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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시내 라일강 다리입구의 사자상
 카이로 시내 라일강 다리입구의 사자상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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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공항으로 출발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이르지 않겠습니까?”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돌아본 다음 근처의 한국인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였다. 카이로 공항에서 떠나는 오사카 행 비행기시간까지는 아직 5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그럼 아직 시간이 넉넉하니까 이 근처에서 카이로 시내관광을 하고 한 시간 후에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공항은 카이로시내 외곽에 있다고 했다. 그래도 4시간 전에 출발한다는 것은 너무 서두른다는 인상이 짙었다.

“여유 있게 출발해야 합니다. 공항까지 가는 길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울 같으면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이곳 교통사정은 장담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1시간 동안 시내 관광을 하기로 하고 우선 근처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 지역은 카이로 시내를 흐르는 라일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이었다.

거대한 관광도시답지 않게 무질서하고 지저분한 카이로 시내풍경

카이로 시내는 전반적으로 지저분한 도시였다. 상주인구가 1700만 명이라는 세계최대의 도시는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도 심하고, 최신형 빌딩과 함께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아파트가 공존하고 있었다.

“조금 전에 라일강 위의 다리를 건너올 때 바라본 빌딩은 아주 최신형이던데, 저 빌딩은 아차하면 무너질 것처럼 보이는군요, 저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까?”

골목에서 약간 넓은 거리로 나오자 길가에 정말 철거하려고 방치해 놓은 것처럼 보이는 빌딩이 서 있었다.

“그럼요, 저 정도면 아직 쓸 만한 편입니다. 저 아래층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겁니다.”

가까이 다가가자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빌딩의 아래층에는 정말 거짓말처럼 가게들이 버젓이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거리는 주거지와 상업지역이 따로 구분이 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길거리에서 가까운 낡은 아파트의 창문과 베란다 창살에는 낡은 빨래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뒷골목의 풍경은 더욱 지저분했다.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것은 보통이었고, 주변의 가게들이나 건물들, 신발 같지 않은 샌들을 질질 끌고 다니는 그들의 발과 옷차림도 지저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가난에 찌든 모습이었다.

라일강과 빌딩이 보이는 풍경
 라일강과 빌딩이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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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낡은 건물에도 아직 사람이 살고 있었다
 저렇게 낡은 건물에도 아직 사람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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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과일가게 앞에 앉아 있던 노인들 몇이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도시는 무질서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세계적인 관광도시답게 노인들도 이방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표정이었다.

어느 철제 생활용품을 팔기도 하고 수리도 해주는 가게 앞에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주인남자가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는 오가는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모습으로 신문읽기 망중한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기념품가게는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꽤 높은 값을 부르는 기념품들은 그들이 진품이라고 주장을 했지만 거의 100% 모조품이라는 것이 가이드의 귀띔이었다. 빵이나 식료품은 대체로 값이 싼 편이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우리들의 입맛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먹을 일이 없어서 사는 일행은 아무도 없었다.

눈앞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그러나

그렇게 골목길을 걸으며 그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 앞쪽에서 낡은 승용차 한 대가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 나온 남자가 그 승용차와 부딪치는 것이 아닌가.

“어! 어! 교통사고네.”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놀라서 그쪽으로 뛰어 갔다. 그런데 그 때 승용차와 부딪쳐 넘어졌던 남자가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는 일어나 옷을 툭툭 턴 다음 마침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나오려던 운전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몇 마디 말을 한 다음 그대로 가던 길을 가버리는 것이었다.

다행이 승용차의 속도가 매우 느렸고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아서 별로 다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부딪친 남자는 다리가 아픈지 조금 절룩거리며 걷는 모습이었다. 많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충격은 상당히 컸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어이없는 광경이었다. 아무리 많이 다치지 않았다고 해도 절룩거리며 그냥 가버리다니. 우리나라였다면 절대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차에 부딪쳐 넘어졌으니 병원으로 실려 갔을 것이고, 적어도 며칠간은 보험료를 받으며 각종 검사를 다 받았을 테니까 말이다.

