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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첫 대선을 앞둔 대학생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일부에서는 대학생의 보수화를 말하며 예전과 달라진 세태를 말합니다. 진보 성향의 싱크탱크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원장 손석춘)에서는 대학생운동 위기의 원인을 90년대 중반 이후 몰아닥친 '대학의 신자유주의화'에서 찾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시대 대학생의 현주소와 학생 운동의 대안을 모색하는 새사연 기획기사를 5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2005년 전남대생 30여명이 서울 세종로정부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다 제적된 9명에 대한 제적 철회와 국립대 통폐합 추진 중단을 촉구하며 등록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동전으로 바꿔와서 시위를 벌였다.
 2005년 전남대생 30여명이 서울 세종로정부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다 제적된 9명에 대한 제적 철회와 국립대 통폐합 추진 중단을 촉구하며 등록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동전으로 바꿔와서 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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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우리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시대' 대학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모두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던 대학의 현실을 조금 장황하게 살펴본 이유는 오늘의 대학이 80년대의 대학과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나날이 '선택'의 연속이었던 80년대 대학생

치열했던 혁명의 시대. 우리는 80년대를 그렇게 기억한다. 대학은 TV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캠퍼스의 낭만만 있는 곳은 아니었다. 일상적으로 최루탄과 화염병이 날아다니고 학생시위가 있는 날이면 학교 앞 상점이 모두 자연스레 셔터를 내리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어느 정도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는 것이었다. 최고의 직장은 아니어도, 적어도 장래에 먹고 살 걱정은 필요 없는 특권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 대학생들은 항상 선택해야 했다. 체제에 순응하고 난 후 얻어지는 안정적 미래와 체제에 저항하면서 맞닥뜨릴 험난한 여정 사이에 중간은 없었다.

선택이었기 때문에 헌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결단에 대한 확고한 믿음만이 그 험난한 여정을 감당할 수 있게 했다. 대학은 그런 선택을 집단화하는 공간이었고, 새로운 대항문화와 대항이데올로기 창출의 근거지가 되었다.

노동자와 농민 등 다양한 피억압 부문은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분출되는 다양한 지원을 통해 자신을 조직할 수 있었다. 한국의 민주화는 안정된 미래를 버린 그 헌신성에 분명 큰 빚을 지고 있다.

강고한 민주화 투쟁 속에서 겉으로 보이는 독재는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빈자리를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체적 형상은 없지만 거리에서, 가정에서, 대학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경제정책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삶의 패턴을 변화시켰으며 개인과 개인의 관계형태를 바꿔 놓았다. 그리고 예외 없이 대학에도 침투했다. 우리가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이 흐름은 '자유'라는 이름과 걸맞지 않게 국경을 초월하는 자본에 의한 새로운 독재시대를 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스멀스멀 대학가로 기어들기 시작한 신자유주의는 학생운동에 대한 국가폭력의 집중과 함께 대학을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었던 20년 전의 대학생들처럼 오늘날의 대학생들도 바쁘게 살아간다. 엄청난 등록금에도 모자라 온갖 사교육을 감당하기 위해 높은 이자율의 학자금 대출에 기대거나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에 시달리고 있다.

대학공동체? 저항문화? 이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에게 자리를 내어준 지 오래다. 대학생과 대학수의 폭발적 증가는 대다수 학생들의 교육수준에 맞지 않는 하향 취업만을 강요한다.

그나마 몇 번의 취업시도를 위해서는 엄청난 사교육비가 다시 투자된다. 상대평가제로 인해 대학에서도 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21세기 대학생들은 80년대 혁명가만큼이나 바쁘다.

대학의 구조변화에 주목하라

대학생이 느끼는 구조적 모순이 심화되었는데도 이를 해결할 학생운동은 오히려 쇠락하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있는 학생운동카페(http://cafe.daum.net/HAKSANG)의 자료에 따르면 2007년 4월 현재 운동권 성향의 총학생회는 전체 조사대상 168개교 중 39개(23%)에 불과했다. 학생운동의 탄압이 본격화했던 10년 전만해도 약 75%의 대학 총학생회가 운동권이었다.

