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동환씨, 그거 모닝 맞아요?"

점심을 먹고 살짝 나른한 시각. 갑자기 뜬금없이 오마이뉴스 편집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점심인데 아침이냐니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습니다.

"김동환씨가 올린 엄지뉴스에 댓글이 많이 달렸어요. 확인해주세요."

아. 엄지뉴스. 그러고 보니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제가 사는 동네의 풍경을 찍어 전송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웬 경차 한 대가 흙탕물 속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보고 무심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지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화끈하게' 비 내리는 파주의 풍경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는 가사는 삶의 진실 중 한 부분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간만에 비가 아주 많이 내렸고, 저는 노래 가사처럼 귀에 꽂힌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정류장에서 바들바들 떨면서 오매불망 버스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옷을 입고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아직 우리 동네를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벌써 '쫄딱' 젖었습니다. 골라온 우산은 하필이면 살이 하나 부러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군데군데 물에 잠긴 도로를 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집착을 버릴 때 비로소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던가요. 7월 9일, 파주에 강수량 150mm. 포기하면 편합니다. 그날은 그렇게 '쫄딱' 젖을 만한 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때였습니다. 도로 건너편에 흙탕물 사이로 골반을 드러내고 있는 흰색 경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희 동네는 새로 아파트를 많이 짓고 있어서 거기서 나온 토사 때문에 비가 많이 오면 금방 물 웅덩이가 생기곤 합니다. 통행자들은 당연히 불편해하지요. 순간, '옳다구나' 싶었습니다.

'그래. 내가 너를 통해 우리 동네를 구원하리라.'

☞ 엄지뉴스 바로가기 : 물에 잠긴 '모닝'... 저걸 어쩌나

사진을 찍고 전송을 하려는데 각도상 이 경차의 차종이 분명치 않았습니다. 경차임은 분명한데 뒷모습을 보니 마티즈는 아닙니다. 차종이 뭘까 하는 사이에 어디선가 견인차가 나타났습니다. 견인을 하면 뒷면이 보일 테니 차종을 알 수 있습니다. 견인차의 빨간 램프가 마치 하늘의 계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 너희 동네의 구원을 허락하노라.'

견인차가 흙탕물 속의 흰색 차량을 견인하고 있다
 견인차가 흙탕물 속의 흰색 차량을 견인하고 있다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흰색 차가 견인되는 모습을 한 장 더 찍었습니다. 정면으로 뒷면을 드러낸 흰색 차의 이름. 맨 앞에 알파벳 M이 눈에 띕니다. 마티즈가 아닌데 M으로 시작하는 경차. 모닝입니다. 엄지뉴스로는 조금 더 불쌍해 보이는 앞장을 보냈습니다. 저의 엄지뉴스는 그렇게 완성되었습니다.

모닝이냐 카니발이냐

"댓글이 많이 달렸다"는 편집부의 전언. 동네를 구하고자 하는 저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걸까요.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클릭한 제 엄지뉴스에서는 엉뚱한 '모닝 진위논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흰색 차는 모닝이 아니라 카니발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현장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에 담담하게 댓글을 달았습니다.

"사진 찍은 사람인데요. 물에 잠겨 있는 하얀 차 모닝 맞아요. 제가 사진 찍고 나서 견인차가 와서 견인해갔는데 차 뒤에 모닝이라고 써있었거든요... 제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카니발더러 모닝이라고 하겠어요..."

제가 해명을 하자 제 엄지뉴스에서 더 이상 차종의 진위에 대해 지적하시는 분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필귀정, 일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습니다. 메신저로 엄지뉴스 주소를 알려줬던 후배에게서 이틀 후 뒤늦게 연락이 온 것입니다.

"형. 그거 모닝 아냐. 내 친구가 카니발 타는데, 그거 모닝 아니고 카니발이래."

카니발과 모닝. 왼쪽이 카니발. 오른쪽이 모닝이다.
 카니발과 모닝. 왼쪽이 카니발. 오른쪽이 모닝이다.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친절하게 모닝과 카니발의 뒷면 사진을 첨부해 보낸 후배. 사진을 놓고 대조해보니 확실히 모닝의 뒷태는 아닙니다. 그러나 카니발이라 하기엔 차가 너무 짧습니다. 그 차가 모닝이 아니었다면 제가 본 M으로 시작하는 차명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머릿속에서는 사이렌이 울려대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냥 비 오면 물 고이는 우리 동네를 고발하고 싶었을 뿐이고, 사람들은 차종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고.

고심 끝에 두 차를 만든 회사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고 사연을 올렸습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게 대체 무슨 차인지 꼭 알아야 합니다.

자동차회사에 문의한 결과
 자동차회사에 문의한 결과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답장으로 온 메일을 읽는 순간, 그룹 'flower'의 히트곡 가사가 떠올랐습니다.

"여기까진가요~"

아파트 건설현장 토사관리, 안 될까요?

제가 사는 파주시는 연평균 강수량이 1100㎜ 내외인 다우지역입니다. 특히 1996년, 1998년, 1999년에 있었던 대홍수로 한참 동안 '경기 북부의 대표적인 수해지역'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던 적도 있습니다. 현재는 꾸준한 치수사업으로 수해 피해액이 매년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파주에 우후죽순 솟아나는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토사 관리에 조금만 더 신경 써 준다면 언제나 비 걱정 없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도 차종을 구별하는 공부에 조금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태그:#엄지짱, #모닝, #카니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