뒷골목 가게주인의 신문읽기 망중한
 뒷골목 가게주인의 신문읽기 망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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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시내 뒷골목 풍경
 카이로 시내 뒷골목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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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뿐만 아니라 주요 거리에도 차도의 중앙선만 희미하게 보일 뿐 차선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니 어지간한 도로는 차선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었다. 뒷골목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사람들과 차들이 그저 적당히 타협하며 움직이고 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아니 이렇게 무질서해가지고서야 어디 도시라고 할 수가 있겠나. 날마다 교통사고도 많이 나겠네요?”

일행들이 너무나 무질서한 도로와 뒷골목을 바라보며 의문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만일 이곳이 우리 서울이라면 정말 교통사고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그럴 것 같지요? 그러나 실제로 교통사고는 아마 서울보다도 더 적게 날 걸요.”

이게 무슨 소린가, 무질서의 극치를 보는 것 같은데 교통사고가 별로 많지 않다니.

“이곳 사람들은 이런 무질서에 그만큼 익숙하거든요. 흐름이 느리고 속도를 낼 수 없을 뿐이지 교통사고는 별로 없습니다.”

하긴 조금 전에 골목길에서 발생한 접촉사고도 우리나라였다면 분명히 교통사고 기록에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렇게 툭툭 털고 가버렸으니 교통사고 통계에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고 문화였다.

골목길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대체로 무덤덤한 표정들이었다. 외국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 같았다. 그러나 골목길에서 만난 몇 명의 어린이들은 우리 일행들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주변에서 한 시간을 살펴보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버스는 다시 라일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넜다. 다리 입구 양쪽에는 거대한 돌로 만든 사자상이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강폭은 예상보다 그리 넓지 않았다.

묘지지역 어둠 속에서 죽은 영혼들과 함께 사는 빈민들의 삶

버스가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편으로 성벽 같은 담장이 쭉 이어진 모습이 보인다. 옛 성벽이냐고 물으니 성벽이 아니라 묘지지역이라고 한다. 시내 한복판에 묘지라니 우리들로서는 매우 낯선 풍경이었다.

짐을 싦은 마차와 자동차가 함께 달리는 거리
 짐을 싦은 마차와 자동차가 함께 달리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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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을 타고 가는 사람들과 거대한 모스크 풍경
 트럭을 타고 가는 사람들과 거대한 모스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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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은 위험해서 이방인들은 낮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곳입니다.”

묘지지역인데 왜 관광객들이 들어갈 수 없을까?

“저곳은 옛날의 묘지지역인데 빈민들이 칠십 여만 명이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각종 범죄가 들끓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가이드는 자신도 아직 그곳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고 한다. 묘지지역은 굉장히 넓은 지역이어서 성벽 같은 담장은 한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몇 년 전에는 정부 당국에서 빈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려고 했지만 따르지 않아 수도와 전기 공급을 중단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거주민들이 떠나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다시 수돗물만 공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저 안에 사는 사람들은 전기가 없어서 어떻게 사나요?”
“전기 공급이 안 되고 있지만 그냥 살고 있답니다. 엄청나게 불편하겠지요, 그렇지만 빈민들이기 때문에 어디 다른 곳으로 갈 곳이 없어서 그냥 살고 있는 것이지요.”

70여만 명이면 작은 인구가 아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죽은 영혼들과 전기도 없이 함께 살고 있는 셈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도 버림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버스는 시내의 넓은 도로를 별로 막히지 않고 달렸다. 이런 속도로 달리면 공항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간선도로의 로터리가 저만큼 보이는 지점에서 버스가 멈추어 섰다.

뒤얽힌 차량들, 아무도 교통 정리하는 사람이 없는 거리

그런데 버스가 움직일 줄을 모른다. 잠깐이 아니었다. 10분, 20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운전석이 있는 앞쪽으로 나가 전방을 살펴보았다. 로터리 일대는 차량들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서로 뒤엉킨 차량들이 먼저 빠져 나가려고 혼잡이 극에 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을 정리해주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경찰들도 몇 명 보였지만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로터리를 중심으로 다섯 갈래로 뻗어나간 도로들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차량들이 서로 얽혀서 엉망진창이 되고 만 것이다.

