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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추운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이 맘 때면 누구보다 몸과 마음이 시린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홀로 지내는 어르신들입니다. 이 분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과 몸 누일 방도 필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이야기 나눌 사람입니다. 긴 세월 이어온 그 분들 생엔 한 시대가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우양'(www.wooyang.org)과 함께 그 분들을 찾아나섭니다.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편집자말]
김종예(87) 할머니.
 김종예(87) 할머니.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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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일 서울 마포구 한 식당에 어르신 여섯 분이 모였다. 가장 연장자인 김종예(87) 할머니를 비롯해 성말용(81), 유옥진(77), 홍판순(74), 주삼순(68), 김원용(67) 어르신까지 최근 <오마이뉴스> 지면을 통해 긴 인생을 털어놓으신 분들이다. 원래 여덟 분이 모여야 했지만  박막순(82), 조광식(77) 어르신은 독감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이 자리엔 사회복지법인 <우양> 사회복지사 세 명과 김혜원 시민기자가 함께 했다.

모이는 시간은 오후 4시 30분이었으나 어르신들은 4시10분부터 벌써 도착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나들이라 설레는 표정들이다. 동행한 사회복지사가 "오후 3시 30분까지 복지관에 오시라고 말씀드렸더니 2시 40분에 오셨더라구요. 한참 이야기 나누시다 지금 온 거예요"라고 귀띔한다.

대부분 낯선 어르신들은 서로 나이부터 확인한다. 생각보다 젊다며 깜짝 놀라는가 하면, 얼떨결에 막내가 돼버린 김원용 할아버지는 조용히 미소만 짓는다. 두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무료 미용실에서 예쁘게 머리를 다듬고 온 어르신도 계신다.

한자리에 모인 어르신들..."생각보다 젊구만"

기사 이야기로 말문을 텄다.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아이 셋 딸린 사람에게 시집을 간 유옥진 할머니는 일 하느라 청춘을 잃어버렸다. 배다른 형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17년 간이나 피임약을 먹었으니 참 모진 세월이다. 맞은 편 김종예 할머니는 더하다. 밖으로만 돌던 남편이 갑자기 배다른 일곱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이다.

전처 소생 세 아이를 기른 유옥진 할머니는 소실에게서 낳은 일곱 아이를 키워 낸 김종예 할머니 이야기에 "아이구 저는 명함도 못 내밀겠네요"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사연 없는 이들이 어디 있으랴만 이 곳에 모인 이들의 사연은 그야말로 국가대표급이다. 본인들도 그 사실을 잘 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조금만 힘들면 아이 버리고 도망가는 걸 예사로 하지. 우리처럼 참고는 못 살아요."

성말용(81) 할머니.
 성말용(81) 할머니.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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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젊은 사람한테 우리 이야기하면 멍청하게 살았다 그래요. 하지만 우리 땐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어. 한번 시집가면 죽어도 그 집에 뼈를 묻어야 한다고 배웠거든."

"남들은 한 번 죽는다는데 나는 세 번씩이나 죽었다 왔어."

"나 엄청 억울해. 여덟 키웠는데. 아이구. 연락도 안 돼. 연애 하지 말라고 했다고 연락도 안 해."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어르신들의 고생담. 슬픔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회한'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르신들의 한숨은 깊고도 깊다. 김혜원 시민기자가 위로작전에 나선다.

"어머니들이 있었으니 우리가 살았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우리가 있어요. 우리 어머니도 새끼들 때문에 도망 못 갔다고 하세요."

요즘 젊은 사람들, 우리처럼은 못 살 걸?

'고진감래'라고 막바지에 삶이 펴지면 과거 고통은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그런데 이 분들에게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재개발은 이 분들 삶을 위태롭게 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뉴타운 사업이 시작되면 당장 어디로 갈지 막막한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20년 전부터 한다 한다 말이 나더니 이젠 3-4년 뒤 한다 그래. 걱정이긴 하지만 내일 일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인데 그 때 일을 어찌 알겠어. 그 때 당하면 당하는 대로 살아야지."

"나도 집주인이 나가 주었으면 하는 눈치야. 재개발되면 집주인은 좋겠지만 우리 같이 세사는 사람들은 그 돈(보증금) 갖고 갈 데가 없어. 그 돈 가지고는 이 동네에 방을 얻을 수가 없거든. 우리같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해?" 

유옥진(77) 할머니
 유옥진(77) 할머니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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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말용 할머니는 45년 전, 아무도 살지 않던 기찻길 사이에 터를 잡았다. 신촌선과 용산선이 엇갈리는 지점인 연남동 세모난 모양 빈 땅에 집 없는 사람들이 모여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것이다. 어르신 말에 따르면 당시엔 "먼저 본 사람이 임자"였다고.

바람만 가릴 홑벽에 얇은 함석지붕을 얹은 집은 너무도 허술해 이따금씩 무너지기도 했다. 결국 나물을 팔아 모아 둔 돈으로 수리를 해 지금의 집 모습을 갖추었다. 이웃들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할머니의 집수리.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운 이웃들이지만 서로 돕는 인정만큼은 건너편 높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그것과 비교할 것이 못되는 듯했다. 

이젠 비가 새거나 지붕이 무너질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니 집 적정일랑은 하지 않아도 되나보다 생각했는데 재개발 소식이 들린다. 추가 건축비를 부담할 능력은 되지 않고, 보상을 받고 나가려니 서울에서는 그 돈 가지고 얻을 만한 집이 없다. 지붕이 내려앉아도 벽이 갈라져도 살았지만 재개발이 되면 정말 이집을 떠나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복잡하다.

"몰러, 어디로 갈지. 어디 시골로나 내려가야 하나? (공무원들한테) 이유가 뭐시냐고 물어봐도 대답 안허데."

