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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삼군 사관학교의 통합을 국방부에 강력히 요구했다고 한다. 여론에 의해서 결정할 사안이 아님은 물론,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방현안도 아닌데 뜬금없이 발표되었다. 너무나 생뚱맞아서인지 다른 신문들은 조용한데 촛불 시위에 유난히 부정적이었고 용산참사의 핵심 내용 보도에는 입 다물어 온 특정신문이 대서특필했다.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 전문적으로 연구한 결론을 가지고서 추진하면 될 터인데 무슨 대단한 결단이라도 내린 듯 불쑥 내민 것일까? 다른 통수권자들이 하지 못했던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싶어서일까? 씁쓸하다.

혹시나 국방부가 '군내 불온서적 반입 금지'라는 시대착오적 코미디적인 결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군법무관들을 파면이라는 강력징계 조치의 무리수를 자행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쏠리게 하기 위해 잔재주를 부린 것은 아닌지? 정부에 대한 신뢰가 하도 바닥인지라 별별 의심을 하게 된다.

사실 삼군사관학교 통합에 대해서는 역대 정권 내부에서도 수차례 거론된 바 있다. 그러나 군대에 대해서 많이 안다고 자부하던 서슬 퍼런 독재정권의 최고 통수권 수준에서 "그건 아니야!"란 한마디로 결론난 내용이다.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었기에 무관심했는데 세심한 검토도 없이 막무가내 밀어붙이려는 현실을 보면서 비록 무지막지 독재 권력이었지만 순수 군대문제에 대해서만은 합리적이었다는 생각이다. 안보문제는 독재냐 민주냐, 보수냐 진보냐와 상관없는 국가중대사임을 새삼 실감한다.

'무지하면 용감하다'더니 이명박 정부의 고위층 중에는 정상적으로 군 복무를 마치지 않은 분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실용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인지 국가 경영의 핵심과제인 안보 문제에 대해 너무나 신중성이 결여되어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삼군 사관학교 통합 문제를 하필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챙기고 있는 지부터가 문제다. 혹시나 롯데 재벌의 고층빌딩 신축을 허가코자했던 그들의 의지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공군 출신들에 대해 괘씸죄의 본때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깔린 것은 아닌지 꺼림직하다.

국방체제와 간부양성체계는 불가분의 관계다. 우리 군은 육·해·공군으로 분류된 군종(軍種)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를 기준으로 무기체계와 군 구조 발전, 그리고 인사관리 등 군사력 건설과 운영이 정착된 지 오래다. 이에 따라 간부양성 체계는 육·해·공군으로 분리하여 전문성 있게 발전 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군대상식이다. 특히 공군력과 해군력이 중시되는 미래 전에 대비키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심지어 육군 내에서도 보병·포병·공병·통신 등 병과별로 학교가 따로 설치되어 있는데 각 군 별로 사관학교가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기왕에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는 미국 등 선진국의 군사제도를 우리 것으로 소화하여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뚱딴지같이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합치겠다니 이것도 잃어버린 10년 탓인가? 흔히 일본 자위대의 통합군 제도를 예로 드는데 사실 자위대는 평화헌법에 의해 아직 정상적인 군대라 할 수 없다.

통합을 함으로서 각 군별 이기주의를 타파하고 삼군 협동의식을 증진한다는 설명을 늘어놓고 있는데 이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구별 못 하는 발상이랄 수 있다. 고도로 정밀화된 첨단무기를 활용하는 현재와 미래의 전쟁에서 각 군은 군 나름의 개인주의적 특성의 다양성과 창의력을 개발하여 전문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통합하여 함께 교육 받음으로서 협동의식이 생긴다 함은 육해공군의 합동 및 연합작전을 동기생끼리의 좌담회 수준으로 착각하는 유치한 생각이다. 전쟁에서는 어떤 감정에도 흔들리지 않는 가장 냉철한 이성적 판단의 결행이 요구된다. 현재의 간부양성 체제를 그대로 두고도 얼마든지 상호 협력적 교육이 가능하다. 지금도 부분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3군의 균형발전에 있어서 여러 문제점이 노정되고 있는 상황인데 사관학교까지 통합하게 되면 우리나라 조직문화의 특성상 숫자 많은 군 쪽으로의 쏠림현상이 더 심화되어 해공군 간부들의 자부심과 사기가 저하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필승의 강군 육성을 위해서는 간부들이 강해야 하며 간부가 강하다는 것은 간부들의 정신이 강하다는 뜻으로서 이는 바로 '자부심'이 강하다는 의미다.

이에 삼군사관학교 통합이 간부들의 자부심을 높이는데 유리할 것인지? 아닌지가 판단의 핵심 기준이 되어야한다. 각 군은 군마다 고유의 역사와 전통이 있고 각기 세계 공통 특유의 자랑스러움과 멋을 지니고 있어 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이런 육·해·공군의 각기 다른 문화와 전통을 소중히 여겨 이를 발흥 촉구함으로써 자부심을 고취함이 바로 간부양성과정 훈육의 중점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군의 간부양성제도의 발전은 삼군사관학교를 통합하는데 있지 않다. 친일 세력들과 독재 권력에 의해 민족적 자존심을 없이하도록 만들어 놓은 훈육의 내용을 개혁하여 정상화함이 급선무다. 생도들의 가슴 속에 불타는 민족적 자부심을 일깨움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군인은 유사시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야하는 존재다. 만약 조국과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면 어떻게 나의 생명을 기꺼이 던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군은 친일독재 세력들에 의해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항일 독립전쟁의 부분을 송두리 삭제 당했고 오로지 적대적 냉전의식으로만 세뇌시켜 지금에 이르렀다. 그 결과 진정한 민족적 자부심이 실종되어진 상태다.

비록 사관학교에서는 지금까지 민족혼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자부심 고양의 훈육이 없어왔지만 육해공군 각 군은 나름대로 자기 군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해 왔다. 삼군사관학교를 통합함으로서 이런 정신교육마저 해체하여 그나마 남은 간부들의 자존심과 사기를 떨어뜨리는 우를 범할 것인가?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을 당부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프레시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각군의 전문성, #민족적 자부심, #육군독식, #해공군 간부사기저하, #미래의 전쟁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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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을 부하인권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왔음. 만84세에 귀촌하여 자연인으로 살면서 인생을 마무리 해 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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