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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산골 아이들
- 사진ㆍ글 : 함성호
- 펴낸곳 : 눈빛 (2007.5.5.)
- 책값 : 15000원

 (1) 어제 우리 땅 아이들 삶자락 담은 사진

겉그림
 겉그림
ⓒ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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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세계는 어른의 고향이다"라는 작은 말이 붙어 있는 사진책 《산골 아이들》은 1993년에 처음 나왔습니다. 그러나 오래오래 목숨을 잇지 못하고 조용히 새책방 책시렁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헌책방에도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열 해를 훌쩍 넘긴 2007년에 새 모습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나라안에서 나오는 여느 사진책과 마찬가지로 《산골 아이들》 또한 제대로 사랑을 못 받고 조용히 사라졌습니다만, 꾸준히 찾는 '사진 사랑이' 힘과 출판사 뜻이 모여 새 옷을 입었는데, 새 옷을 입은 사진책 《산골 아이들》은 앞으로 얼마나 목숨줄을 이을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첫 쇄 찍기로 그칠는지, 한 번쯤 거듭 찍으며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는지.

.. 그랬다. 사진 속 아이들에게 우리들 세대들에게도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았고, 모두가 이웃'이었다. 봄꽃이 산야를 물들이고 보리가 아이들 키만큼 자라면, 가슴 설레게 하는 그 무엇 때문에 산과 들을 헤집고 다녔던 기억들을 가지고 있지 아니한가! 어른들에겐 고향의 따뜻함을, 아이들에겐 알지 못했던 어른들의 또 다른 어린 시절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  (찍은이 맺음말/156쪽)

저는 처음 나왔을 때에는 장만하지 못했습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며 바지런히 훑어보는데, 다른 사진책은 하나하나 만나게 되어도 《산골 아이들》만은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출판사에 연락을 해도 창고에 반품으로 들어온 헌책조차 없다고 했습니다. 만남줄이 닿지 못하는가 하는 아쉬움과, 언제쯤 다시 빛을 볼까 하는 기다림으로 지칠 무렵 드디어 새로운 판을 만나게 되었고,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판을 장만하여 우리 집 책꽂이에 고이 모셔 놓은 지도 어느새 이태.

그동안 사진책 《산골 아이들》은 새로운 '사진 사랑이'를 꾸준히 만나게 되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이 사진책에 담긴 열매를 받아먹는 사람이 조금이나마 늘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쟁이 함성호 님이 산골마을 아이들 삶을 좇으면서 사진으로 하나하나 담아 놓은 땀방울을 느낀 분이 생겨났을는지 궁금합니다.

속 사진 1
 속 사진 1
ⓒ 함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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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놀이. 인원도 모자라고 규칙도 엉성하지만 우린 실랑이가 없습니다 ..  (41쪽)

때때로 사진을 들추면서, 도서관 나들이를 오신 분한테 넌지시 구경시켜 드리면서, '산골 아이들'이란 한 해가 다르게 자취를 감추는 우리 모습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그러나, 산골 아이들만 우리 둘레에서 자취를 감춘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도시 아이들' 또한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시골에서는 산골 아이와 함께 '논두렁 아이들'과 '밭두렁 아이들'과 '바닷가 아이들'이 자취를 감추고, 도시에서는 '골목길 아이들'이 자취를 감춥니다. 이러는 동안 '아파트 아이들'이 새로 생겨나는데,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틈틈이 잠깐잠깐 인라인이나 자전거를 끄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여도, 아파트마자 하나쯤은 마련된 모래밭 놀이터에서 만나는 일마저 마땅하지 않습니다.

골목마실을 하면서 자전거 놀이를 하는 아이를 곧잘 스치곤 하지만, 맨손으로 맨땅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노는 아이를 마주치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가끔가끔 스쳐 지나가게 되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진 한 장 찍어 볼까?' 하고 생각하지만, 사진기는 어깨에 둘러멘 그대로 가만히 더 바라보다가 지나갑니다.

