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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보다 라울을 먼저 안 '체 게바라'

새로운 권력자 라울 카스트로의 한마디 한마디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갖가지 해석이 난무한다. 오랫동안 쿠바가 고립되어온 탓인지, 쿠바에 대한 부정확한 소개와 터무니없는 전문가들의 해석도 많다.

피델에게 사회주의와 더불어 많은 혁명가들을 소개해준 사람이 라울이란 이유로 라울이 피델보다 경직되고, 과격한 공산주의자라고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부분의 쿠바인들은 라울을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인물로 보고 그에게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체 게바라가 살아있었다면, 오늘의 격변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자못 궁금하다. 체는 피델보다 라울과 먼저 알게 되어 이념의 동질성을 확인했고, 59년 쿠바혁명 이후 농지개혁을 비롯해 쿠바의 산업구조를 바꾸는 개혁의 선봉장인 국립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을 역임했기 때문이다.

당시 체가 산업구조개혁을 놓고 피델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분석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체가 쿠바 권력자의 지위를 버리고 볼리비아 게릴라 전이라는 사지로 뛰어든 이유가 피델과의 갈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난 2월 24일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라울 카스트로
 지난 2월 24일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라울 카스트로
ⓒ 송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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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체 전문가들'이 아버지를 왜곡해"

이런 민감한 시점에 체 게바라의 생존 장녀인 알레이다 게바라로부터 체 게바라에 대한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현재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로 아바나에서 일하고 있으며, 쿠바 사회주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신념을 갖고 있다.

피델의 사임 발표 이후에 만났다면 좀 더 현실감 있는 전망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알레이다와의 만남은 그 며칠 전이었다. 체 게바라는 쿠바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의 전설적 영웅이고, 유럽 '68혁명'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런 아버지를 둔 딸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체 게바라의 장녀, 알레이다 게바라
 체 게바라의 장녀, 알레이다 게바라
ⓒ 송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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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만나러 찾아 온 외국인들에게 항상 '체의 딸'이라고 나를 소개한다. 그러나 사실 그건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명한 사람의 자식이란 것은 단순한 출신의 문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을 위해 훌륭한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원래 소아과 의사다. 지금은 가까운 병원에서 의사로 일한다. 그리고 체 게바라 연구소 일도 돕고 있다. 쿠바와 다른 나라의 친선협회 일도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지체장애인 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쿠바 여성으로서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대단히 만족한다. 나는 게바라라는 이름으로 외국인들과 만나고 쿠바상황에 대해 설명한다. 사람들은 쿠바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쿠바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우리는 체 게바라 연구소를 통해 외국인들에게 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하려 한다. 우리의 중요한 역할은 생존자 중 체와 직접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정리하는 것이기도 하다. 체를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들 가운데 수많은 자칭 체 전문가들이 있다. 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체에 대한 많은 책을 썼고, 그래서 체가 왜곡되고 입맛에 따라 편집되어 안타깝다. 체에 대해 정확하게 진실대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외국인을 만날 때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지 말고, 체가 직접 쓴 글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알레이다는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도 하기 전에 먼저 많은 얘기를 쏟아 내었다. 수없이 많은 인터뷰를 해 보았을 알레이다는 외국인들이 궁금해 할 사항을 이미 환히 꿰뚫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까지 정확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체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떠들지 말라'는 얘기다.

체가 쿠바 경제를 책임지게된 진짜 이유

"체는 어릴 때부터 천식으로 고생했다. 그래서 다른 학생처럼 학교에 매일 가지 못했다. 체는 학교에 가지 못했을 때 주로 책을 읽었다. 할아버지 말이라 모두 믿을 수 있는지 모르지만, 할아버지는 체가 11세 때 1100권의 책을 읽었다고 말한다. 아무튼 많이 봤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사실은 17세 때 개인적으로 '철학사전'을 만들 정도로 박식했다. 체는 오랫동안 철학사전을 계속 보충했지만 끝내지는 못했다. 체는 인간의 지식은 끝이 없다고 말해왔다. 100%의 지식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은 없으므로 항상 인간은 새로운 것을 배우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체는 어릴 때부터 칼 맑스의 <자본>을 읽었다. 처음엔 단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체 스스로 말했다. 이렇게 솔직한 것이 체의 성격이다. 또 한 가지는 일을 시작하면 잘 할 때까지, 완성할 때까지 끝까지 노력한다는 것이다. 처음 자본을 볼 때는 이해 못했지만, 당시 체가 자본을 읽으면서 책 옆에 메모한 것을 보면 스스로 '자본'을 소화하고 자신이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쿠바에 적용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자본'을 충분히 이해하고 쿠바에 적용해왔던 것이다."

