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가 존망의 최후보루인 군을 지휘통제하고 있는 국방부가 정치권력에 잘 보이려는 듯 촐싹거린다면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장병들의 자부심과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국방부 장관은 국무위원의 일원이란 점에서 ‘정치인’이라는 말이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그러나 헌법상 군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장관의 언행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한다.

 

특히 우리나라 국방부장관에게는 ‘군정권’과 ‘군령권’이 함께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장관이 마치 현역 군인 인 것처럼 비춰져 그의 언동은 국민들은 물론 장병들에게 까지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필자가 육군 정훈감으로 재직 중이던 87년, 전두환대통령의‘호헌’발표로 정국은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야당을 비롯하여 학생과 시민단체들은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적 헌법 개정을 열렬히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박종철 고문사건이 폭로되어 민주화 요구의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육군본부 작전구릅회의에서 참모부장은 “정훈감! 일부 정치권에서 개헌해야한다고들 하는데 우리군은 호헌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도록 ‘호헌교육’을 철저히 시켜야 하지 않겠소!”라 했다. 나는 납득할 수가 없어서 “부장님! 어떤 정당에서는 개헌을 해야 한다 주장하고 다른 정당에서는 호헌을 하겠다는데 왜 우리 군대가 거기 끼어들어서 특정 정당의 편을 들어야합니까? 신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했다. 참모부장은 “앗다 정훈감은 꼭 운동권 대변인 같은 소리만 하네!”얼버무려 회의 분위기를 잡았다. 참석한 뭇 장군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이내 참모총장에게 불려가 혼 줄이 났다. “표 장군 너 당장 보따리 싸!” 라는 등 노발대발하는 고함소리를 꾹 참고 들어야했다.

 

결국은 6.10 민주항쟁의 질풍노도에 밀려 그렇게 서슬 퍼렇던 정부여당이 ‘6.29선언’ 의 항복을 했다. 촛불집회의 열기도 그때 못지않게 정말 대단했다. 오죽했으면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에 가서 반성했다 했겠는가?

 

헌법에 명시된 군의 정치적 중립이란 군은 선거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정당 간에 입장과 견해가 현격히 다른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군은 좌면우고함 없이 중립의 무게를 지녀야함을 일깨우는 내용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선 이후 국방부가 취해온 일련의 행태를 보면 이런 원칙을 무시하고 과거 권위주의시대로 회귀한 것 아닌가 착각케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니, 그때는 정치권력이라 하더라도 군부에 대해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군대가 정치권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듯한 그런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촛불집회는 누가 뭐라 해도 분명 국민들의 정치적 의시표시의 합헌적 권리행사다. 대다수 국민들과 야당은 촛불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면에 정부여당은 과격불법 시위라 트집 잡아 공안정국으로 몰고 갈 정도로 부정적이다. 군은 이런 첨예하게 대립 상반된 정치적 사안에 대해 당연 초연해야함에도 독재정권 시대 하던 버릇대로 잽싸게 촛불집회의 부당성에 대한 정권안보식의 정훈교육을 실시하는가하면 촛불예비군의 군복착용에 대해 속 드려다 보이는 엄포를 놓았다.

 

국방부는 마치 정권을 도와 공안정국 조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뭐 없겠는가? 건수를 올리려 애쓰는 모습이다. 어설픈 군 관련 여간첩사건을 발표하여 실소케 하더니 급기야는 전두한 5공 독재정권을 미화하는 내용을 교과서에 포함시켜달라고 교과부에 요구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작태를 보였음에 개탄을 금치 못한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정권초기 잘못 설정한 정책에 대해서 솔직히 인정하고 개선 발전시키려 진지한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사사건건 모든 잘못을 노무현 전 정권 탓으로 돌리며 핑계하는 극히 무책임한 정부의 모습이 뭐 그리 좋아 국방부까지 나서서 지난 정권을 노골적으로 헐뜯고 비난하는 정치적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한 군대' 이런 구호적인 주장은 중소대장 급의 전투적 수준에서나 이를 말이지 정책차원의 국방수뇌에서 논할 주제가 아니다. 무엇이 강한 것이냐? 어떻게 해야 강해질 것이냐의 대 전제와 기본개념이 시대착오적인 냉전의식에 바탕을 두고 설정되어있어서 야전 초급간부들의 자율성 영역만 침범할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할 것이다.

