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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17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마지막 대선예비후보 합동연설회가 끝난뒤 이명박 후보 지지 대학생들이 '취직 좀 시켜주면 안되겠니' 플래카드를 내걸고 '이명박'을 연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보수화된 대학생.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학생의 표심이 화두가 되고 있다. 이제까지 항상 개혁적·진보적 후보의 '표밭'으로 인식되었던 20대. 그러나 지금 상황은 다르다.

이미 2006년 초부터 20대는 보수정당을 가장 많이 지지하고 있다. 과거 '진보적' 대학생이 '보수정당'을 경멸해 마지않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두고 "대학생이 보수화됐다"고 평가하는 것도 이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의 개념 자체를 다르게 설정하기 때문이다.

직·간접적으로 강도 높은 정치적 학생운동을 경험한 30·40대는 진보와 보수를 현실 정치에 대한 입장 차이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쉬운 기준은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가' '어떤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가'다. 이런 입장에서는 보수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대학생 보수화의 뚜렷한 징표다.

반면, 현재 대학생은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서 진보와 보수를 구별한다.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 구태의연함에 대한 거부, 자유분방함이 진보의 좌표다. 어떤 정치적 지향을 가지고 있건, 그것을 '유일한 답'으로 제시하는 것 자체가 보수다. 이런 의미에서 30·40대가 진보적이라고 보는 가치를 현재의 대학생은 '보수적'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우리가 보수됐다고요? 아저씨들이나 잘하세요!

▲ 지난해 6월 서울 용산 국방부 앞에서 열린 평택미군기지 확장 반대 집회에 참석한 한총련,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등 소속 대학생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실제 정당지지율이나 대선 후보 지지율과 달리 국가보안법 등 개인의 사고를 억압하거나 호주제·혼전성관계·성평등·조직생활에서 개인의 권리 등의 이슈에선 가장 진보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오늘날 대학생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현재 대학생이 추구하는 진보의 가치는 '자유주의'에 가깝다. 어떤 정치를 지향하건, 결코 변하지 않는 뚝심을 30·40대는 '신념의 강자'로, 대학생들은 '구태의연함'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현상에 대해 대학시절이 어느 때보다 격렬했고 자기희생적 삶으로 가득했던 30·40대 선배들은 난감해 한다.

청년실업 확산과 폭발적 등록금 인상 등 대학사회의 모순이 어느 때보다 심화되고 있는데도 대학생운동은 '과거의 영광'을 되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간혹 사회문제와 관련된 집회에서도 예전과 같은 '학생 대오의 물결'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대학생의 모습이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명확하게 정리되지도 않은 진보와 보수의 잣대를 들이대고 대학생의 현재를 평가하기보다 대학사회에 몰아닥친 근원적인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늘의 대학생이 80년대의 대학생과 달라진 것은, 오늘의 대학이 80년대의 대학과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 근원적인 변화는 '대학의 신자유주의화'로 설명할 수 있다. 대학이란 공간에는 우리 사회 그 어느 영역보다 먼저 신자유주의적 광풍이 몰아쳤다. 급격한 구조적 변화는 오늘의 대학과 대학생의 모습을 80년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바꿔 놓았다.

이제 90년대 중반 이후 대학생이 직면한 구조적 변화의 실체가 무엇인지, 또 이를 통해 대학과 대학생이 추구해야 할 대안적 방향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대학의 구조변화 신호탄, 5·31 교육개혁안

대학과 대학생의 사회적 지위가 급격한 변화를 경험한 것은 90년대 중반이다. 이런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은 김영삼 정부가 발표한 '5·31교육개혁안'이었다.

'5·31교육개혁안'은 교육경쟁력 강화가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시각에 입각하여 세계화시대에 걸맞은 개혁·개방을 추구한 것이다. 그 핵심 전략은 '공교육 시장화(marketizing)'와 '학교 민영화(privatization)'에 있다.

공교육 시장화는 학교와 교원을 '교육서비스'의 공급자로, 학생·학부모·기업을 소비자로 보는 접근방식으로 공교육체제 내의 비용-편익의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것이다.

