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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지역의 스핑크스상
 기자지역의 스핑크스상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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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수수께끼 하나 내 볼까요?”

피라미드를 구경하고 스핑크스를 보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가이드가 난데없이 수수께끼를 얘기를 꺼낸 것이다.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유적지는 굉장히 넓은 지역이어서 스핑크스 지역은 상당히 멀리 바라보였다.

“뭔데요? 한 번 내보세요?”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이 뭘까요?”

가이드의 수수께끼를 듣자 일행들이 싱겁다는 듯 웃는다. 너무나 유명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였기 때문이다.

“스핑크스가 자신의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알아맞히지 못하는 사람들을 잡아먹었다는 그 수수께끼잖아요?”

모두들 잘 아는 이야기여서 수수께끼는 너무 싱겁게 끝났다.

“그런데 그 수수께끼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시기가 아침, 낮, 저녁이 아니라, 어렸을 때와 자란 후, 그리고 노인이 된 후로 해야 사람이라는 정답과 맞아떨어지거든요.”

그러고 보면 스핑크스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여 정답을 맞히지 못하게 해서 잡아먹었던 모양이다.

스핑크스가 자살했다고?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는 결국 오이디푸스가 정답을 알아맞히자 바위 밑으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일행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이드를 쳐다본다. 수수께끼는 알고 있었지만 스핑크스가 자살했다는 것은 처음 듣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스핑크스도 별게 아니었네. 그렇게 쉽게 자살해 버렸다면.”

스핑크스라는 이름의 뜻은 그리스어로는 ‘교살자’라는 뜻이고 이집트어로는 ‘살아 있는 형상’이라는 뜻이다. 그리스어의 뜻은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스핑크스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집트어의 뜻은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유적지로 들어오는 관광객들
 유적지로 들어오는 관광객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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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 가족 관광객들
 인도인 가족 관광객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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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스핑크스 앞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 두 앞 발 사이에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습니다. 그 비석에도 전설이 하나 전해 오고 있지요.”

기원전 1400년경에 투트모스 4세가 아직 왕자시절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한 후 지쳐서 스핑크스 머리 밑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스핑크스가 꿈에 나타나 “숨 막히는 모래에서 나를 꺼내주면 왕이 되도록 해 주겠다”고 말한 것이다. 투트모스 4세는 꿈에서 깨어난 후 머리만 남기고 몸통이 모두 모래에 묻혀 있는 스핑크스를 모래를 치워 꺼내 주었다고 한다.

후에 왕이 된 투트모스 4세는 스핑크스의 두 발 사이에 그 꿈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다고 하는데 그 비석이 오늘 날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스핑크스의 형상은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몸이다. 절대군주였던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이다.

우리들이 다가가고 있는 스핑크스는 기원전 2650년경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제4왕조 카프레왕의 피라미드에 딸린 상징적인 구조물이다. 이 스핑크스는 만들어 세운 것이 아니라 자연암석을 조각한 것이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얼굴은 많이 훼손되어 있었고 엉덩이 부분은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스핑크스의 전체 길이는 70m, 높이는 20m, 얼굴 너비가 4m나 되는 거상이었는데, 상당히 흉측하게 훼손상태가 심한 얼굴은 카프레왕의 생전의 얼굴이라고 한다. 스핑크스상의 근처에 이르렀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시내 쪽에서 다가온다.

가까이 다가선 그들을 보니 그들도 우리처럼 이방인 관광객들이었다. 내가 그들의 사진을 찍자 그들이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노라'고 말하자 자신들은 '인도에서 왔다'고 하면서 악수를 청한다. 처음 보는 이방인들이었지만 반가운 표정의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스핑크스 유적지 풍경
 스핑크스 유적지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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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없이 정교한 돌구조물
 빈틈없이 정교한 돌구조물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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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은?”

그런데 악수를 하면서 그들이 내게 이름을 묻는 게 아닌가. 내가 이름을 가르쳐 주자 그도 자신의 이름을 댄다. 그는 다른 우리 일행들과도 인사를 했는데 자신의 일행들 몇 사람을 일일이 소개했다, 특이한 것은 그들과 인사할 때 하나 같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상대방의 이름을 묻는 것이었다.