 

국방부의 잘못된 발상의 대미는 냉전 수구적 사고의 틀 안에 갇혀있는 실세 권력자들에게 뭔가 보여주려다가 헛발질한 것이라는 말 이외에 다른 설명이 되지 않는 ‘불온서적 군내반입 금지’조치다. 여러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있지만 군 당국이 얼마나 병사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인격존중에 관심 없는가의 정도를 설명해주는 처사로서 이미 국제적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이에 이어 ‘불온 연애 금지’ 라는 상식 밖의 ‘불온 시리즈’ 지시를 했다가 거두어드린 바 있다.

 

국군의 효시는 1940년 9월 17일 탄생한 항일무장투쟁의 구심 역 이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식군대 광복군이다. 따라서 금년은 건군 68주년이 돼야함에도 건국 60주년이라고 막무가내 때 쓰는 친일독재의 극우세력 앞에 기를 펴지 못하고 군의 역사를 군 스스로 비하하여 건군 60주년이라 따라하고 있다. 국군의 자존심을 팽개치고 그들에게 볼모잡혀 있음이 참으로 서글프다.

 

국방부는 예비역 고급간부 출신들과 친일독재에 뿌리를 둔 소위 뉴 라이트 극우세력 만이 국민인 것으로 착각하여 그들의 뜻이 바로 국민 여론이라며 밀어붙이는 식의 역사적 과오를 범치 않기 바란다.

 

이 밖에도 이전의 참여정부에서 여러 어려운 장애를 극복하면서 개혁의 실마리를 풀어 바람직하게 발전시켜 온 군 사법제도개혁의 문제, 군 복무 가산 점 문제, 종교적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 문제 등 전향적인 발전책들을 ‘잃어버린 10년’의 내용에 꿰맞추려는 듯이 부정 폄훼하며 권위주의시대의 군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음은 심히 유감이다. 

 

정권은 늘 바뀌어 짧지만 국가가 존재하는 한 군대는 영원하다. 역사와 국민이 어떻게 평가하던지 아랑곳하지 않고 청와대와 정치권력만 의식, 자신의 일신만을 생각하는 과거 정치군인의 그릇된 자세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장관의 말 한마디에 대해서도 그 저의까지 환히 꿰뚫어본다. 국방부는 정치에 민감하여 중심을 잃어서는 안 된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상관없이 주어진 막중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면 그만이다.

 

나의 손녀는 때때로 오버하는 엉뚱한 행동을 한다. 자기 오빠에게 집중되어있는 엄마 아빠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인 듯 하다. 제대로 군 복무하지도 않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너무 외롭더라도 그리고 그 수많은 전임 국방장관출신들이 보내는 무언의 압력이 아무리 숨 막히게 크다 하더라도 역사의 고동소리에 역행하여 뭔가 보여줌으로서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최근 전투경찰 제도 개선문제를 원래계획대로 추진해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국방부의 용단에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한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몰려오고 혼란스런 경우에 직면하더라도 군대가 정권의 목적에 이용당하여 휘둘러지지 않도록 군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후보루로서의 의연 당당함을 지켜주리라 믿으며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표명열 기자는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입니다. 위 내용을 요약하여 '국방부여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라는 제목으로 한겨레 신문에 게재한바 있습니다.


태그:#군의 정치적 중립, #군대개혁, #군의정치민감배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 군을 부하인권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왔음. 만84세에 귀촌하여 자연인으로 살면서 인생을 마무리 해 가고 있음.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