사진 한 장에 박아 놓고 오늘 이 자리 골목길 아이들 놀이를 두루두루 나누거나 남길 수도 있겠지만, 제 눈과 마음과 가슴에 아이들 매무새를 새겨 놓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설피 아이들 앞에서 사진기를 들이대면서 아이들이 노는 데에 헤살을 놓고 싶지도 않습니다. 옆동네 아이들이니 같은 동네 이웃으로 여기면서 사진을 찍어도 괜찮다고 여겨도 되지만, 아직 이 아이들과 저는 서로 이름을 모릅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느 동 어느 집에서 사는지 어렴풋이 알기는 해도 또렷이는 모를 뿐더러, 아이들은 제가 어느 동 어느 집에서 사는지 아직 모르기도 하고, 낯선 사람입니다. 잽싸게 사진기를 들어 후딱 찍어서 멋진 사진 하나 얻어낼 수 있는 한편, 아이들한테 말을 걸고 나서 웃는 모습을 브이 그려 가며 찍을 수 있기는 한데, 이렇게 해서까지 구태여 '골목길 아이들'을 담아야 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아니, 이렇게까지 할 까닭은 없어요.

먼저, 사진을 찍는 저 스스로 흐뭇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애써 '잘 찍은' 사진이 나올 수 있어도, 그저 잘 찍은 사진일 뿐, 제 삶과 아이들 삶이 묻어난 사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속 사진 2.
 속 사진 2.
ⓒ 함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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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청소를 합니다. 오늘 학교 공부가 모두 끝났습니다 ..  (50쪽)

사진책 《산골 아이들》을 들여다보면, 사진쟁이 함성호 님은 사진으로 아이들한테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서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 한 걸음은 섣불리 '아이들을 사진감으로 담아내려는 몸짓'이 아님을 느낍니다. 다음 두 걸음은 빨리빨리 '곧 사라질 모습을 사진으로 적바림하려는 손놀림'이 아님을 느낍니다.

그저 그곳에 있어서 좋은 아이들이었기에 차분히 기다린 끝에 사진기를 들었다고 느낍니다. 당신 스스로 '산골 아이들'과 같은 어린 날을 보낸 기쁨과 웃음이 있었기에, 이 기쁨과 웃음을 고스란히 '어른이 된 함성호가 내 어릴 때와 마찬가지인 아이'를 '거울로 내 모습 들여다보듯' 담았다고 느낍니다.

사진마다 군더더기가 없고, 억지스러움이 없습니다. 물렁물렁 비계가 없고, 어설픈 끼워맞춤이 없습니다. 바라보는 그대로 좋고, 덮었다가 나중에 또 들추는 재미가 있습니다.

.. 감자꽃이 피면 아이들도 감자꽃이 됩니다 ..  (77쪽)

함성호 님은 사진마다 한 마디씩 이야기를 붙입니다. 사진과 함께 사진말 한 마디로, 당신 스스로 '당신 눈에 들어와 당신 사진에서 싱그러이 살아나는' 아이들을 얼마나 애틋하게 여기며 좋아하는지를 느끼게 합니다. 사진 하나로도 좋고, 사진말 한 마디로 한결 즐겁기도 한 사진놀이를 펼칩니다. 아이들은 산골마을에서 동무들과 어울려 놀고, 함성호 님은 아이들 곁에서 사진기를 들면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사진놀이를 즐깁니다.

 (2) 오늘 이 땅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그렇지만, 사진책 《산골 아이들》은 몇 대목에서 아쉽다고 느껴집니다. 다시 살아나 주어 몹시 반갑고, 다시 살아나 준 일만으로도 반갑습니다만, 어딘가 살짝 빠져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처음 《산골 아이들》을 인천 인현동 〈대한서림〉에서 사들며 두근거리던 마음이, 겉싸개 비닐을 뜯어 한 장 두 장 넘기는 사이 가늘게 한숨으로 바뀌었고, 이태에 걸쳐 제 책꽂이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어딘가 빠져 있다는 느낌은 들지만 종잡을 수는 없었고. 어쩌면, 너무 크게 바랐다거나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고. 그러면 기다릴까? 책꽂이에 고이 꽂아 두고 날마다 바라보면서 이 사진책에서 어딘가 아쉽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스며들 때까지 기다릴까?

