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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단의 아웃사이더, 발칙한 또는 싸가지 없는 화가의 대표자로 '찍혔던' 이화백(본명 이기섭·30). 그런 그가 무시당하는 비주류가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주목받는' 아웃사이더로 미술계에서는 꽤나 알려진 화가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이화백에 대한 평가는 소수일지라도 호평이 대부분. 미국 예술 평론가 코터베이 박사는 이화백에 대한 평론에서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서 신중하고 숨 막히는 줄타기를 하는 화가로 묘사하며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이 지향하는 바를 둘 다 이루어 낸" 미래가 촉망되는 화가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큐레이터 정수진은 인상파, 19세기 러시아 화풍, 팝아트와 포스트 모더니즘적 상상력 등이 결합된 이화백만의 독특한 스타일에 주목하며 "묘한 아우라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의 발전을 꾀한다"고 평가하며 작가적 열정을 지닌 화가로 말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에는 여느 서양화가의 작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감흥과 기묘한 불편함이 담겨 있다. 한편에는 매우 엄격하고 고전적인 느낌이, 다른 한 편에서는 재치와 위트가 마음껏 발휘된 현대적인 느낌이 흐른다.


그런 재치와 위트는 키치, 딜레탕트로 작품 전체가 오해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작품 전체를 흐르는 '포스'가 발산한다. 게다가 종종 느낄 수 있는 시니컬한 기운 속에는 아련한 따뜻함이 담겨 있다. 우스갯소리로 '같기도'의 경계에서 어딘가 기묘한 위치에 불편하게 있는, 그러나 한편의 유쾌하고 짜릿한 새로운 감성의 세계에 있는 기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화백은 주목받는 젊은 신진 화가로 평가 받았고, 2005년 '이화백 회고전'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 이후 곧바로 올 상반기까지 침체기, 슬럼프를 겪었다. 여느 때와 달리 쉽게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고, 건강도 좋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녹록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날려 버린 듯, '이화백 돌아오다'를 외치며 곧 다가올 '이화백 랩소디'전을 통해 재기와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한 낮의 더위와 도시의 열기가 늦은 시간에도 사그라질 줄 모르는 늦은 여름 밤, 이화백과 맥주잔을 놓고 가벼운 '알콜 토크'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자신의 작품 활동 중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화백. '랩소디'라는 이번 전시 제목에 걸맞게 이화백의 수다 '변주'가 열정적인 톤으로 실려 나왔다.


- 전시 준비 마무리는 잘 됐는지.
"작품 준비는 다 됐는데, 언제나 그렇듯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번에 신작이 거의 대부분이라서 준비기간 중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도 받았고… 아마도 개인전 준비 중에서는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 '이화백 랩소디'라고 전시 제목을 붙였는데, 신작은 어떤 작품들인가? 뭔가 '랩소디'적인 것하고 상관 있나?
"'랩소디'… 뭐 음악에서 '변주'라고 하던가? 여튼 대충 애매모호한 제목인데…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에 인기 시리즈였던, '피크닉' 시리즈를 포함해서… '술집' 시리즈, '피로연' 시리즈 등 좀 인기 있는 시리즈를 한두 작품씩 더해 나가는… 괜히 전시 제목을 들먹여서 억지로 갖다 붙이면, 그런 시리즈의 '변주' 정도 되려나. 아참, 새로운 시리즈도 하나 만들었다. 유니폼을 입은 여성을 주제로 한 시리즈도 새로 만들었다. 여고생, 간호사, 여군… 이게 진정한 '랩소디'일지도 모르겠다."


- 코터베이 박사가 이화백에 대해서 새로운 평론을 또 쓴 것 같던데. 이번 전시 도록에 보니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지향하는 바를 동시에 이루어 내고 있는 화가, 미래가 매우 촉망되는 뛰어난 화가' 등으로 로 평가되어 있다.
"언젠가 평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한국 다기 세트를 하나 보냈는데… 아참 이거 혹시 뇌물인가? 하여간 그것 때문에 감동해서 또 평론을 잘 써 준 건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고마운 분이다. 원고료를 요구하지도 않고."


- 갤러리나 미술 평단, 언론쪽 반응이 어떤가.
"한 때 갤러리쪽하고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적도 있고… 내가 너무 까다롭게 굴었던 건지. 미술 평론가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다. 내 작품이 맘에 안 드는 건지 아니면, 내가 아웃사이더, 마이너… 이쪽이라서 평론가들하고 네트워크를 갖는 게 어려운 건가. 어쩌면 헛소리를 너무 했었나보다. 내가 하는 말 절반은 낮술에 취해서 늘어놓는 궤변 수준인데… 주요 일간지 쪽에서 연락도 왔었는데, 그림 주면 기사 써주겠다는 식으로 은근슬쩍 꼬이면서 그림이나 달라고 조르니 별로 내키지 않는다."


