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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 이동한다는 민족의 명절이다. 그러나 갈 곳이 없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의 첫 명절이 이렇게 가슴을 후비게 될 줄은 몰랐다.

 

세월이 가면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없는 빈 집에 들어설 자신이 없다. 모두가 다 같은 마음이겠지. 마음속으로 수십 번 짐도 챙겨보지만 자꾸만 흐르는 눈물은 지울 수가 없다.

 

부모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웃고 계시지만 아무런 말이 없다.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1년이 되지 않아 아버님도 같은 길을 가셨다. 홀로계신 아버님에게 모두의 자식들이 그러하듯이 도시에서 함께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자신의 때가 묻은 삶의 터전을 버릴 수 없단다. 그래서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 때는 그것이 아버님에게도 좋은 줄로 알았다. 커다란 빈 집에서 혼자 밤을 센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 줄은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게 솔직한 고백이다. 전화라도 자주해야겠다고 마음만 먹었을 뿐. 매달 몇 만원이 나오는 전화 요금도 항상 다른 사람에게 건 요금들이 대부분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없다. 아니 이유는 있었지만 설명될 수 없는 이유들뿐이다. 그래도 서운한 기색이 없으셨다. 아니 나의 그 잘난 짐작일 뿐이다.

 

오늘(7일) 아침은 설날이다. 차례는 어제 밤에 지냈기에 오늘은 성묘만 가면 된다. 남해안 일부는 그믐 날 저녁에 차례를 지낸다. 속설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조상의 차례를 지내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명절 전날 저녁에 차례를 미리 지냈다고 한다.

 

 

성묘를 다녀온 발걸음이 무겁다. 묘에는 시들어 버린 잔디가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 한다. 묘를 한 바퀴 돌고 술잔을 올렸다. 이게 돌아가신 부모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돌아서는 발길이 자꾸만 어수선하다. 무언가 놓고 가는 기분이다. 자꾸 뒤를 돌아보지만 발길은 이미 산모퉁이를 돌고 있다.

 

평생을 일밖에 모르시고 돌아가셨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긍정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렇게 믿고 싶을 뿐. 텔레비전이 세상을 말하고 연륜이 세상을 보게 하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분들은 자신의 몫을 항상 뒤에 배치해 놓았을 뿐이다.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선인들의 말씀이 마음을 짓누른다. 불러본다. 대답이 없다. 혼자 방에 들어가 눈을 감는다. 얼굴에 흐르는 못난 모습은 닦기에도 부끄럽다.

 

 

옛 모습이 스쳐간다. 상당히 엄하셨던 아버님. 그러나 돌이킬 수없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말씀이 없으셨다. 훗날 들었던 이야기지만, 커더런 잘못은 스스로가 알고 있기 때문에 나무라지 않아도 스스로 깨우친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분이 안 계신다. 크든 작든 어느 날부터는 말없이 그냥 지켜만 보셨다. 그게 바로 나를 교육시키는 또 다른 방법이었음을 알았을 때는 아무리 찾아도 그분들은 없었다.

 

일기장을 펴본다. 어머님이 돌아가고 써 놓았던 시를 옮겨본다.

 

그리운 엄마에게.

 

사람은 태어나서 어디로 가는 걸까?

 

엄마, 미안하다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날들이 흘러가 버린 것 같아요.

벌써 엄마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버린 것처럼

그냥 아무렇지도 않는 것처럼.

 

세상은 똑 같기만 한데

자꾸 마음 한구석엔 엄마가 예전과 다름없이 그대로 남아 있네요.

 

봄비가 하염없이 내리던 날

난 먼 산을 바라보며

엄마의 살아생전의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하나도 변한 것 같지 않는 엄마의 모습은 여느 때처럼 일만 하는 우리 엄마의 모습입니다.

 

엄마

너무너무 미안해

그 많은 날

우리는 한 번도 같은 열차를 타고 한 곳에 머무르지 못했네요.

남들이 다 가는

여행 한번 같이 가지 못했네요.

 

엄마

정말로 너무너무 미안해.

우리 다음에 먼 세상에서 또 다시 만나면 꼭 그때에는

엄마의 손이 되고 발이 되어 줄께.

 

불효자 큰 아들올림


태그:#산소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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