그동안 한국학생운동이 위기에 처한 원인에 대해서는 단일사건으로는 최대인 5848명이 연행된 1996년 한총련 연세대사건부터 시작된 국가의 물리적·이데올로기적 억압 때문이라거나, 운동 자체의 잘못된 전략·전술, 관료적 조직운영이 원인이라는 진단이 제기되어 왔다. 또한, 과거 다른 부문운동이 해야 할 역할을 대신했던 학생운동이 부문운동의 고양과 함께 원래 위상을 찾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런 해석은 모두 타당성을 지니고 있고, 대학생운동의 쇠락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설명이 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국가권력의 물리적·이데올로기적 억압이라는 측면에서만 문제를 접근하게 되면 과거에 비해 억압의 강도가 현저하게 낮아진 최근에는 왜 학생운동이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학생운동 내부의 비민주성과 관성적 경향, 잘못된 전략·전술이 위기의 원인이라는 시각도 특정 학생운동조직의 실패를 설명할 수 있어도 전체 운동의 위축을 설명할 수 없다. 전체운동의 '정상화'로서 대학생운동영역의 축소를 설명하려는 시도도 대학 사회 내에서 점차 커져가고 있는 운동과 대중의 괴리감을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대학이라는 공간 자체의 구조변화다. 20년 전의 대학과 오늘의 대학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공간이며 이 속에서 생활하는 대학생도 과거와 사회적 지위가 다르다.

오늘날 대학생의 사회적 지위는 어느 정도 미래가 보장된 특권층이 아니라 평범한 예비노동자, 예비실업자로 추락했다. 대학생이 처한 고통과 모순은 다른 문제를 돌아볼 기회를 주지 않았다. 또한 자신들을 짓누르는 사회 구조적 억압의 실체가 눈앞에 명확히 드러나 있지도 않다.

공간과 주체가 달라졌다면, 대학생운동도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자기가 맞닥뜨린 문제들이 사회전체를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구조변화의 파생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자기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운동대중화를 기대할 순 없다

운동의 확산은 자기가 처한 현실의 문제를 깨닫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68혁명의 부활이라고까지 일컬어졌던 프랑스 대학생의 최초고용계약법 반대 투쟁은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며 출발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대학생만의 집단이기주의적 요구가 아니라 정부의 신자유주의적인 실업대책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에, 노동계급을 비롯해 동일한 지향을 가진 여러 부문의 지지와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학생수가 30만 명에 이르는 멕시코 우남대학 사례도 마찬가지다. 1910년대 멕시코 혁명 이후 노동자·빈민의 자녀들이 무상으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세운 우남대학에 IMF가 정부보조금을 삭감하라고 요구하자, 우남대학 총장은 60~80달러의 수업료 부과 방침을 밝혔다. 

당연히 학생들의 강한 저항이 시작됐다. 1999년 2월 26일 수업료 부과에 반대하는 최초의 시위가 1만5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일어난 것을 시작으로, 약 8만 명의 학생들이 매주 시위를 벌이고 4월 19일부터는 동맹휴업에 돌입해 결국 당시 집권당이었던 제도혁명당(PRI)으로 하여금 대학 총장에게 양보 조치를 취하라는 명령을 내리도록 만들었다.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해서 학생들이 무조건 순종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청년들은 불합리한 현실을 명확하게 깨달을 때 어느 계급·계층보다 더 헌신적이고 강고하게 싸움에 나선다.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가에서 등록금 인상에 대한 이슈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2000년에는 등록금 인상반대투쟁을 매개로 전체 학생총회가 성사되거나 대중 집회가 성황리에 개최된 사례가 많았다.

또한 정파 간 알력다툼이 극심했던 학생운동세력도 오랜만에 대중적인 공동투쟁을 성사시켰다. 많은 대학에서 납부연기, 동전 납부 투쟁, 벽돌쌓기, 항의엽서 보내기, 검은 옷 입기, 대학본부 업무 방해 등 다채롭고 새로운 운동방식을 선보여 많은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해 내는 등 침체 일변도를 걷던 학생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지난 3월 한양대 입학식에서 총학생회측의 주도에 따라 입학식에 참석한 신입생과 학부모들이 등록금 인상 반대 뜻을 담은 종이비행기를 접어 행사장으로 날려 보내고 있다.
 지난 3월 한양대 입학식에서 총학생회측의 주도에 따라 입학식에 참석한 신입생과 학부모들이 등록금 인상 반대 뜻을 담은 종이비행기를 접어 행사장으로 날려 보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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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등록금 반대 투쟁의 경우, 다른 어떤 이슈보다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해 내고 있지만, 여전히 단지 몇 퍼센트 인상이라는 숫자 싸움에만 치중할 뿐 근본 원인인 신자유주의 정책기조에 대한 반대로 상승하지는 못하고 있다. 등록금 인상의 근본 원인을 회피한 채, 단순히 인상률 싸움에만 치중하는 등록금 투쟁은 대학생들이 처한 현실의 근본을 건드리지 못하는 미봉책일 뿐이다.