- 2005년 개인전에서 반응이 무척 좋았는데, 2006년에는 전시 소식이 좀 뜸했던 것 같다.
"뭐 남들 하듯 연애도 하고… 화가로서 작품도 계속하고 했는데, 뜻대로 안 나오고… 확실히 슬럼프였다. 전시 망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돈도 떨어지고 해서 미술학원 강사 자리를 하나 얻었는데 얼마 못하고 그만뒀다. 애들이 자유롭게 느끼고 그릴 수 있게 해야지…무작정 입시 테크닉부터 가르치려고 하니, 나는 못해먹겠더라. 그러다가 또 강사 자리 알아 보고 있었는데, 나도 러시아, 영국에서 공부했고 하니까… 좀 기웃 거려 봤는데, 자랑은 아니어도, 내가 러시아 국립 예술 대학 생긴 이래 200년 넘는 역사상 최초로 동양인으로는 최연소 졸업했는데 그런 건 쳐 주지도 않는 거 같았다. 학원에서는 몇 군데 미국 학교에 보내느라 정신없었다. 하여간 작품도 뜻대로 잘 안 되고, 전시도 망하고, 미술 학원 강사도 못하고… 거의 우울증 비슷한 증세까지 겪어야 했었다. 올해는 조짐이 좋다. 작품도 잘 나오고, 전시도 많이 잡히고 있고."


- 힘든 시간 보내고, 이제 다시 '부활 모드'에 들어선 것 같다. 전시도 많이 잡히는 듯하고. "이번 개인전 준비 중에 개인전이 또 하나 잡혔다. 이렇게 나가다 보면 올해만 해도 이거 저거 다 해서 10건을 넘을 것 같다. 작년에 뜸하더니 이제 여기저기서 많이 불러 준다. 이제 정말 뜨는 건가… 그런데 그거 준비 다 하려면 거의 죽었다고 봐야 된다."


- 한 때 사이가 좀 안 좋았다지만, 이제는 갤러리에서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거 아닌가.
"원래 갤러리에서는 나를 별로 안 좋아했다. 까다로운 화가라고 소문도 안 좋게 났던 것 같고… 여튼, 갤러리에서 관심을 갖는 게, 아무래도 팬들 때문인 것 같다. 언제부턴가 팬들이 하나 둘씩 늘었고 이제는 팬들이 많아지다 보니 갤러리에서도 전시회를 잡아 주는 것 아닌가 싶다. 박봉의 샐러리맨이지만 꾸준히 돈을 모아서 내 그림을 사주는 사람도 있고. 사실 그런 팬들이 고맙다."


- 이번 전시에는 신작이 많은 만큼 기대를 거는 팬들, 갤러리도 많을 텐데. 가뜩이나 최근에 미술작품을 사들이는 바람도 불고… 소위 '아트 펀드'라는 금융 상품도 생겼다.
"물론 유명 화가들 작품이 표적이 되겠지만… 여기저기서 내 그림 사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긴 했다. 이번 전시 작업 중에 전화도 여러 번 받았다. 내 작품 사겠다는데 나쁘지는 않은데, 요즘 분위기 타서 무작정 사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내가 좀 헛소리 잘 하는 특이한 화가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듣고 그림도 안 보고 그냥 사려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내 작품을 알아주고 인정해 줘서 사겠다는 게 아니라… 내 그림을 한 번도 안 본 사람인데, 후하게 줄 테니 무조건 팔라고 떼를 쓰니 이거 원. 사실 이럴 때는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쁘다. 돈 주겠다는 데 왜 안파냐, 이런 식인 거 아니겠나. 갤러리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들이 그냥 돈 된다니까 달려들고."


- 이제 거의 유명 화가 리스트에 오른 거 아닌가. 팬들도 많고, 전시도 많이 잡히고, 요즘 부쩍 그림 사겠다는 사람들도 늘었는데.
"이미 유명 화가 아니었나. 하하… 유명 화가는 무슨… 하여간, 유명해 지는 건 나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미술계에서 영원히 마이너리티에 속할 게 분명하다. 그리고 그게 더 편하다. 이미 주류 유명 화가되는 건 글렀다. 한국 미술계를 잡고 있는 명문 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어디 괜찮은 데서 줄을 잘 서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게다가 어린놈이 이화백이니 뭐니 이름 붙이고 다니고, 언론 인터뷰에서 교수 똥 닦네 마네… 불편한 소리나 하니 곱게 봐줄 리는 없을 것 같다. 유명하든 안 하든 어쨌든, 아이디어가 생기고 여건이 되는 대로, 좋은 작품 많이 내고 싶다. 이번 전시로 다시 힘도 내고."


- 2005년에 '회고전', '루트(Root)전' 이후에 이번 전시로 '이화백의 귀환'을 외치는 분위기 인데, 개인적으로 준비도 많이 하고 기대도 큰 것 같다.
"이번 전시가 아무래도 지금까지 활동 중에서 분수령이 되지 않을까 싶다. 슬럼프도 벗어나고… 작품 활동에서도 뭔가 다른 단계로 갈 수 있는… 팬들도 기대하는 것 같고, 이번 전시 갤러리에서 신경도 많이 써주고 일도 잘하는 것 같은데, 하여간 잘 돼야 한다. 이번에 작업하면서 안면 마비 증세까지 생겼는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화백 랩소디' 전

서울 '엄UM' 갤러리, 8월 30일 - 9월 8일 문의: 02-515-3970 

*특별 순회 전시 
청주 무심 갤러리 11월 13일-20일 문의: 043-268-0070 

이화백 이메일 : mattise@lycos.co.kr


태그:#이기섭, #이화백, #엄갤러리,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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