알레이다는 체가 어릴 적부터 혁명가로서의 능력을 훌륭하게 가꿔왔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체가 솔직하고 강한 신념의 소유자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별로 없다. 그러나 체의 성격이나 기질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몇가지 일화는 체와 피델의 관계를 왜곡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알레이다는 그 일화를 정확하게 다시 소개하고 그에 대해 해석도 달아주었다.

"체는 처음 보는 것은 100% 이해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다. 혁명 직후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피델이 동료들에게 '당신들 중에 경제전문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체가 '나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피델이 의아해 하면서 '네가 경제전문가라고? 너는 의사가 아니냐'라고 했다.

그랬더니 체가 '아, 공산주의자가 누구냐고 묻는 줄 알았다'고 답했다. '이코노미스타'(Economista)와 '코뮤니스타'(Communista)의 발음이 유사하다는 점을 이용한 농담이었다. 사실 체는 혁명 직후 산업개혁이 가장 중요하므로 그 일을 담당할 경제전문가가 절실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일부러 잘못 들은 척한 것이고, 피델이 그 뜻을 알고 있었으므로 체를 경제책임자(국립은행 총재)로 임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체 게바라 평전>의 저자 장 꼬르미에를 비롯한 많은 체 게바라 전문가들은 이 일화를 피델의 즉흥적인 인사방식의 하나로 설명하고, 피델과 체 게바라 등 당시 혁명가들이 전혀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를 구성했다는 증거로 사용하고 있다. 본래 혁명이란 급격한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고, 전문 역량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런 과정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것이다.

"체가 국립은행 총재가 되었지만 경제전문가는 아니므로 그후 매일 16시간씩 경제 공부를 했다. 국립은행 총재로 활동할 때 경제와 수학을 배우기 위해 아바나 대학교수로부터 밤새워 수학수업을 받았다. 교수가 얼마 후 모든 것을 다 가르쳤다고 말하자 체가 그 교수에게 현대수학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교수는 그건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체는 '그러면 같이 공부하면 되겠네'라고 교수에게 말했다. 체는 그런 사람이었다."

전설의 영웅 '체 게바라'의 얼굴상이 걸려 있는 쿠바 내무성 건물
 전설의 영웅 '체 게바라'의 얼굴상이 걸려 있는 쿠바 내무성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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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가 볼리비아로 떠난 이유는?

그야말로 거침없는 젊은 혁명가의 모습이다. 평상시라면 이런 태도가 지도자에게 부적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혁명의 초기, 소용돌이 속에서는 미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이야기는 체와 피델 사이의 가장 민감한 주제로 나아갔다. 바로 체가 볼리비아로 떠난 이유에 대한 문제이다.

"체가 혁명완수 이후 쿠바에서의 안녕과 권력을 버리고 왜 볼리비아로 갔느냐에 대해 많이들 물어본다. 당시 미국 정부는 여러 가지 소문을 퍼트렸다. 소문은 피델과 체 사이의 갈등 때문이라고 선전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다. 두 사람은 맥시코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상의 공통점을 확인하고 서로 존중해왔다. 두사람은 사상적 동일성을 이미 확인했고 그 후로도 계속 함께 길을 걸어오면서 갈등은 없었다.

두 사람의 우정과 신뢰를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멕시코에서 혁명가들을 모아 훈련을 하고 있을 때 모두 멕시코 경찰에 잡힌 적이 있었다. 멕시코 경찰은 체만 빼고 모두 석방했다. 그때는 피델이 다른 혁명가와 함께 쿠바로 가려고 하던 때였다. 그러나 피델은 떠나지 않고 위험을 무릎쓰고 체의 석방을 위해 노력했다. 그 때부터 두사람의 신뢰는 더욱 깊어졌다."

1953년 당시 총탄 자국이 남아있는 몬카다 병영
 1953년 당시 총탄 자국이 남아있는 몬카다 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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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1956년 6월 미국 CIA와 쿠바 바티스타 정부 비밀경찰의 비호 아래 멕시코 경찰이 소련과의 관련성을 밝히기 위해 피델 카스트로가 멕시코에서 조직한 M 7-26(피델이 바티스타 정권 타도를 목적으로 소수 혁명가들과 함께 1953년 7월 26일 몬카다 병영을 습격했던 사건을 기념하고 그 뜻을 잇는다는 의미로 붙인 조직명) 조직원 수십명을 체포한 사건이다.