버스는 그런 속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30여분만에 로터리를 벗어났다. 그런데 공항에 가는 동안 비슷한 현상은 두 번이나 더 발생했다. 너무 일찍 도착하여 지루하게 기다리게 될 줄 알았던 우리 일행들은 비행기 시간에 맞춰 도착하게 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사람들과 차량들이 뒤엉킨 거리 풍경
 사람들과 차량들이 뒤엉킨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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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처럼 보이는 저 담장 너머는 빈민들이 사는 묘지지역
 성벽처럼 보이는 저 담장 너머는 빈민들이 사는 묘지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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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는 공항에 먼저 가 있는 현지인 가이드 얼빵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조금 늦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앞으로의 길에서나 막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밖에는.

만약 폐차 직전의 낡은 승용차가
당신이 새로 장만한 고급 벤츠승용차를 들이받았다면?

“제가 문제를 하나 내겠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고급 벤츠승용차를 새로 구입해서 몰고 나왔는데 갑자기 낡은 승용차가 뒤에서 들이받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가이드 이 선생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일행들은 그저 도로가 막혀서 초조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하는 말이려니 했을 뿐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가 나겠죠?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사고를 낸 운전자는 보험처리도 곤란할 것이고, 차량 수리비로 엄청난 돈이 들어가겠지요? 그러나 이곳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고 운전자는 우선 뒈지게 얻어맞아야 합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사고를 냈다고 얻어맞다니. 그런데 가이드의 말은 정말 의외였다. 그런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를 입은 고급승용차 주인은 우선 밖으로 나와 사고를 낸 운전자를 끌어낸 다음 실컷 두들겨 팬다는 것이었다.

때리는 사람이나 맞는 사람이나 당연히 받아들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주변에서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 어느 정도 화가 풀릴 때쯤 해서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말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때리던 사람도 손을 거두고, 매 맞은 사람은 코피를 흘렸으면 코피를 닦은 다음 미안하다고 꾸벅 인사를 하고 가면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그것 참 야만적이네. 사고 냈다고 마구 두들겨 패다니...”
“아니 어쩌면 인간적이기도 한 것 같은데요. 그렇잖아요? 우선 화가 나는 만큼 화풀이를 할 수 있고. 잘못한 사람도 당연하게 매를 맞고, 그걸로 끝이라면 오히려 깔끔한 것 아닌가요?”

그럴 듯한 해석이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다본 도로에는 수많은 차들이 느슨하게 달리고 있었다.

그 많은 차량들은 대부분 우리나라에서라면 이미 폐차처분 되었을 낡은 것들이었지만 가뭄에 콩 나듯 고급승용차들도 끼어 있었다. 인간들의 세상에 불공평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란 말인가.

고급빌딩과 고급 아파트,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이는 낡은 빌딩, 옛날의 묘지에서 전기공급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빈민들, 그리고 고급승용차와 폐차되었어야 할 낡은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 차량들이 뒤엉켜도 정리하는 사람도 없는 무질서의 거리. 카이로의 풍경이요 그들의 삶의 모습이었다.

차선이 없는 도로와 시내 중심가 거리 풍경
 차선이 없는 도로와 시내 중심가 거리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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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의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 거대할 뿐만 아니라 정밀한 수학적 계산에 의하여 만들고 쌓은 피라미드를 유산으로 가진 나라. 수천 년 전에 꽃피웠던 그 찬란한 문명인들의 후손들이 사는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도저히 믿어지지 풍경이었다.

우리들을 태운 버스는 그래도 막히고 뒤엉키는 도로를 어렵게 달려 다행히 늦지 않게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걱정하고 있었던지 며칠 동안 정들었던 엉성한 현지인 가이드 얼빵이 활짝 미소를 지으며 우리들을 반겨준다.

2주 동안의 이집트와 중동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공항에서 카이로에 체류 중인 한국인 교포가이드 이 선생과, 현지인 가이드 얼빵과의 이별로 끝을 맺게 된 것이다. 일본의 오사카 행 이집트 국적기인 비행기 트랩을 오르는 카이로 공항도 어느새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지난 1월 하순부터 2월 초순에 걸쳐 2주간 다녀온 아프리카 북부의 이집트와 중동 3개국 여행기는 다음(69회) 회로 끝을 맺습니다.


태그:#이승철 , #카이로, #라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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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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