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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 론

한미FTA 추가협정이 6월 29일 타결되어 30일 협정문이 공식 서명되었다. 아직 국회비준이라는 절차가 남아 있지만 양국의 체결의지로 보건대, FTA는 금년 내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FTA가 미국의 세계 경영의 일부로서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위기의식에 대한 대응이라 보고, 2000년 전 로마가 겪었던 위기 상황과 비교한 뒤, 이에 대한 우리나라의 나아갈 바를 살펴보고자 한다.

2. 문제는 무엇인가?

FTA는 흔히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속에서 '규모의 경제' '비교우위'에 의한 경쟁력 강화의 수단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정책효과가 불확실하고 농민, 노동자 등 소외계층의 소득수준을 악화시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측면은 '상대적 이익'으로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미국은 왜 하필 21세기 성장지역으로 주목받는 동아시아 지역 최초의 FTA 파트너로 우리나라를 선택한 것일까? 일단 성립과 발전, 위기 단계에서 미국과 로마 제국의 유사성을 살펴본다.

2. 제국의 성립과 발전 - 미국과 로마 제국의 유사성

(1) 성립 시기
미국은 '콜럼버스의 발견'(1492) 이후에도 유럽에서 주목받지 못하다가 담배 플랜테이션(Plantation)의 성공으로 본격적인 대규모 이민이 이루어졌다. 그 후 본토 인디언을 복속시키고, 모국인 영국과의 투쟁을 통해 독립전쟁에서 승리, 1783년(파리조약) 독립을 달성하였다.

로마의 경우도 에트루리아와 대(大)그리스 사이의 낮은 구릉에 불과하였으나 동족인 라틴족을 통합한 후 에트루리아와 대(大)그리스마저 정복, 270년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게 되었다.

(2) 발전 시기
미국은 독립 직후 유럽대륙의 원료공급자, 상품수요자에 불과하였지만 1·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헤게모니 약화를 계기로 패권국가로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를 이루었다.

로마의 경우도 포에니전쟁에서 시칠리아, 스페인, 카르타고, 발칸지역, 소아시아를 복속시키고 지중해 일대를 통합함으로써 지중해를 "마레 노스트럼(Mare Nostrum)"으로 만들었다.

(3) 위기와 도전
미국은 1960년대까지는 비교적 확고한 주도권을 갖을 수 있었지만 1970년대 이르러 석유 파동, 쌍둥이 적자로 인한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일본, EU, 제3세계의 부상 등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1991년 구소련의 붕괴는 군사적 측면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강화시켜 주었으나 1980년대 이후 등소평의 개방정책에 따른 중국의 부상은 경제, 문화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안보와 같은 고위 정치(High politics) 측면에서도 미국에게 커다란 도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로마의 경우도 한무제의 흉노 정벌의 연쇄 효과로서 훈의 고트족 압박, 그에 따른 경쟁국인 게르만의 대이동이 위기의 원인이다. 게르만 족은 카이사르 이래로 로마와의 접촉을 통해 문명수준이 향상되었고 단순한 용병 수준을 넘어 로마의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4. 로마의 위기 대처 방안

게르만 족의 침입은 카이사르 이후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도 산발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부터이다. 그는 철인황제로 이름이 높지만 황제에 오르기 전에 안토니누스 황제의 이른바 '질서있는 평온'의 시기에 유년기를 보낸 까닭에 위기 상황에 대한 실전 경험이 부족하여 게르만족의 이동이 일시적인 것이 아님을 인식하지 못하였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방어 격퇴 위주의 임기응변식 대처로 일관하였다. 또한 후계자로 무능력한 아들 콤모두스를 내세우는 등 로마의 쇠퇴에 큰 책임이 있다. 따라서 로마의 쇠퇴는 아우렐리우스 시대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 후 고티쿠스 황제는 고트족을 동화시켜 주력화한 기병대로 사용함으로써 적을 동지로 만드는 로마 전통의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여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리고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반달족인 스틸리코와 고트의 알라릭을 활용하고자 하였으나 상황을 바꾸기엔 너무 늦었다. 그 결과 서로마는 476년 멸망하고 만다.

5. 미국의 위기 대처 방안

미국의 위기는 9.11 이후 일방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이른바 '악의 축' 발언에서 부시는 세계를 미국의 친구 아니면 적으로 분열시켰다. 이러한 의식은 프랑스의 시라크와 독일의 슈뢰더 등 전통적인 지지세력을 이탈시켰다. 또한 다른 나라에게도 미국을 '친밀감'이 아닌 '위협'이나 '거만함'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연성권력으로서의 '매력'을 낮추었고 미국의 지도적 카리스마는 손상되었다. '아부 그레이브 수용소'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에 강조하던 인권에 대한 유린 사건은 도덕성에도 큰 손상을 입혔다.

그 결과 후쿠야마와 같은 네오콘의 지지자도 신작 <기로에 선 미국>에서 일방주의 포기와 다다자주의로의 외교 전환을 주장하는 등 부시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이에 민주당은 총선에서 다수당을 회복하였고 차기 대선에서의 승리가 유력해 보인다. 부시도 2기 정부에 들어서자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네오콘 강경파를 경질 시키는 등 정책의 수정을 시도하고 있다.

