 원안을 주장하는 모든 세력은 졸지에 사회주의자가 돼 버렸다. 보수 우파를 자처하는 한나라당 내 친박 의원들은 물론 '원안+알파'를 고집하는 박근혜 전 대표 역시 사회주의자로 낙인이 찍혔다.

권 실장의 노림수가 여기서 그쳤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진짜 목적은 세종시 원안에 대한 비이성적인 혐오감을 불러오는 데 있었다. '사회주의=빨갱이'라는 일부 국민들의 잘못된 감정을 자극해서라도 여론을 돌이켜 보자는 것이다.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시킬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청와대의 생각이 '사회주의 도시'라는 말 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뻔뻔함의 '고수' 권태신, "참여정부 땐 공무원 더 안 할 줄 알고 세종시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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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실장의 발언 때문에 정치권은 화가 났다. 특히 사회주의자가 돼 버린 '친박계'는 뭇매를 때리고 있다. "영혼을 팔아 버린 공무원"(구상찬), "권력에 해바라기하는 공무원"(현기환), "카멜레온도 울고 갈 공무원"(자유선진당 임영호), "맑스와 엥겔스가 웃겠다"(민주당 우상호 대변인)라는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기가 찬 일은 권 실장이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으로 일하면서 행정부처 이전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입안한 도시를 '사회주의 도시' 운운해 버린 셈이다. 그는 3일 강연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행정부처 이전이 끝날 때쯤이면 공무원 안 할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뻔뻔함도 이 정도는 돼야 '고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총리는 권 실장을 감싸고 있다. 정운찬 총리는 4일 오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권 실장의 말은 와전된 것"이라고 옹호해 반발을 자초하고 있다.

권 실장은 이번 일로 자신의 경솔함을 뉘우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뉘우침에도 때가 있는 법, 후회하고 있을 겨를은 없어 보인다. 친박계와 야당의 주장대로 "사과하고, 공직을 떠나는 게" 지금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고위공직자가 '혀'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과거의 교훈이다. 그 교훈 중에 하나를 뽑아 권 실장에게 권한다.

병종구입(病從口入), 화종구출(禍從口出). "병은 입으로 들어가고, 화는 입에서 나온다".


태그:#세종시, #권태신, #정운찬, #사회주의,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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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세종시 수정 파문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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