당시 체는 감옥에 있으면서 피델에게 자신을 두고 쿠바로 출발하라고 했지만, 피델은 체를 두고 갈 수 없다며 체가 석방되도록 각방으로 노력했고 또 기다려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의 신뢰관계는 피델의 말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체가 한 말을 모은 책을 출판하려고 하고 있다. 혁명 후 체가 아프리카 콩고에 있을 때 집필한 것이다. 그 책의 머리말을 쓰다가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삼촌'이라고 불러온 피델과 몇 시간동안 얘기했다.

피델 삼촌에게 체와 갈등하고 다툰 적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피델은 멕시코에서 체포되었을 때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러면서 피델은 그때부터 체를 완전히 신뢰했다고 강조했다. 나는 피델의 말을 들으면서 웃었다. 피델은 자기도 모르게 체에 대한 옛 얘기를 할 때 체가 마치 바로 옆에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말했다.

나는 피델의 말을 들으면서 체가 지금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키스를 할 것처럼, 그렇게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 그건 피델이 체를 아직 살아있는 사람처럼 존중하고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목숨을 걸고 혁명에 나선 동지들의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의 강도는 그 당사자가 아니면 감히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피델과 체는 그야말로 피보다 진한 동지애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이 많은 일화를 통해 확인된다.

그러나 혁명이 성공한 이후 쿠바의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에서는 그 동지애와 상관없이 정책과 비전이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은 혁명 이후 체가 주장했던 수많은 발언 가운데 피델의 정책과 모순되는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정책 간의 모순과 갈등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알레이다의 설명에서 속시원한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체의 일상, 투쟁에 대한 악소문, 잘못된 얘기가 너무나 많다. 많은 외국인들이 체의 평전과 체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지만 거짓말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나는 체를 알고 싶으면 체가 직접 쓴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다른 책은 믿을 수 없다. 몇 년 전에 체 연구소에서 체에 대한 책 <글로발 저스티스>를 발간했다. 그 중 체의 글 3편이 나온다. '쿠바의 인간과 사회주의', '당시 쿠바에 대한 상황설명', '쿠바의 미래'- 이 세 편은 쿠바 혁명과정의 어려움, 난관에 대하여 쓴 것이다."

"미국의 봉쇄정책에도 웃으면서 미래 설계... 이게 쿠바의 힘"

알레이다는 왜 이토록 외교적으로만 답을 하는걸까? 아니면 알레이다조차 그 실상을 알 수 없는 건 아닐까? 체의 입이 영원히 닫혀 있으므로, 그가 생존 중에 한 발언과 글을 통해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 추측이 알레이다의 마음에 들든 그렇지 못하든 그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이야기는 사회주의 문제로 건너뛰고 있다.

"혁명보다 혁명 후 사람의 사고, 생활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 봉건 노예제 사회에서 사회주의까지 발전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회는 부가 많은 사람이 권력을 갖는 것으로 되어 왔다. 자본주의에서는 개인적으로만(공동체가 아니라) 잘 살도록 노력하라고 교육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에서는 그것을 큰 잘못으로 본다. 부를 많이 쌓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타인을 위한 노력을 하라고 쉽게 말할 수는 있으나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인간이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고 연대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체가 꿈꾸던 것을 아직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의사인 그녀에게 쿠바의 경제와 미국과의 관계를 물어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체 게바라의 딸이다. 그리고 확고한 사회주의자다. 그래서 개인적인 판단이라는 전제하에 쿠바의 현실과 전망에 대해 물어보았다. 부족한 물자, 주택문제, 간단한 생필품을 사려고 해도 몇시간 동안 줄을 서야 하는 쿠바인의 일상이 피곤하다는 것을 이미 알기에 알레이다가 그 해답을 줄 수 있을지 기대를 걸었다.

"미국의 경제봉쇄정책은 대단한 위력이다. 쿠바경제가 많이 어려웠다. 생후 5개월된 여자아이에게 꼭 필요한 약을 구하려 해도 구할 수가 없다. 미국의 봉쇄정책 때문에 미국 몰래 외국인을 통해 구해야만 한다.

쿠바에 들어오는 타국 선박은 미국허가를 받기 위해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이런 예는 끝이 없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미국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웃으면서 미래를 설계하게 되었다. 이것이 쿠바의 긍정적인 특징이고 힘이다. 다민족 사회라서 그런 것 같다.

쿠바는 아프리카 및 중남미 국가다. 올해는 중국인이 들어온 지 120주년이 된다. 쿠바에는 동양인의 헌신성도 있고, 스페인 사람의 고집도 있고, 행복한 아프리카인의 특징도 있다. 쿠바는 특별한 혼혈국가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게 살아야 한다.