속 사진 3.
 속 사진 3.
ⓒ 함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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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걷이에 엄마의 손길이 바쁩니다. 서툰 낫질로 일손을 돕습니다. 가을해는 짧기만 합니다 ..  (125쪽)

틈틈이 다시 들추던 때와 사진벗한테 이 책을 보여줄 때 얼핏설핏, 사진쟁이 함성호 님이 붙인 사진말 가운데 어울리지 않다 싶은 글월이 꽤 보였습니다. 더욱이, 산골 아이가 '서툰 낫질'이라고 적은 대목은 얄딱구리하다고까지 느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일 하는 어버이가 키우는 아이가 낫질이 서툴다고? 그럴 수 있나? 때로는 한두 아이가 서툴 수 있을는지 몰라도, 산골 아이가 낫질이 서툴다고? 낫질 서툰 산골 아이라면 그 자리에서 엄마나 아빠한테 꿀밤을 맞든 욕바가지를 먹든 하면서 눈물이 글썽이는 가운데 서툰 낫질이 익숙한 낫질이 되도록 꾸지람을 먹지 않았을는지?

사진쟁이 함성호 님은 아이들 사진을 찍는 동안 스스로 시인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사진마다 한두 마디씩 짤막하게 시를 쓰면서 당신 사진을 즐거워 하고 기꺼워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너무 혼자서만 즐거워 하고 기꺼워 한 나머지 '사진을 찍으며 어린이 눈높이로 맞추던' 눈길이 '글을 붙이며 어른 생각으로 올라가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내려다보는 눈길로, 마냥 귀엽게만 보는 눈매로, 그저 하늘나라 사람으로 구경하는 눈썰미로.

.. 하루 한두 번 오는 마을버스. 아무리 기다려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어쩌다 타 보는 마을버스입니다 ..  (139쪽)

우리 삶은 줄타기와 같다고 이야기하는 분을 곧잘 만납니다. 웃음과 눈물은 종이 한 장 사이만큼만 벌어져 있다거나, 뒤집으면 서로 똑같다고도 합니다.

잘 찍은 사진과 잘 못 찍은 사진도 이와 같다 할 수 있습니다. 가슴을 울리는 사진과 가슴에 다가오지 못하는 사진도 이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함성호 님 사진책 《산골 아이들》은 '눈물겹도록 반갑고 가슴 저리는 사진'으로 이루어진 가운데 '철없는 겉멋에 휩싸인 사진'이 곳곳에 끼어들지 않았느냐고 느낍니다.

2007년에 새판이 나오게 되면서, 2000년대에 산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발자취를 한두 장이라도 함께 담지 못한 아쉬움도 이런 데에서 비롯하지 않느냐고 느낍니다. 산골마을 작은 학교가 사라졌다면 사라진 자취라도, 아직까지 꿋꿋하게 남은 작은 학교가 있다면 꿋꿋하게 살아남은 자취를 다문 한 장으로라도 담아내어 같이 나누었어야 하지 않느냐고 느낍니다.

도시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은 으레 인라인이나 자전거를 타고 싱싱 달리는 놀이 아니고는 즐길 놀이가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놀 틈도 없지만, 차가 너무 많아서 놀 자리도 없으니까요.
 도시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은 으레 인라인이나 자전거를 타고 싱싱 달리는 놀이 아니고는 즐길 놀이가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놀 틈도 없지만, 차가 너무 많아서 놀 자리도 없으니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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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산골 아이들》은 완성품이 아닙니다. 기성품도 아닙니다. 사진에는 '완성품'이란 없고 '기성품' 또한 있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밟아 나가면서 언제나 새롭게 닦아나가는 사진만이 있습니다. 자꾸자꾸 뒷걸음을 치면서 '옛날 모습 담은 아련한 사진'으로 이름값 팔아먹는 수많은 어르신이 주름잡는 한국 사진밭이라고는 하나, 《산골 아이들》과 같은 사진책은 '지난 세월에는 산골마을 아이요, 오늘 삶터에는 도시에서 사뭇 다르게 있는 아이요' 하는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새 길을 잇는 사진밭을 일구는 좋은 거름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산골 아이들 -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의 고향이다, 함성호 사진집

함성호 지음, 눈빛(2007)


태그:#사진책, #사진, #산골 아이들, #어린이,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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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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