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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저희 할아버지처럼 무덤에 흙을 덮어서 흙이 되던가 아님 천사가 되는 것(8세 아들).
죽음이란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이 없어지는 것, 슬픈 것(12세 딸).

어린 나이임에도 아이들이 이렇게 죽음에 대한 정의를 쉽게 내릴 수 있었던건 4년 전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다.

안양에 살고 있는 내가 여름휴가를 맞이해 가족을 데리고 부모님이 계시는 원주로 내려가 바닷가에서 놀다온 뒤 안양으로 다시 돌아온 지 하룻만에 아버지가 쓰러지셨단 어머니의 애써 침착하려는 듯한 떨리는 작는 목소리를 수화기를 통해 듣고 급히 원주에 있는 병원으로 내려갔다. 아버지는 의식도 없이 응급실에 누워계셨다. 뇌출혈로 쓰러지신 것이다.

그렇게 이틀을 더 누워계시다가 끔찍이도 사랑하는 손자들을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나셨다. 향년 64세.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이 건강하셨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꿈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기에 그만큼 가족 모두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남겼다. 며칠동안 장례를 치르고 고향 선산에 무덤을 만드는 것까지 꼬박 지켜본 어린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죽음이란 명사를 마음속에 각인시키게 되었다.

그 이후에 가끔 4살짜리 아들 녀석은 TV를 보거나 블록 쌓기를 하는 중에 갑자기 큰소리로 울기 시작해 놀라 달려가 왜그러느냐 물어보면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채 엄마아빠는 죽으면 안돼요 한다. 아마도 불쑥 할아버지의 죽음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눈물 없이 담담하게 일을 치렀던 나에게도 아버지란 단어는 오랫동안 애써 외면하게 되었다. 혼자 운전을 하면서 아버지 생각이 날 때마다 '아버지'하고 불러보려 했는데 그 짧은 단어가 다 끝나기 전에 목구멍이 콱 막히고 가슴에서 뜨거운게 치밀어 올라 눈물이 주루룩 흐르곤 했다. 또 한 번은 놀이터에서 멀찌감치 아이들 노는 걸 지켜보다가 나뭇가지 하나를 주어들고 땅위에 끄적 대다가 "아버지 사랑해요" 라고 쓰고 나서 한참동안 두 손을 얼굴을 감싼 채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해  무릎에서 얼굴을 들지 못한 적도 있었다.

참 모를 일이다. 아버지 생전에 가끔 뵐 때면 그저 짧은 안부인사만 드리고 아이들을 아버지 품에 안겨드리면 헤어질 때까지 대화 한 번 없다가 올라오는 게 대부분이었고 따로 전화를 드린 적도 또 아버지에게 받은 적도 없는 그냥 그런 무던한 관계라고만 생각 했었는데 이렇게 큰 빈자리를 느낄 줄 몰랐다. 꿈에서  젊어진 아버지의 손을 잡고 명절날 고향 읍내에서 닭을 한 마리 사간다던가 또는 여행중에 백미러를 통해 손주를 무릎에 앉혀놓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 가끔 보이는데 꿈에서 깰 때쯤 이게 꿈인걸 알아 선뜻 눈을 뜨지 못한 채 마냥 누워 있던 적도 있었다.

아버지를 계기로 죽음이란 의미가 이전보단 더 직접적으로 와 닿았고 TV나 언론매체에서 들려주는 많은 사망소식들이 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드라마 속에서 누군가 죽어 가족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찔끔거려 누가 볼까 창피해 혼난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쓰러지시기 전날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들을 결국 3년이 지나서야 보게 되었다. 무서워하는 손자를 안고 바닷속에서 활짝 웃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어쩌면 아버지 당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게 마지막까지 손자들과 행복하게 지내시다가 큰 고통 없이 훌쩍 이 세상을 떠난게 해피엔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로 아버지가 부럽기까지 했다.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슬픔으로 남은 것 같다.

평소 메모하는 습관이 없는 내가 메모 해 둘 정도로 올해 기억해야 할 많은 죽음들이 있었다. 노환으로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최근 위암으로 죽은 영화배우 장진영씨 그리고 히말라야 어느 높은 산에서 춥고 외롭게 생을 마감한 등산가 고미영 대장, 독도 사랑을 용기있게 몸소 실천했던 조오련 전 수영선수 등 많은 국민들한테 사랑받던 분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고, 영화배우 장자연씨나 팝황제 마이클 잭슨처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죽음도 있었지만 나에게 참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두 명의 죽음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풀빵엄마 최정미씨. 대통령 할아버지라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가르쳐 주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끝도 없는 절망감을 안겨주었고, 아이들을 위해 그토록 살고자 했던 최정미씨의 죽음은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 두 명의 죽음은 내 가슴속에 생채기가 되어 피가 흐르는 아픔을 주었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는 이 명제는 진리다. 이 진리를 망각하지 않고 살아감으로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역설적으로 죽음이 있기에 나와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의 가치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에 원하는건 부와 명예와 권력을 드높이는 게 아니라 행복이다. 작년에 우리나라에서만 1만2천 명이 자살을 하였고 전세계적으로 매년 100만 명이 자살을 한다. 참으로 끔찍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자살을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가족간의 불화라 한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가끔 죽음을 인식함으로써 살아있음을 감사하고, 사람들과 더불어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기사공모]'죽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 ' 응모 글



태그:#죽음, #아버지, #자살, #기사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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