그들과 헤어져 스핑크스 지역 안으로 들어섰다. 스핑크스 유적은 윗부분이 대부분 무너져 내린 모습이었지만 아랫부분의 돌 구조물들은 아직도 아주 탄탄한 모습이었다. 더구나 돌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듬어서 짜 맞추듯 쌓아 놓았는지 빈틈없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반가운 표정으로 우리를 대하는 친절한 인도인들

그러나 스핑크스가 보수공사 중이어서 아주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었다. 거대한 바위를 깎고 다듬어서 만든 스핑크스상은 전체가 하나의 바위덩어리인 셈이었지만 수천 년의 오랜 풍상에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놀라운 것은 스핑크스상의 아랫부분 바위를 뚫어 장제전을 만들었다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스핑크스 유적을 둘러보고 있을 때 또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우리들 근처로 몰려 왔다.

그런데 그들도 우리들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우리들이 '한국에서 왔노라'고 말하자 무척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악수를 청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자신들의 일행들이 모두 가까운 가족들이라고 소개 했다.

인도인 관광객들과 일행 세사람
 인도인 관광객들과 일행 세사람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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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 관광객 모녀
 인도인 관광객 모녀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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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은?”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도 자신들의 이름을 대며 우리들의 이름을 묻는 것이었다. 그들의 물음에 웃으며 이름을 말해주자 그들은 우리들의 이름을 한 번씩 외워보며 더욱 반갑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저 사람들은 왜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묻지요?”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지나치자 일행 한 사람이 의아한 듯 묻는다. 사업상 만난 사이라든가, 단 몇 시간이라도 동행 할 사람이라면 서로 이름을 알고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스쳐지나가는 사람의 이름을 물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건 그들의 문화겠지요. 언제 어디서건 인사할 때는 항상 상대방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는 것이….”

우리들과는 다른 그들의 문화려니 이해하고 넘어 갔다. 그러나 사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의 이름이야 순간적으로 잊어버리고 말 것이 뻔한 일 아닌가. 그런데 꼭 이름을 묻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은 어쩔 수 없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자리 잡고 있는 기자 지역은 드넓은 평야지대여서 시야가 시원하게 열려 있었다. 산이라고는 멀지 않은 곳에 낮은 구릉이 하나 보일 뿐이어서 거대하게 뾰족 솟아 있는 피리미드가 오히려 산처럼 보였다.

다만 인구 1700만 명이라는 세계 최대의 도시 카이로 외곽지역이어서인지 하늘이 희부연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도시에서 내뿜는 극심한 매연 때문일 것이다. 스핑크스를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먼저 나온 일행들이 저만큼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스핑크스 유적지와 주변 풍경
 스핑크스 유적지와 주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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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를 찾은 관광객들
 유적지를 찾은 관광객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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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이승철!”

앞서 걸어가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그쪽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분명히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발음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이 낯선 땅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른단 말인가. 우리 일행들 중에서는 내 이름을 그렇게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치듯 인사하고 지나친 외국인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다니

“이승철! 이승철!”

발걸음을 멈추고 또 다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아는 얼굴이 아무도 없었다, 그 때 낯모르는 이방인들 중에서 한 사람이 손을 들며 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누굴까? 내 이름을 부르며 앞으로 나오는 사람을 나는 금방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내 앞에 서며 손을 내민다. 인도인이었다. 그런데 또 헷갈린다. 길에서 만나 인사한 사람인지, 조금 전에 유적지 안에서 만난 사람인지 분명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건 반가웠다. 스치듯 지나치며 인사만 나눈 외국인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나는 그가 어느 장소에서 인사를 나눈 사람인지조차 확실히 기억하지 못하는데 말이다.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악수를 나눈 그가 종이를 꺼내 자신의 전화번호와 집 주소를 적어 준다. 나도 그에게 내 전화번호와 집주소를 적어 주었다. 그는 나의 서툴고 어색한 영어에 비해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런 일로 잠시 지체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앞서간 일행들이 나를 부른다. 기념촬영을 한다고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유적지 전경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유적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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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그는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말을 인사말로 대신하며 손을 흔들었다. 그 인도인과는 그렇게 헤어진 후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밝은 표정과 친절한 행동은 지금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스핑크스를 돌아본 우리 일행들은 다시 카이로 시내의 다른 관광지를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기 위해 주차장에 도착하여 뒤돌아본 유적지 저 멀리 수수께끼 같은 스핑크스와 산처럼 높이 솟은 피라미드가 우리들을 전송하고 있었다.


태그:#이승철, #스핑크스, #인도인들, #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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