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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매기 체험장에서 '가래'로 물고기를 잡는다(완도 소안면 월항리).
 개매기 체험장에서 '가래'로 물고기를 잡는다(완도 소안면 월항리).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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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뒤 하늘색은 옅은 쪽빛이다. 하얀 뭉게구름이 그물에 걸렸다 내려온다. '갈매기'가 심술을 부리는 통에 이장님께 전화로 몇 차례 확인을 하고 다짐까지 받고 출발했다. 태풍 이름도 하필이면 '갈매기'인지.

물때를 맞춰야 하는 '개매기' 체험이라 아침 일찍 물이 빠지는 시간을 맞춰야 했다. 작년 개매기 체험행사에는 1000여 명씩 참여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전남 진도군 청룡리에서 치러지는 개매기는 금년이 처음이다. 비슷한 시기에 완도 소안면 월항리, 장흥 대덕읍 신리에서도 개매기 체험이 열린다.

개매기는 조석 간만의 차가 큰 바닷가 갯벌에 그물을 쳐 놓은 후 밀물 때 조류를 따라 들어온 물고기 떼를 썰물 때 잡는 전통 고기잡이 방식이다. 서해와 남해 연안과 섬 어민들은 돌이나 발로 물길을 막아 물고기를 잡았다. 이러한 정치어업(그물 따위의 어구를 일정한 수면에 설치하고 하는 어업)을 서해안은 '살', 남해안은 '발'이라고 했다.

물길을 막는 재료로는 대나무와 싸리나무를 엮거나 면사나 나일론 그물을 이용했다. 비슷한 고기잡이로는 남해 '죽방렴', 서남해 '건강망'(개매기 포함), 서해 '독살' 등이 있다. 개매기는 어원으로 본다면 '개'는 밀물과 썰물 사이에 드러나는 공간으로 '조간대'를  말한다. '매기'는 '막다'는 의미로 조간대 물길을 기둥을 세우고 그물을 쳐 막는다는 말이다.

즉, 조석 간만의 차를 이용해 조간대의 물길을 막아 물고기를 잡는 어법이다. <세종실록지리지>는 '발'과 '살'을 '어량'(魚梁)이라 했다. 갓고기가 많았던 시절에는 어살을 이용해 조기도 잡았다. 임경업 장군이 연평도에 가시나무를 꽂아 조기를 잡았던 것이 어살의 유래라고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가래를 놓고 물때를 기다린다.
 가래를 놓고 물때를 기다린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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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가래로 잡은 물고기를 만지는 아이 표정이 조심스럽다. 개매기는 아이들에게 최고 체험이며 생태교육장이다. 다만 전문해설사가 없어 아쉽다.
 엄마가 가래로 잡은 물고기를 만지는 아이 표정이 조심스럽다. 개매기는 아이들에게 최고 체험이며 생태교육장이다. 다만 전문해설사가 없어 아쉽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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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은 물론 죽방렴을 관리하려면 적잖은 비용이 든다. 더구나 독살은 조석간만의 차이는 물론 적절한 지형을 찾아 설치해야 한다. 독살을 쌓을 장소가 많지 않지만 파도와 태풍 등으로 무너진 독살을 관리하는 일도 쉽지 않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동네에서 힘깨나 쓰는 집안이라야 운영할 수 있다.

갯가 고기찾기가 가뭄에 콩 나듯 귀한 요즘 독살은 가끔 멸치가 들기도 하지만 신기한 볼거리 구실을 하고 있다. 반면에 개매기는 전라남도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어법이다. 더구나 해양관련 축제나 어촌체험행사에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전라남도에서 개매기 마을로는 월항리(완도 소안면), 청룡리(진도 진도읍), 신리(장흥 대덕읍) 등이 알려져 있다. 이들 마을은 봄부터 가을까지 3~7차례 개매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성질 급한 사람이 투망을 들고 나섰다.
 성질 급한 사람이 투망을 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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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반 고기반이다(진도 청룡리).
 물반 고기반이다(진도 청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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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이 급한 아저씨들이 개매기 그물 안에서 투망을 던진다. 정치어구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기다림'에 익숙해야 한다. 독살이 그렇고, 죽방렴이 그렇고, 개매기가 그렇다. 날물이 되어 바닷물이 빠지면 쪽대(반두)나 뜰채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다. 가운데 물이 가장 늦게 빠지는 갯골로 물고기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개매기처럼 깊지 않는 곳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구로 '가래'가 있다. 가래는 왕대나무를 쪼개 원통형으로 엮어 만든다. 싸리나무를 사용하기도 한다. 꼭대기에는 어른 팔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아가리가 나 있다.

바닥은 지름이 어른 한 발 정도며, 높이는 70~80cm에 이른다. 강이나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데 사용하는 어구로 '개웅'(웅덩이)에 머리를 박고 있는 물고기를 잡거나 돌 속에 숨어있는 물고기를 잡을 때 요긴하다.

물고기의 습성을 아는 어부는 큰 고기가 있는 곳에서 가래질을 한다.
 물고기의 습성을 아는 어부는 큰 고기가 있는 곳에서 가래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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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는 물고기 습성을 잘 아는 어민들에게 더 없이 좋은 도구였다(진도 청룡리).
 '가래'는 물고기 습성을 잘 아는 어민들에게 더 없이 좋은 도구였다(진도 청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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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는 요즘 개매기 축제장에서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월항리는 체험신청을 하면 가래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개매기 체험에는 쪽대나 투망보다는 가래가 제격이다. 오래된 전통어구일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고기를 가려가며 잡을 수 있다. 깊은 바다로 나가려던 숭어가 그물에 막혀 갯가로 달아난다. 사람들이 그물 주변에서 고기를 잡으려고 뜰채나 쪽대를 가지고 뛰어다니지만 이 때 가장 요긴한 어구가 가래다.

개매기 체험이 인기가 있고, 어민들이 적극 참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민들이 가장 잘 아는 고기잡이 방법이며 그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주민들 참여는 관광객 참여로 이어진다. 지역주민이 빠진 축제는 의미가 없다. 개매기에서 주민들은 구경꾼이나 일당을 받고 동원된 사람이 아니라 축제를 이끌어가고 같이 참여한다. 그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주체로 나선다는 것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개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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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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