"내 꿈은 젊은 시절 나물 캐고 약초캐던 산에 가보는 것"

삶이 곤궁하다고 꿈조차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어르신이 문득 "바람 쐬고 싶다"고 말한다. 무슨 말인가 싶어 눈만 '꿈뻑'거리니 "누가 나 데리고 가고 싶은 사람 없나"라며 말을 잇는다.

홍판순(74) 할머니
 홍판순(74) 할머니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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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고 싶으세요?
"젊은 시절 나물 캐고 약초 따던 산에 가고 싶어. 도토리도 해다가 먹고 나물도 해다가 먹고. 내가 참취를 팔아서 50-60만 원도 만들고 그랬어. 자루에 가득 담아 지고 가서 팔았지.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산이, 그 길들이 눈에 선 해. 거기 다시 한 번 가봤으면 하는데... 꿈도 크지?"

할머니가 가고 싶다는 그곳은 경기도 파주. 서울에서 자동차를 타면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지척이지만 모든 것이 여의치 않은 할머니에게는 꿈으로나 꾸어야 할 먼 곳이다.

봄나물 캐러 다니다 뱀에 물린 적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이곳저곳에서 뱀 이야기다.

"뱀에 물린 상처가 아직도 여기 손등에 남아 있잖아. 아픈 중에도 그 놈의 뱀을 팍 때려잡았지. 세브란스병원에 갔더니 뱀을 갖고 오지 그랬냐고 하데. 연구용으로 쓰면 치료비는  공짜라고."

"뱀은 잡아서 바로 소주병에 넣으면 돼."

"나도 애들 어릴 땐 산으로 뱀 잡으러 다녔어. 돈이 된다면 뭐든 했거든. 그땐 뱀 한 마리 잡아오면 3천원도 주고 4천원도 주고 그랬어. 뱀은 7-8월 뱀이 제일 독해. 뱀이 말이야, 사람이 먼저 뱀을 보면 가만 있어. 뱀이 있으면 끝을 구부린 나뭇가지로 머리를 눌러. 그리고 껍질을 벗겨."

김원용(67) 할아버지.
 김원용(67) 할아버지.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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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르신이 뱀에 물린 데는 양귀비가 약이라고 말한다. 이제 뱀 이야기에서 양귀비로 주제가 옮아간다.

"양귀비가 흰 것만 있는 게 아니거든. 흰 게 진짜야. 거기서 아편이 나오거든."

"시골에서는 약이 귀하니 울안에 서너 대씩 키워서 약에 썼어. 그게 배 아프고 설사할 때 특효야."

"요즘엔 화초로 키우는 양귀비도 있던데. 어릴 때 보니 꽃 핀 게 참 예쁘더라구."

한 번 말문 터지면 막을 수 없는 게 어르신들이다. 한강 제방 공사, 자유로 공사, 태릉에 많았던 먹골배 이야기까지 서울 변천사가 흘러나온다. 흑백화면처럼 그 시절이 펼쳐진다.

이야기 주제는 어느새 죽음 문제로 나아간다. 대부분 가족이 있지만 연락이 닿지 않거나 아무 도움 받을 수 없는 처지의 어르신들. 평생을 그러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까지 제 스스로 제 몸을 건사해야 한다.

"나 죽으면 갖다 없애라 했어, 영감 것두"

"나 죽으면 화장해서 갖다 없애라 했어. 영감 묘도 나 죽으면 파서 없애라 그랬어. 개울에다 버리든지 산에 뿌리든지. 나 죽으면 벌초할 사람 없어. (묘 쓰면) 쑥대밭 돼. 나도 (할아버지 산소 가면) 기어 들어가는데 (풀이 울창해서) 안 돼. 지금까지는 내가 댕기면서 했어. 낫하고 짊어지고. 이제 더는 못 해. 다리가 아파서 벌초하러 산에 올라갈 수도 없어."

주삼순(68) 할머니.
 주삼순(68) 할머니.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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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올 봄에 (할아버지) 산소에 갔거든. 윤년이라 묘를 파서 없애 보려고 했는데 그것도 절차가 복잡하데. 없는 게 나아. 나는 자식들한테 해준 것도 없는데, 벌초까지 하라고 하면 자식들 얼마나 고생이여. 그런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끝까지 자식 걱정이다. 묘를 쓰지 않겠다는 것도, 할아버지 묘까지 파서 화장하겠다는 것도 자식들, 손자손녀들 부담 주지 않겠다는 마음에서다. 김혜원 시민기자는 "죽을 때까지 자식들 거두는 마지막 세대가 이 분들이 아닐까"라 했다. 그럴 것 같다.

주삼순 할머니가 앞 접시에 담긴 고기를 손도 안 대고 있다. "손자 생각나서 고기가 안 넘어가느냐" 물었더니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손자라 마음이 더 아리다는 할머니. 손자 이야기에 자랑이 '술술술' 흘러나온다.

이미 고기는 흔하고 흔한 요즘 세상에서 오리고기를 평생 처음 먹어본다는 어르신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 불평등을 엿보게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배가 불러 마음이 느긋해진 어르신 말에 모두들 환하게 웃는다.

"나는 여기서 자꾸 먹고 자고 그러면 좋겄네."

덧붙이는 글 | * 어르신들 친구가 돼주세요.

이 글을 읽고 어르신들에게 답글을 보내주세요. 사회복지법인 우양(www.wooyang.org/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60-1, 02-324-0455)으로 편지나 이메일을 보내주시면 어르신들에게 전해드리겠습니다. 한 끼 식사보다, 하루 잠자리보다 더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후원은 사회복지법인 우양으로 부탁드립니다.



태그:#독거노인, #할아버지,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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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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