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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주말인데 하루종일 잠만 자면 어떻게 해? 빨리  나가서 놀다와"

"엄마, 집에 있는 게 제일 좋아. 그냥 놔둬" "안 돼 얼른 일어나."

"알았어요. 알았어. 일어날게. 그런데 다음 주부터는 진짜 놀다 늦게 들어올게" 한다.

 

 "그냥 늦으면 안 돼 여자 친구하고 놀다가 늦게 들어와야 해" "엄마 우리 회사 요즘 초비상이에요. 데이트 할 정신이 없어요. 그리고 데이트 한 번 하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데" 한다.

 

최하 오만원~십만원은 든다고 한다. 수입은 줄어들었는데 모든 물가는 올랐으니 십만원도 쓸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달에 3~4번만 데이트를 한다 해도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아들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우선 만나서 차 마시고, 저녁 먹고, 영화구경, 맥주 한잔 등등 하다보면 10만원도 많지는 않겠다 싶다. 거기에 특별한 날에는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한다면 지출은 더 커질 수밖에.

 

월급이 삭감되기 전에는 주말이면 너무 늦게  들어와 걱정을 했는데 요즘은 아예 외출도 안 하고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그런 것이 습관이 될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들이 다니는 회사에도 찾아온 불경기

 

아들은 반도체회사에 다니고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바쁘게 돌아가던 회사였다. 사람이 한치 앞일을 모른다고 하더니만. 그땐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다. 아들의 회사도 불경기를 피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지난 연말에는 10일간의 휴가를 주더니 1월에는 한 달에 두주는 쉬고 두주는 근무하는 순환근무제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니 자연히 월급이 삭감될 수밖에. 2월에는 600명 정도 정리해고가 되었고 3월에도 새로운 계획이 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아들아이는 2월 초에 다리의 인대가 끊어져 뼈 속에 링을 박고 인대를 이어주는 수술까지 했지만 마음 편하게 있을 수만 없어서 10일 만에 다시 출근을 해야 했다. 아들의 말대로 회사가 초비상이라 그러했으리라.  지금도 목발을 짚고 다니고 있고, 앞으로도 10일 정도는 목발을 더 짚고 다녀야할 형편이다.

 

아들의 나이가 올해 32살. 지금부터 데이트를 해야 마음에 맞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할 수 있는 나이이다. 지난 2일 큰손자의 입학식을 보다가 문득 아들아이는 언제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고, 이만큼 자라서 입학식 하는 것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충 따져 보았다.

 

올해 결혼을 해서 내년에 아기를 낳는다 해도 내가 60대 후반에 들어서야 겨우 볼 수 있게 된다. 남편은 70살도 넘어서. 내가 아들아이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가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아기를 낳아야 한번이라도 더 안아주지"하고 덧붙였다.  아들은 "엄마 걱정 마. 어쨌든 35살은 안 넘기고 갈테니깐요. 그때 가면 경기가 풀리겠지" 한다.

 

얼마 전 조카 결혼식이  있었다. 그 아이 결혼식 비용이 아파트 얻어준 것까지 1억2500만원이나  들어갔으니 웬만해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하긴 아들이 지금 결혼을 한다고 해도 나도 걱정이다. 그러니 당사자는 내심 얼마나 걱정이 될까? 경기가 좋아야 대출을 받아서 결혼 비용으로도 쓸 수가 있지 않겠는가?

 

난 "사귀는 여자 친구는 있긴 있는 거야?" "요즘 벌지도 못하고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만나면 돈만 쓰니깐  다 정리했어요" 한다. "불경기라고 여자 친구도 못 만나니? 그중에 혹시 알아 네 짝이 있을지? 앞으로 부지런히 소개팅해서  올 해 안으로 여친을 집에 꼭 데리고 와" 했다.

