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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목) 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 주최로 BBK사건 수사와 관련한 촛불기도회가 열렸다. 그곳으로 가는 길, 차 안에서 들려오는 뉴스에 5천여명이 모였다고 했다. 적지 않은 숫자다. 개인적으로 1천명 단위가 넘는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87년 6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 10일(월) 삼성 비자금과 BBK 사건수사와 관련한 기도회를 종로5가에서 갖고 탑골공원까지 300여명이 거리행진을 했는데, 그것 역시 개인적으로는 87년 6월 이후 20년만에 참여한 거리행진이었다. 그동안 광화문에서 많은 촛불집회가 있었지만 그때는 제주의 작은 시골마을에 살 때라 마음으로만 함께 했을 뿐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시국이 어수선하다. 뭔가 국민이 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갈 것만 같은 위기감, 그것이 나를 거리로 내몰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의 터전이 제주도였기에 탄핵정국이나 효순이 미선이와 관련된 촛불집회에 참여하지 못했다.
 
제주도 탑동에서도 촛불집회가 있었지만 집에서 너무 멀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못한 것은 내내 내 삶에 짐처럼 남아 있었다. 그 역사의 자리에 함께 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 같은 것들이 하나의 짐처럼 남아 있었던 것이다.
 
 
간혹 87년 6월 항쟁 때 구호를 외치며 걸었던 그 길을 지나칠 때면 '그때 나도 저기에 있었지' 생각하며 역사에 흐름 속에서 비켜서 있지 않았음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아마도 그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87년 이후 수많은 역사적인 현장에서 나 스스로 소외되어 있었음에 대한 반성 같은 것이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어느 방송에서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에 대해 당시 검찰이 진실을 감춤으로 결국 특정 권력에 봉사하는 시녀가 되었음에 대한 정황들을 조목조목 밝혔다. 그러나 아직도 그 사건의 진실은 다 밝혀지지 않았으며, 진실이 다 밝혀진다 해도 이미 상처받은 이들의 상처와 당시 그 사건을 조작해냄으로 인해 이익을 얻었던 집단들의 이익을 환수할 방법은 어디에 있는가?
 
당시 유서대필사건은 운동권의 도덕성을 깎아내렸고, 국민은 결국 불의한 자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던가?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져야 하지만 그 긴 세월 어간에 일그러진 것들을 어떻게 회복할 것이며, 한 개인이 입은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진실은 현재성을 가져야 한다. 현재의 진실이 왜곡되고 긴 세월이 지나서야 진실이 밝혀진다면 그 긴 세월 동안 일그러진 역사는 어찌할 것인가!
 
 
80년대 시위현장의 긴박감은 없었지만 문화행사처럼 진행된 집회를 보면서 시위문화의 변화를 실감했다. 그럼에도,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함께한다는 것은 큰 희망이고, 위로다.
 
작은 촛불 하나가 큰불을 일으킬 수 있듯, 한 사람 한 사람의 외침이 함성이 되고, 그 함성이 역사의 바른 물꼬를 트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집회 중간 중간과 끝에 익숙한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한마음 되어 노래를 부르고, 나도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른다. 아침이슬, 광야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불나비….
 
언제 이렇게 많은 목소리 속에서 이 노래를 불러보았는가 돌이켜 보니 87년 6월 이후 처음인 듯하다. 감회가 새롭다. 그러면서도 이런 집회가 계속되면 안 되는데, 이런 집회 없이도 역사가 제대로 굴러가야 하는데 하는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양적인 성장에 치중하는 종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자본주의 맘몬이 종교를 먹어치웠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실제로 종교 일반에서 그런 일들이 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는 무리는 있는 법이다.
 
많아서가 아니라 비록 적다 하더라도 그들의 소리는 진실이기에 역사의 흐름을 타고 흘러갈 것이다. 본래 희망의 빛이라는 것은 작은 법이다.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더 밝게 보이는 것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입에서는 20년 전에 불렀던 그 노래들이 하나둘 흘러나온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그런데, 아직도 님의 행진곡을 불러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슬프다. 그럼에도, 함께 님을 향한 행진곡을 부를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이 희망이다.

태그:#촛불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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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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