6. 왜 FTA의 상대가 우리나라인가?

미국과 로마의 제국주의적 유사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다. 즉 미국도 자신이 제2의 로마제국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로마제국의 위기 원인인 게르만 족과 같은 도전세력(현재 미국의 강력한 도전국가는 중국이다)이 자신을 능가하지 못하게 억제하려 한다. 따라서 가장 적은 비용으로 이와 같은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동맹을 추구할 것이다.

동맹의 조건으로 너무 강한 나라와의 동맹은 상대방의 배신, 기만시 기회비용 너무 크므로 미국의 입장에서 부담스럽다. 즉 미국은 일본이나 중국과는 FTA를 맺지 않은 것이다. 또한 동맹이 큰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이용 가치가 커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의 FTA는 미국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측면보다는 정치적인 측면이 크다. 경제적인 측면에서야 FTA란 방법이 아니고서도 필요한 것을 얻을 수단은 많다. 하지만 목적이 한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의 분리'라 한다면 문서적이고 공식적인 FTA란 약한 수준의 경제동맹이 적격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미국과 의존성이 커지게 되는 선점효과가 있다.

원래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 전략 파트너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일본은 2차 대전 전범국으로서 아시아 내 우리나라, 중국, 인도 차이나 등등 '명백한 거부감'이 많다. 또한 대미 흑자도 지나치게 많고, 지난 고이즈미 내각이 공화당에 지나치게 접근한 부분이 있다. 이에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의 통과가 유력시 되는 등 미일관계의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미국의 일본과 거리를 두려한다.

이에 미국은 일본의 대체국가로서 우리나라에 주목한다. 우리나라는 한류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당선, 각종 세계대회 유치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이나 일본에 부정적인 국가도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호의 내지는 중립적 감정을 갖는다. 우리나라는 2차대전 이후 민주화와 근대화를 동시에 이룩한 국가이고 현재 IT강국으로 인식된다. 이는 소프트 파워(Soft Power)로서 국제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미국은 우리나라를 향후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과의 관계에서 미국의 몸값을 높힐 수 있는 카드로서 사용하고자 한다. 이에 미국은 우리나라와 FTA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로마에서 후기에 기독교가 나타난 것과 관련된다. 로마 후기에 게르만이란 강한 경쟁상대가 나타남으로써 로마 제국은 동맹상대를 찾게 되는데 동맹상대로 훈이나 고트는 너무 위험하다. 따라서 마음의 평안과 안정이라는 소프트 파워로서의 기독교를 인식하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고 적도 동화시켜 무력화 시키려고 한다. 따라서 동맹에 대한 명백한 공식화가 필요한데 이것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이다.

7. 우리가 나아갈 바

우리가 나아갈 바는 로마 제국과 기독교의 모습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도 기독교는 중세 기독교 왕국으로서 번성한다. 특히 로마 멸망 직후 서고트와 프랑크의 모습은 대조적이다. 서고트는 사실상 로마 멸망의 시발점이었으나 이단인 아리우스 파의 교리를 받아들여 주류층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고 야만적이라는 고정관념이 심어지게 되었다. 흔히 '고트적'이라 함은 야만과 동일시되고 있다. 반면 프랑크는 후발 주자였지만 정통파 교리를 받아들인 덕분에 후에 카롤링거 르네상스라는 번영을 누리게 된다.

즉 국가의 번영은 힘의 크기나 선점에 있지 않다. 서고트는 프랑크 보다 선점의 이익이 있었고 로마제국의 붕괴자로서 명성도 있었고 힘도 프랑크에 뒤지지 않았지만 매력으로서의 '소프트 파워'와 '글로벌 스탠다드'로서의 타인의 인정이 없었으므로 낮은 평가를 받게된 것이다. 국제관계는 상호간의 관계이다. 따라서 자기가 어떠한가의 문제뿐 아니라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의 문제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도 이번 FTA를 통해 글로벌 스탠다드로서 인식되도록 국가의 매력 수준을 높혀야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과거 이룩한 업적으로 타국의 거부감이 적고 중재자나 매개체로서 발전가능성이 크다. 이는 요즘 언급되는 '동아시아 조정자'라는 거창한 정도는 아닐지라도 우리의 커다란 장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8. 결 론

정치인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다. 돈이나 권력은 있을 수도 있고 때에 따라 순식간에 없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적인 매력, 즉 그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정이 가고 신뢰가 생기는 기분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그 존재만으로도 주변 사람에게 확신을 갖게 하였고 이러한 확신은 누미디아 마시니사에게도 발휘되어 자마에서의 승리를 가져왔다.

'소프트 파워', 이는 우리나라가 21세기 도약할 것인가 추락할 것인가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이다. FTA가 갖는 단기간의 이익만을 몰두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보다 매력적인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모든 국민이 노력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로마인 이야기> 독후감 모집 응모.


로마인 이야기 1 (1판 1쇄)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한길사(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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