특히 학교와 교원 등 공급 측면에 시장적 경쟁조건을 마련함으로써 교육 서비스의 질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되었고, 소비자 측면에서 양질의 교육과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공교육체제에 시장 메커니즘을 구현하는 데 필수 조건으로 설명했다.

학교 민영화 전략은 학교운영을 정부가 독점할 게 아니라 민간에 맡겨서 그 효율성을 극대화하자는 구상으로 공기업 민영화 정책과 일맥상통한다.

▲ 지난 2월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전국대학생 교육대책위 소속 학생들이 '1년 1천만원 등록금 시대'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교육을 상품화하고 시장의 원리를 도입하여 효율성과 교육의 질을 제고하겠다는 발상은 대학설립부터 자유화했다. 1996년 자유화 조치 이후 대학생 수는 급격하게 증가해 2002년 300만 명을 돌파했고,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은 2006년 현재 82.1%에 이르렀다.

1975년 인구 1만 명당 66.7명에 불과했던 대학생은 2006년엔 623.2명으로 9배가 넘게 늘었다. 이제 대부분 대학생은 예전처럼 특권적 엘리트집단이라기보다 평범한 '예비 노동자'로서의 지위하락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과 대학생의 양적 확대는 질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대학생들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대학의 변화를 직접 느낄 수 있었던 첫번째 사례는 학생운동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과 함께 도입되기 시작한 학부제였다.

학부제, 치열한 내부경쟁을 강요하다

학부제는 학과 단위였던 신입생 모집 단위를 광역화하여 전공학과 혹은 전공영역에 따라 몇 개의 학과를 묶어 나눈 체제이다. 이는 학제 간의 벽을 허물어 지식의 통합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1996년 전국의 80여개 대학에서 시행되었다. 이어 1997년에는 51개 대학이 추가로 학부제를 도입하여 588개 학과를 통폐합하고 27개의 학부가 설치되는 등 점차 모든 대학으로 확산되었다.

교육부는 학부제로의 전환을 재정지원과 연계시킴으로써 기계적인 통폐합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교육을 제조자와 구매자 간의 자유의지와 협상결과에 따라 운영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철학이 강조되었고, 대학의 고유한 공동체 문화의 파괴와 비인기 기초 학문의 말살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 이태정 교수가 1996년부터 학부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한 4년제 대학교 인문과학부의 전공별 재적생수 증감을 연도별로 조사한 것이다. 학부단위로 입학한 신입생의 비율이 기존 재적생에 비해 그다지 크지 않았고 복학한 입대휴학생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컸던 1998년도를 넘어서자, 소위 인기학과와 나머지 학과 간의 재적생수 증감은 큰 폭으로 벌어졌다. 이런 경향은 다른 모든 학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 새사연
이런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번에는 학과별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대학 현실과 학생들의 전공선택권 보장이라는 취지를 절충하는 형태가 나타났다. 1~2년 정도의 학부생활 이후 다시 학과를 선택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나 청년실업의 증가로 인해 취업률이 좋은 학과와 나쁜 학과를 나누는 기준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비인기 학과는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 보장이라는 문제와 학과 존립이라는 이해관계가 절충되어 결국 전공 선택시 일정 비율로 정원을 제한하는 학부제의 변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조치는 곧 학생들 사이에 치열한 내부경쟁을 유발했다.

그동안 절대평가로 진행해 오던 학점관리제도는 상대평가로 전환되어, 학생들은 원하는 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제2의 입시를 치러야 했다. 이런 경쟁에는 학생유치를 위해 뛰어야 하는 교수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1997년 경북대학교의 경우 1학기 교양강좌 64개와 전공 85강좌가 폐강됐고, 같은 시기 서울대 자연대의 자체조사결과에 따르면 1학년 학부생의 94%가 전공 선택의 어려움, 선후배 관계, 학사행정의 미숙, 학습부담, 소속감 결여, 지나친 경쟁 유도 등의 이유로 학부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교육협의회 또한 1997년 현재 학부제를 시행하고 있는 217개 단과대학, 413개 학부, 1030개 (통합)학과의 실태에 대한 연구보고서에서 "대학별 특성에 기초한 대학 내 필요에 의해 시행되는 학부제라기보다는 교육부의 권장이나 재정지원과 대학의 재정절감을 의식하여 인위적으로 학과나 단과대학을 통폐합하여 운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교육제도의 변화가 교육의 질적인 향상을 가져왔다고도 할 수 없다. 학부제는 학과제와 달리 특정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얇고 넓은' 학문 탐색을 목표로 한다. '깊은 이해'는 대학원 과정으로 떠넘겨졌다.