 

아들은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올해 안으로? 글쎄 그건 내가 어떻게 해볼 수도 있을 것도 같고" 한다. 만약 그러지 않으면 내가 중매한다고 하니 "아이고 우리 엄마야!  그럼 집에 안 들어온다" 하며 숨을 몰아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이 결혼이 결코 늦은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의 이름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불경기에 취업 못한 친구들, 결혼은 엄두도 못내

 

하기사 아들이 친하게 지내는 친구 8명 중에 두 명만 결혼을 했다. 결혼을 안 했는지, 못했는지, 어쨌든 친구들 중에는 임용고시에 한 번 떨어진 친구(자기 적성에 맞는 진로를 늦게 찾았기에),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아 다시 직장을 다시 구하고 있는 친구, 이것저것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친구,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 등이 남아있다.

 

아들아이의 생각은 그렇지만 지금 연애중이라면 이렇게 걱정은 하지 않을 텐데. 사귀던 여자 친구도 정리를 했다니 언제나 마음에 맞는 여자 친구가 생길는지.

 

그 나이 먹도록 결혼 안한 아이는 아들아이의 친구뿐 아니라 내 친구 아들들도  제법 있다. 그런데 그중에는 몇년째 취업을  못한 아들을 둔 친구가 큰 걱정을 하고 있다. 그 친구는 아예 결혼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 직장도 없는데 결혼까지 하면 그 뒷바라지도 두말할 것 없이 자신의 몫이라고 하면서 땅이 꺼져라 한숨 쉬곤 한다. 

 

그렇지 않아도 사귀는 여자가 있는 눈치인데 결혼시켜달라는 말이 나올까봐 겁이 난다고 했다.  이제 겨우 아이들 뒷바라지 끝났나 했는데 며느리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하다고. 그 부분도 이해가 간다. 

 

요즘 청년실업을 비롯해서 실업의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 3월 현재 실업자수가 85만명이 넘었고  경기침체로 올해도 50만건의 일자리가 줄어들 전망이라고 한다.  아마 지금 이 시간에도 실업자가 생기고 있을 것이다.

 

정부에서는 일자리 나누기, 인턴사원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기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내놓고는 있지만 실제로 얼마만큼 도움이 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 자체가 없으니 학교 졸업을 미루는 학생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유학 간 친구 아들은 한국에 들어와서 해먹고 살 일이 막막해서 못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결혼, 돈벌이가 없으니 언감생심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내가 사는 아파트나 딸아이가 사는 아파트에도 대낮에 세워진 자동차가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고유가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직장을 잃은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친구 중에는 시화공단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가 있다. 공단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입구는 아침저녁, 출퇴근시간이 되면 언제나 자동차의 물결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요즘은 자동차 밀리는 것을 보기 힘들 정도이고 보편적으로 쭉쭉 잘 빠지는 편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낮에는 한참 일 할 나이의 남자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일을 해놓고도 돈도 제때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당장 생활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몇년 전부터 결혼에 관심이 없는 젊은 남녀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거기에  이렇게 경기가 안 좋으니 결혼은 꿈도 못 꾸고 있을 것이 뻔한 일일 것이다. 취업을 해야 돈을 벌어 저축도 하고 미래에 대한 꿈을 설계도 해볼 테니 말이다.

 

결혼이란 성인이 된 남녀들이 만나 자신들의 힘으로 가정을 꾸려나가는 일이다. 하지만 돈벌이가 없어 목구멍 풀칠하기도 바쁜  형편이니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취업을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여성도 마찬가지이다. 힘들게 대학까지 나와 취업도 해보지도 못한채 결혼한다고 부모님한테 또 다시 손을 벌릴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불경기가 계속된다면 미혼들이 너무 많아 새로운 문제로 대두 될지도  모를 일이다.  결혼한 사람들도 아기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세상인데  결혼 자체를  하는 사람들이 줄어 들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루빨리 경기가 회복되어서 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아들이 했던 말이 새록 새록 공감이 가기도 한다. "엄마 요즘엔 결혼 안 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하지만 아들아 주말에는 여친하고 재미있게 놀다가 제발 늦게 들어오렴!

덧붙이는 글 | 불황이 ㅁㅁㅁ에 미치는 영향


태그:#결혼, #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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