쿠바 여성은 어릴 때부터 재미있는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우리 이모는 '땅은 나보다 훨씬 훌륭하지만 나는 그 땅을 밟고 살고 있는 사람이다'고 했다. 인간이 그만큼 존엄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난관을 딛고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쿠바인 3명이 만나면 럼주 한 병으로 세계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농담이 있다. 쿠바인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뜻한다. 의식, 문화수준이 높아지면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더 높아진다. 그 비판의식이 사회를 더 발전시킬 것이다. 쿠바는 그 수준에 꼭 도달할 것이라고 믿는다."

알레이다가 지원하는 장애인 학교에서
 알레이다가 지원하는 장애인 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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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없던 매춘, 최근에는 있다"

예상했던 것처럼 그녀의 설명은 충분한 근거가 있거나 논리적 설득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신념에 차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쿠바의 현실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도 든다. 구체적 대안은 없으나 자신들의 미래가 낙관적일 것이란 기대에 대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이 쿠바인이 아닌가.

"미국은 매년 5500만불을 쿠바 붕괴를 위해 쓰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쿠바는 처신을 잘 해야 한다. 선급과제는 쿠바인에게 주권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렵다. 외국의 압력이 너무 크다.

최근 어려움은 관광산업 발전과정에서 발견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쿠바에 유익하나 우리 사회와 전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게 되고, 특히 어린 세대에게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예전에는 매춘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있다.

매춘을 하는 사람이 1명만 있어도 쿠바에겐 큰 상처다. 신세대에 대한 많은 교육을 했어도 매춘이 있다면 그건 교육의 실패를 뜻한다. 신세대에 대한 교육을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쿠바인의 문화, 교육수준을 더 높여야 한다는 걸 뜻한다. 어렵고 복잡한 난관이 많지만, 해결할 수 있고, 우리는 계속 투쟁하고 있다."

쿠바에서 알레이다와 같은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 쿠바에 대한 자부심을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쿠바 사회를 이끌어 가는 힘, 그 동력을 이방인이 모두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피상적으로만 보더라도 쿠바사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항상 낙관적이며,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주의의 해택인가, 쿠바인의 기질상의 특성인가.

"체의 딸이란 이유로 인민들로부터 끝없는 사랑받고 있다"

이즈음에서 주제는 개인의 문제로 넘어갔다.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국가의 영웅이고 세계 젊은이의 전설이 된 체 게바라의 딸임에도 너무나 소박한 느낌이다. 쿠바 사회에서 알레이다가 어떤 지위에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대단한 특권을 갖고 있다. 체의 딸이기 때문에 인민들로부터 끝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이보다 더 큰 특권이 있겠는가. 의사로 일할 때, 편도선이 부은 12세 아들을 데리고 한 어머니가 내게 왔다. 그 때 나는 체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환자 어머니가 날 빤히 들여다보더니 체의 딸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렇다고 했더니 갑자기 그 어머니가 주사 중인 나를 포옹했다. 엉덩이에 주사를 꽂은 아이가 내 무릎 위에 있는 상태였다.

이런 인민들의 사랑을 나는 매일 경험한다. 소련 몰락 후 비상사태 때, 관타나모 주에 있는 예술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때 키 작은 6세 여학생이 나에게 연필 2개를 주었다. 나는 아이에게 '네게 더 필요하다'고 말하며 거절했다. 그러자 그 여학생은 자기가 꼭 선물을 하고 싶은데 가진 것이 이것뿐이라면서 꼭 주려고 했다. 그런 사랑을 받는 나는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다."

다소 긴 인터뷰 가운데 알레이다의 말은 한번도 막힘이 없었다. 자신감에 넘치기 때문이리라. 쿠바인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헌신성만큼은 아버지 체를 꼭 빼닮았다(자세히 보면 눈매도 체의 그것이다). 그녀의 말투, 몸짓, 손짓마다 쿠바와 쿠바인에 대한 자긍심과 애정이 베어 나왔다.

굳이 지체장애인 학교에서 우리를 만나고 인터뷰를 하도록 한 것도 지체장애인 학교에 대한 지원을 염두에 둔 듯하다. 재활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학생들을 보는 그녀의 눈빛은 사랑에 빠진 그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분노와 단호함을 가지고 있었다. 기념 사인을 받기 위해 내민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을 펴들자 딱 잘라서 거절했다.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란 말이에요.'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태그:#체 게바라, #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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