폭발적인 대학생 수의 증가와 교육질의 하향화는 과거 고등학교가 차지하던 사회적 위상을 대학이 대체하도록 만들었다. 사회적 성공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던 '특권적 사회엘리트 집단'으로서의 대학은 이제 엄청난 등록금을 부담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의무교육처럼 변해버렸다.

국가폭력과 학부제로 흔들린 학생회

이런 대학사회의 변화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주체는 당시 강력한 힘으로 조직화되어 있던 학생들 자신이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묘하게도 학생운동 탄압이 증폭된 시기와 동시에 일어났다. 국가권력과 언론에 의해 대중적 이미지가 크게 훼손된 학생운동은 학부제로 인해 신입생들과의 접촉면이 축소되면서 운동조직화에도 차질을 빚었다.

학부제는 학생회의 대중조직체계를 아래서부터 파괴시켰다. '전국-지역-지구-각 학교-단대-학과-반'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던 기존 학생회 조직체계는 기층단위의 조직화에서부터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고, 대학문화의 핵심이었던 공동체문화를 함양할 다양한 토대를 잠식당했다.

▲ 2003년 8월 고려대 아산이학관에서 열린 '학생운동의 전망과 과제' 토론회.
ⓒ 오마이뉴스 권우성
국가의 억압과 지나친 노선갈등, 97년 이석씨 치사사건으로 인한 도덕적 회의 등 다양한 이유로 중간층 학생회 간부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학부제로 전환되면서 신입생과 접촉면을 잃어버리기 시작한 학생운동은 '상층화'와 '고령화' 현상이 점차 뚜렷해졌다. 이탈한 간부들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고학년들이 학교에 잔류하면서 학생운동층의 연령대가 높아졌고, 운동의 무게 중심이 대중 활동보다 조직 활동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운동집단에게 집중된 국가억압과 대중공동체 파괴는 이른바 '운동권'과 일반 대학생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살도록 만들었다.

국가폭력에 직면한 학생운동층은 '민간의 외피를 둘러쓴 독재체제' 아래 살면서 80년대 다름없는 문제의식이 여전히 중요했던 반면, 일반 학생들에게는 '취업과 좋은 학과 선택'을 위해 끊임없이 도서관을 들락거리는 것이 '생존'이었던 것이다.

사회에 대한 이런 인식차이는 대중과 학생 운동가들이 서로 다른 문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만들었다. 확산되기 시작한 문화적 괴리감은 일반학생과 잠재적 지지자, 그리고 '운동권'의 경계가 모호했던 과거와 달리 운동의 경계를 점차 뚜렷하게 만들어 버렸다.

대학의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폭발적으로 인상되고 있는 등록금, 이에 더해 엄청난 사교육비를 추가부담하고서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취업문제, 서열화된 대학 등 대학과 대학생의 사회적 지위를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시켰다.

다음 연재 기사에서는 대학의 신자유주의화에 대한 두 번째 분석인 '등록금 문제'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

[연재 기사 시리즈 순서]

① 대학사회를 강타한 신자유주의와 학부제
② 등록금 인상, 상한선이 없다
③ 힘들게 졸업하면 청년 실업자?
④ 좋은 대학가야 잘산다? 잘살아야 좋은 대학 간다!
⑤ 버릴 수 없는 희망, 대학생운동의 부활을 위하여

덧붙이는 글 | * 손우정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상임연구원입니다.


태그:#대학생, #신자유주의, #학부제, #학생운동, #학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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