다양한 학생운동그룹들은 이러한 주장에 원론적으로는 동의하면서도 대학의 처지 문제를 보다 근본적인 정치문제로 연결시키는데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학내 문제와 학외 문제라는 고질적인 이분법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대학생운동은 정치·사회적 이슈로 출발하여 대학 내 문제를 결합시키는 형태가 아니라, 대학생이 처한 현실을 사회구조적 문제의 일환으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회운동적 학생운동을 계승해야

대학생운동이 자기 문제 해결을 중심에 두고 활동해야 한다고 해서 '자기들만의 운동'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학생이 처한 현실적 문제가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전체의 신자유주의화'에서 비롯되었다면, 이를 극복할 주체도 신자유주의로 인해 고통 받은 모든 이들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대학생운동이 80년대 대학생들처럼 사회의 근본모순에 접근해나가는 '사회운동적 성격'으로 상승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1980~90년대 영국과 미국의 보수정권 하에서 노동조합운동들은 여타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포기하고 국가와 자본의 공세에 대해 양보교섭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오히려 노동운동이 위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으로부터의 지지도 획득하지 못했다.

이 사례는 대학생운동 또한 여타 사회운동과의 튼튼한 연대를 통해 형성되지 않으면 운동의 확장은 저지되고, 대학생들의 지지획득에도 명백한 한계가 조성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준다.

프랑스에서 최초고용계약법이 철회될 수 있었던 것도 대학생들의 선도투쟁 때문이기도 하지만, 프랑스의 모든 노동조합이 학생들의 주장에 동의하고 전 사회적인 연대투쟁이 성사되었기 때문이다. 10주간에 걸친 대규모 투쟁과정에서 노동자들과 대학생들은 이것이 어떤 제도 하나를 막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을 저지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같이 했다.

노동계급의 투쟁이 다른 사회세력들로부터 고립되어 전개된다면 집단이기주의로밖에 비춰지지 않듯이, 대학생들의 처지 개선 투쟁도 단순한 자신들의 처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정치적 지향을 가져야 한다.


지난해 3월 가장 비싼 등록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이화여대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검은색 옷 입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가장 비싼 등록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이화여대 학생들이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검은색 옷 입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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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대학생운동은 희망이다

대학생운동은 한 때 민주화의 기수로, 사회변혁의 선도적 주력군으로 칭송받다가 현재는 마치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정치적 수준에서 대학생 보수화가 진척되고 있는 상황에서 학생운동을 들먹이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으로 조롱받기 일쑤다.

그러나 학생운동이 없었다면 오늘의 현실은 어땠을까? 과연 허울뿐인 민주주의나마 존재할 수 있었을까? 신자유주의화 현실 속에서도 대학생운동의 재도약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것은 새로운 시대는 항상 학생들의 함성으로 열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생들이 선도적인 목소리를 내온 분야는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반북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억압적 국가통치체제를 정당화했던 냉전체제는 학생운동진영의 문제제기를 시작으로 오늘날 6·15공동선언을 탄생시켰으며 2차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산업화의 희생양으로만 치부되었던 노동운동도 학생들의 헌신적인 현장투신을 통해 스스로를 조직하고 사회변화의 일 주체로 우뚝 섰다.

이런 운동의 성과는 역설적으로 대학생운동의 위기를 낳기도 했지만 자기 문제를 돌아볼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도 대학생의 헌신적 도움이 필요한 공간과 이슈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러나 바깥일을 보느라 집안 문제를 돌보지 않아 파탄에 이른 가정처럼 신자유주의화된 대학의 현실은 헌신적 대학생운동의 역할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대학생이 대학생문제를 우선 돌아보게 하기 위해서는 여타 운동부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주기보다 자기 문제를 돌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해줘야 한다. 또한 대학생운동과의 적극적 연대를 통해 사회 근본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합쳐야 한다. 이제 대학생운동은 여타 부문운동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대상이 아니라 특수한 자기문제를 가진 연대의 한 주체로 인식되어야 한다.

대학생운동은 이제 그동안 개별적으로 주장되어왔던 대학평준화, 등록금 후불제, 국가고용제 등의 대안을 심도 깊은 연구와 토론, 소통을 통해 공동의 대안으로 모색해야 하며, 사회적 진보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

대학생운동의 새로운 도약, 르네상스는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자 결과가 될 것이다. 이제 대학생운동은 학내문제 따로, 정치문제 따로의 이분법을 집어 던지고, 자기가 처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제기하는 새로운 미래의 희망으로 거듭나야 한다. 

신자유주의로 고통 받는 국민이 80~90퍼센트에 이르는 현실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청년들에게 희망을 건다. 청년이 서야 조국이 산다는 말은 언제나 유효하다. 

덧붙이는 글 | * 손우정 연구원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상임연구원입니다.



태그:#대학생, #대학생운동, #20대,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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